얼마 전 열린 제59회 칸국제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켄 로치 감독의 <보리를 흔드는 바람>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관심은 황금종려상의 주인공보다 봉준호 감독에게 더 모아졌다. 한국에서 거의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괴수영화 <괴물>을 <살인의 추억>으로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동시에 얻은 봉준호가 만든다고 했을 때, 관심과 기대가 집중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괴물>은 해외 언론의 호평을 얻는 동시에 필름마켓을 통해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활발한 해외 판매 성과를 올리며 단숨에 '관심'을 '기대'로 바꿔놓았다. "완성도 높은 괴물이 영화의 출발점이라면 가족은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며 <괴물>을 한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라고 설명하는 봉준호 감독은 지금, 관객과 평단의 '기대'에 한 걸음 더 가까운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후반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화적 코드와 유머가 가득하기에 한국 관객과 <괴물>이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봉준호 감독. 한국 관객이 <괴물>을 만나는 7월 27일을 향해 열심히 후반 작업 중인 그가 얘기하는 <괴물>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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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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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기분이 좋았겠다. "사실 칸에서 상영된 버전은 완성된 버전이 아니었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의 월드 프리미어는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편집을 다시 하는 건 아니어서 칸에서 공개된 1시간 54분 길이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여전히 후반 작업 중이다. 음향과 컴퓨터 그래픽을 다시 손보고 있다. 물론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좋은 평가를 얻어 기분 좋다."
- 완성품이 아닌데도 굳이 칸 감독주간에 상영한 이유는 뭔가. "어쨌든 칸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필름 마켓이 열리고, 세계의 언론이 가장 많이 집중하는 영화제다. 실제로 칸 필름 마켓을 통해 해외에 많이 팔았다. 외화 벌어서 기쁘다.(웃음)
- 항상 새로운 작업을 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기존 한국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코드의 웃음을 만들었고, <살인의 추억>은 미해결 실화사건을 다뤘다. 그리고 이제는 괴수영화다. "<살인의 추억>을 할 때 왜 실화를 다룬 영화를 하냐고 걱정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괴물>을 한다니 주변에서 또 걱정이었다. 왜 하필 이무기 영화 같은 걸 하려고 하냐, 영화 경력에 오점을 남기고 싶냐, 말도 많고 편견도 짙었다. 하지만 이런 편견들이 오히려 자극제가 되는 것 같다. 오기가 생기는 거다. 나한테 그런 말 했던 사람들 목록 죽 적어놓고 나중에 찾아가서 '자 봐라. 너에게 정말 보여주고 싶었다' 이러고 싶은 거지. 억하심정이 좀 많았다.(웃음)
- 억하심정이 깊긴 했나보다. 오늘 공개된 영상을 보니 '괴물'의 모습이 미국, 일본영화 괴수영화 못지않다. "미국영화나 일본영화의 고질라, 이런 것들에 대한 오마주는 없었다. <괴물>의 '괴물'은 한강이라는 일상 공간에서도 충분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길 바랐다. 왜 한강에 등 굽은 물고기 같은 것들이 가끔씩 출몰하지 않나. 충분히 한강에서 만날 수 있는 돌연변이 같은 느낌이 중요했다. 우리 영화의 배경은 우주도 지구 지하도 아니다. 괴물을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둔 게 '영화 스토리에 충실한 괴물'이라는 것이었다. 소시민의 삶을 다루니 소시민적 괴물의 모습을 한 건 당연하다. 우리 영화의 괴물은 63빌딩 때려 부수는 크기면 안 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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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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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체의 형체에 살을 붙인 건 뉴질랜드 웨타 워크샵이지만 괴물의 최초 디자인은 장희철이라는 분이 한 걸로 안다. "그렇다. 장희철 씨와 오랜 시간 의견을 나누며 괴물의 형태를 고민했다. 