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득 기쁨 담아오는 그 길에서 / 당신과 내가 함께 / 서편에 지는 달이 되고 / 새벽과 함께 스러지는 별이 되기를 빌었는데/ 미안하오. 새벽이 오기 전에 떠나야 하는 길/ 미안하오/ 미안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8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판화가 이철수 씨가 자신이 쓴 시를 낭독했다. 황사가 두껍게 내려앉은 공원 바닥에 놓인 철제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던 노인이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닦아도 멈추지 않는 눈물이 흘러 노인의 입가에 다다를 무렵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철수 화백이 자신의 시에서 "미안하오"라는 대목을 읽어내려 갈 때였다.
***31년 전 4월 9일은 '사법 암흑의 날'**
올해 4월 9일은 인민혁명당 재건위 관계자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지 31년째 되는 날이다. 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인혁당 민주인사 31주기 추모제'가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7개 단체의 공동 주최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인혁당 관계자들의 유족과 과거의 동지들, 그리고 시민사회 단체 회원 300여 명이 참가했다.
이날 행사가 열린 곳은 과거 서대문 형무소가 있던 자리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군사독재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인사들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1975년 인혁당 관계자인 서도원, 하재완, 도예종,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 이수병, 여정남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곳도 같은 장소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1974년 유신 반대 투쟁을 벌인 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배후 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하고, 이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지하조직으로 규정했다. 인혁당 재건위는 1964년 발생한 1차 인혁당 사건 연루자들이 당 재건을 기도했다며 중앙정보부가 붙인 이름이다.
1024명이 연루된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253명 중 이철, 김지하 씨를 비롯한 민청학련 관련자들은 75년 2월 대부분 석방됐지만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23명은 모두 석방에서 제외됐다. 이 중 8명이 1975년 4월 8일 사형 판결을 받았고, 그 후 20시간만인 9일 오전 6시에 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충분한 증거와 정당한 절차가 생략된 채 사형이 집행된 이날을 '사법 암흑의 날'로 규정했다.
지난 8일 열린 행사에 참가한 백발의 노인들은 31년 전 세상을 떠난 8인의 유족과 동지들이다. 형이 집행될 당시 대부분 30~40대의 청장년이었던 이들의 얼굴에는 31년 세월의 흔적이 깊이 패였다. 이 화백이 낭독한 시의 '미안하다'라는 대목에서 터져 나온 눈물은 지난 31년에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던 셈이다.
***인혁당 사건의 진실 드디어 햇볕을 보다**
이날 행사는 단지 31년 세월의 무게를 확인하는 자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인혁당 사건의 진상이 규명된 이후 열린 첫 기념행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7일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임이 밝혀냈다. 또 올해 1월 23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 및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1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0일에는 사형집행을 당한 8명에 대한 재심 공판이 31년 만에 열렸다.
그래서일까. 흐르는 눈물을 훔쳐낸 참가자들은 표정은 한결 홀가분해보였다. 자리에 함께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말을 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열린 재심 공판이 있기까지 400일 이상 천막농성을 진행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해 온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에서 故 하재완 씨의 부인 이영교 여사가 유족을 대표해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여사는 지난 31년은 "생각만 해도 가슴에 피가 메이는 세월"이었다며, 지난달 열린 재심 공판이 "역사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독재 권력의 횡포를 용인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했다.
***죽은 자의 미안함과 산 자의 부끄러움**
1975년 4월 10일 경찰은 절차를 무시한 사형집행에 대한 비난여론을 막기 위해 인혁당 관계자 송상진과 여정남의 시신을 크레인으로 탈취해 유가족 동의 없이 화장 처리했다. 당시 30대 중반의 팔팔한 장년이던 문정현 신부는 그것을 온 몸으로 저지하다 다리를 다쳤다. 문 신부는 당시의 상처로 여전히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연단에 올라 31년 전을 회고했다. 그는 "사형당한 여덟 분이 목숨을 걸고 외쳐야 했던 통일의 구호를 이제 누구나 큰 소리로 외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우리 사회가 인혁당 관계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31년 전 사형당한 8인 중 한 명인 도예종 씨의 외손녀 권경미 씨가 출연한 발레 공연이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권 씨는 다른 여섯 명의 발레리나들과 함께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남편과 그의 부인의 애끊는 사연을 담은 내용의 담은 발레 작품을 공연했다. 미안한 마음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그를 때로 원망하고, 때로 그리워하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간 아내의 사연을 담은 공연에서 유가족들은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인혁당 관계자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곳으로 향한 뒤, 그곳에 헌화했다. 이 자리에서 만난 통일연대 강순정 고문(77세)은 "31년 전 먼저 가신 이들의 앞에 부끄러운 마음을 조금 덜었다"라고 말했다.
31년 전 민주와 통일을 열망했던 여덟 명이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밟았던 땅에 "미안하오. 새벽이 오기 전에 떠나야 하는 길/ 미안하오/ 미안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로 끝나는 이철수 화백의 시가 담긴 엽서가 놓였다. 그리고 그 위에 흰 국화가 눈처럼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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