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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도 삶의 고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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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도 삶의 고민이 있다

[이슈 인 시네마] <내 곁에 있어줘> 에릭 쿠 감독, 관객과 만나다

최근 극장가에 낯선 영화 한 편이 찾아왔다. 에릭 쿠 감독의 싱가포르 영화 <내 곁에 있어줘>. 맹인이자 청각장애자인 테레사 챈의 실제 삶 이야기에 부인을 먼저 여윈 노인과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조차 못하는 젊은 남자, 동성에게 끌리는 10대 소녀 등 싱가포르의 오늘을 살아가는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를 꿰고 있는 <내 곁에 있어줘>는 다큐와 극영화 사이를 오가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에 <휴일 없는 삶>으로 참석해 한국을 찾은 에릭 쿠 감독이 지난 5월 3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를 찾았다. 잔잔한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관객과의 만남은 시종일관 활기차게 진행됐다. <내 곁에 있어줘>를 통해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가 그대로 관객들에게 다가 갔는지, 그 현장을 확인해 봤다.
에릭 쿠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관객과의 일문 일답 - <내 곁에 있어줘>를 보면 싱가포르 사회의 주변부 사람들의 삶이 잘 묘사된다. 또한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 상영된 '디지털 삼인삼색' <휴일 없는 삶>은 싱가포르에 이주해 살고 있는 가정부들의 고달픈 삶을 그렸다. 감독 자신은 매우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소외층을 다루는 건 왜 인가. "어렸을 때 천식이 있어 밖에서 뛰어놀며 자라지 못했다. 방에 틀어박혀 만날 만화나 영화만 봤다. 엄마가 사다 준 카메라로 이것저것 찍으면서 영화라는 세상에 눈을 뜬 것 같다. 카메라로 들여다보는 세상은 '맨눈'으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뭔가 '뒤에 숨겨진 것'을 본다고 해야 하나? 외국영화나 언론에 묘사된 싱가포르는 항상 부유하게 그려진다.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처럼. 하지만 그런 화려한 모습 뒤엔 분명 이면이 존재한다. 나는 항상 진짜 삶이 부딪히는 인간적인 싱가포르의 모습을 묘사하고 싶다." - 그럼 어린 시절부터 꿈이 감독이었겠다. "그런 건 아니다. 어렸을 땐 화가가 되고 싶었지. 일은 원래 광고를 했다. 그러다가 단편을 찍게 됐고 싱가폴국제필름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았다. 세계 단편 영화제들에 초대되고 상을 받으면서 아무래도 자연스레 영화 쪽으로 관심이 기울게 됐다." - 싱가포르는 영화 산업이 발전한 나라가 아니다. "그렇다. 지금도 한 해에 4~5편의 작품만이 만들어질 뿐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가 영화의 중요성에 대해 요즘 새롭게 눈을 뜨고 있다. 여러 가지 지원정책이 이뤄지고 영화 산업이 조금씩 붐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
-10대의 소녀들은 문자 메시지를 시종 보내고, 젊은 경비원은 좋아하는 여자에게 편지 한 장을 쓰지 못해 쩔쩔맨다. 반면 부인을 잃은 노인은 음식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소통과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 문자 메시지, 편지, 음식, 포옹, 대화 등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다 담고 있다. 소통 단절은 현대인이 모두 겪고 있는 문제다."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수단이 드러나는 대신 영화는 소리를 거의 자제한다. 대사도 그다지 없고 중반을 넘어서면 침묵 속에 자막만 나올 뿐이다. "원래 대사 없이 영화 전체를 가려고 했다. 10대의 즐거운 한때를 그리기 위해 음악을 넣고 하다보니 조금씩 바뀌었지만. 테레사 부분은 관객에게 영화를 '보는' 즐거움과 함께 '읽는' 것을 통해 느껴지는 느낌이 어떤지 전하고 싶었다." -음식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노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당신은 주로 비주류 배우를 쓰는 걸로 아는데 다들 하나같이 연기를 너무 잘 한다. "음식 만드는 노인 분은 사실 어린 시절 내 영어 선생님이다. 영화 광이어서 항상 내게 하루에 3~4편의 영화를 보여줬다.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건 다 그분이 가르쳤다고 해도 될 정도다. 사실 오래 연락 안했는데 그 역할에 딱이란 생각이 들어 연락을 했다. 무슨 연기냐며 손을 설레설레 저었지만 결국 완벽하게 연기를 했다. 캐릭터에 맞는 인물을 찾는 게 영화의 절반이라고 생각하는데 비전문 배우들이지만 다들 자기 역할을 너무 잘 표현해줬다."
내 곁에 있어줘 ⓒ프레시안무비
- 영화를 보면 테레사 챈의 이야기가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내 곁에 있어줘>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 "테레사 챈의 실제 이야기에 너무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영화로 옮길 때는 테레사와 그녀에게 음식을 해주는 '노인'의 관계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13살 조카가 싱가포르에 놀러와서 자기 짝사랑이 그리워 밤잠 이루지 못하는 걸 보고 세대별의 사랑 이야기와 소통 이야기를 모두 담아보자 마음먹었다. 테레사 챈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감동이지만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이들을 보면서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을 관객들이 직접 느껴보길 바랐다." - 싱가포르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감독이다. 차기작은 준비중인가? "싱가포르에 사는 인디언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기획에 들어가 구체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 한국을 찾은 소감은 어떤가. 한국인이 바라보는 싱가포르영화는 신선한 동시에 여전히 낯설다. 싱가포르 감독이 보는 한국영화는 어떤가. "한국영화들 아주 많이 좋아한다. 장르별로 튼튼한 바탕이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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