장희철 씨가 매번 주장하던 게 있다. <괴물>의 '괴물'은 배우 송강호와 옆에 놓고 보면 어울려야 한다는 것. 절대 아놀드 슈왈제네거나 톰 크루즈와 어울리면 안 된다는 거지.(웃음) 그 덕에 일상적이고 한국적인 괴물이 탄생한 거 같다. 칸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때, 모두들 동양적 느낌이 나는 괴수라고 하더라. 사실 '괴물'만 생각하면 맘이 즐겁다. 다채롭게 움직이는 입 모양이며, 디테일이 살아있는 움직이는 괴물의 모습을 관객에게 하루빨리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 티저 예고편을 보면 고등학교 때 한강 교각을 오르던 괴물체를 본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영화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아, 이 얘기 때문에 참 여러 가지로 말을 많이 듣는다. 최근엔 어디 인터넷 만화에서 괴물체를 실제로 봤다니 봉준호 감독 고등학교 때부터 본드 흡입한 거 아니야?(웃음) 이런 얘기도 듣고. 고등학교 때 잠실 근처 아파트에 살았는데 내 방 창문으로 잠실 교각이 보였다. 한창 사춘기라 창을 멍하니 바라보는 날이 많았는데 어느 날, 정말 어떤 검은 물체가 교각 기둥을 수직 방향으로 올라가다 떨어지는 걸 봤다. 그게 이 영화의 최초 아이디어가 됐지. 감독이 되면 꼭 영화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늘 보는 환경에서 괴물이 나온다면 흥미진진할 것 같았거든. 원래 어릴 때부터 '세계 7대 불가사의' 이런 거 많이 봤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괴물>의 괴수는 '신화'모드가 아니라 '현실' 모드다.
- 현실 이야기를 계속 강조한다. 사실 <괴물>은 일반 괴수영화와 달리 사회성이 짙은 작품으로 알고 있다. "<살인의 추억>을 하면서 못나고 별스러울 것 없는 일반인들의 이야기에 정이 생겼다. 사회의 기준에서 봤을 때 조금 '떨어지는' 가족들을 영화의 중심에 세우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적 메시지가 들어갔다. <괴물>에서 괴물체와 싸우는 건 육군, 해군, 공군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니다. 이런 '특별한' 사람들은 카메라 100m 안으로 접근도 못한다. 거대한 괴물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약하고 소외받는 인물이길 바랐다. 그런데 사실 이런 사람들의 고군분투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적인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뒤에 쳐져 있는 병풍처럼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는 내용인 거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프로파간다'가 앞서는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 영화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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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프레시안무비 |
- 그렇다면 <괴물>을 통해 목표한 바는 뭔가. "우선 사실적이고 리얼한 괴물을 만들겠다는 게 가장 일차적인 바람이었다. 앞서 얘기했듯 괴수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이 워낙 나빴으니까.(웃음) 다음으론 캐릭터를 살리고 싶었다. 괴물과 싸우는 가족 각자의 캐릭터를 생생히 잡고, 이들이 괴물과 싸우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이들 가족을 괴롭히는 사회적 상황을 곁들였다. 하지만 너무 심각하진 않다. 여름철 액션영화로 손색없는 영화였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클 뿐이다.
- 이번에도 가족 같은 배우와 스탭과 작업했다. 왜 항상 그들인가. "사실 관객을 설득하는 영화 작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스탭과 배우를 설득하는 것이다. 스탭과 배우가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관객'이니까. <괴물>을 구상했지만 내 능력 밖의 영화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무 것도 없이 SF 괴수영화에 도전하는 마음을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모르도르로 가는 프로도의 심정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신뢰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내 편'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다. 왜 <반지의 제왕>에도 프로도 옆엔 항상 샘이 있지 않나. 촬영 전 엠티에 가서 나의 '샘'이 되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몇 명이 조용히 문자를 보냈지. "감독님의 샘이 되어 드릴께요"라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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