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대인 영화인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금 뜨거운 정치적 논쟁에 휘말려 있다. 1972년 뮌헨올림픽 때 벌어진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에 의한 이스라엘 선수 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뮌헨> 때문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필버그는 이 영화로 제78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혈육인 유대민족으로부터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언론으로부터 돌팔매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동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쉰들러 리스트>의 감독이자, 나치유대수용소에서 사망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쇼와재단을 설립한 사람이 어떻게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와 이스라엘 모사드 비밀암살요원들을 동일시할 수 있느냐며 사뭇 격앙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일부 보수언론들은 "절대 악(惡)을 악으로 그리지 않은 비겁한 영화"라며 스필버그를 일제히 공격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팔레스타인들은 이 영화가 지나치게 친 이스라엘적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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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 감독(사진 제일 왼쪽) ⓒ프레시안무비 |
스필버그가 지난 1월말 <뮌헨>의 이스라엘과 독일 동시개봉(미국에서는 지난 해 말 개봉)을 계기로 독일의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폭력은 폭력,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뮌헨>이 "중동갈등에 대한 진정한 대화를 불러일으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슈피겔(이하 슈) : |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일어난 학살사건 소식을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 나나? |
스필버그(이하 스) : | TV 생중계로 올림픽을 시청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그는 24살이었다. - 편집자) 방송 도중 갑자기 유명한 스포츠캐스터인 짐 맥케이가 나오더니 긴급뉴스를 전했다. 그 후 몇 시간 동안이나 나는 말 그대로 TV 앞에 붙어 있다시피 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그때 '테러리스트'와 '테러리즘'이란 말을 들었던 것 같다. |
슈 : | 그 사건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까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
스 : | 지난 몇 년 동안 뮌헨올림픽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됐다. 개인적으로 절친한 거의 모든 분들, 부모님이나 심지어 랍비에게까지 뮌헨 올림픽 사건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문제를 상의했다. 그 분들이 만들지 말라고 말리기를 바랐다. 그런데 누구도 내게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그래서 시나리오 작가 토니 쿠쉬너와 함께 가능한 한 진지하면서도 불편부당하고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뮌헨 프로젝트에 도전해 보고자 했다. |
슈 : | 후회하나? |
스 : | 전혀 아니다. 내가 '뮌헨'을 만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 |
슈 : | 이 영화를 만들면서 당신이 정치적 지뢰밭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나? 당신은 팔레스타인의 테러 행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복수작전을 그리고 있다. 이스라엘 비밀요원들은 도덕적 우월성에 대해 스스로 의구심을 품기까지 한다. '쉰들러 리스트' 때 무한한 지지와 존경을 당신에게 표했던 많은 유대인 친구들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있었는가? |
스 : | 그렇게 나이브하게 주제에 접근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믿어달라. 나는 미국인이자 유대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민감함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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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프레시안무비 |
슈 : | 당신은 평론가들로부터 열렬하게 칭송 받는 한편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영화 한 편으로 이렇게 개인적으로 공격 받은 감독은 당신 이외에 없었던 것 같다. '맹목적인 평화주의자', '이스라엘에 대한 배신자'로도 불리고 있는데. |
스 : | 다행스럽게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런 몇몇 사람들이 목청이 크긴 하지만.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지금 미국에 존재하는 우익 펀더멘탈리스트(근본주의자)들이 너무나도 편협하고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뮌헨'을 그들(우익 펀더멘털리리스트)과 다르게 보고 있다는 사실에 신께 감사한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적인 미국 유대인들, 심지어 뮌헨 올림픽 때 희생된 선수들의 유가족들조차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했다. |
슈 : |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와 이스라엘 요원들을 도덕적으로 동일시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스 : | 넌센스다. 뮌헨올림픽에서 선수들을 인질로 잡아서 살해한 행동은 분명 끔찍한 범죄다. 범인 각자가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들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한다고 해서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와 용서는 별개다. |
슈 : | 하지만 비판자들은 당신이 테러를 '인간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스 : | 테러리스트들도 인간이다. 나는 그들을 악마화 하려 않았을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상대화 하거나 동정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들의 범죄이유, 테러의 뿌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희생자들의 기억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게 나의 믿음이다. '뮌헨'은 선동 팸플릿이 아니며 한 사건에 대한 캐리커처나 1차원적 시각을 담은 영화가 아니다. 나는 복잡미묘한 질문들에 대한 단순한 대답을 거부한다. |
슈 : | 바로 그것이 문제가 아닐까. 복잡한 중동 상황을 3시간짜리 영화로 만드는 게 어려웠을 텐데. |
스 : | 영화로 중동평화계획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동평화를 위한 어떤 형태의 협상조차 배신행위로 여기는 유대 극단주의자와 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맡겨두고 있어야만 하겠는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그냥 입을 닫고 있어야만 했을까? 영화라는 강력한 미디어를 이용해 관객으로 하여금 (중동평화라는) 문제에 직면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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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프레시안무비 |
슈 : | '뮌헨'은 캐나다 작가 조지 요나스가 쓴 1982년의 논쟁적 책 '복수'를 토대로 하고 있는데. |
스 : | 원작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이 영화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 쿠쉬너와 함께 요나스의 책에 등장하는 애브너란 이름의 전직 비밀요원을 여러 차례 직접 만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내 직관과 상식을 믿는다. 그는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모든 것은 사실이다. |
슈 : | 영화는 애브너가 이끄는 암살단의 작전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
스 : | 이스라엘의 모든 복수는 적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유발하기 위한 것이다. 비밀암살대원들이 살인을 즐기거나, 침대 밑에 폭탄을 숨기면서 즐거워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인은 그들의 직업이었고,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이다. 처음에 그들은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한다고 확신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슈 : | 골다 메이어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주장했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신의 분노'가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나. |
스 : | 이스라엘 총리로서 메이어는 뮌헨의 악마적 도발에 대한 대응을 해야만 했다. 독일에서, 그것도 올림픽 게임에서 유대인들이 살해당했다. '검은 9월단'의 범죄를 단죄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뮌헨은 이스라엘에게는 국가적 트라우마였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메이어가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
슈 : | 원칙적으로만 그렇다는 말인가. |
스 : | 복수작전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심리적인 부담을 지우고, 도덕적 몰락을 초래한다. 모사드 요원이라고 해서 혈관 속에 얼음물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
슈 : | 복수작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단기적인 만족감을 안겨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해결책은 아니란 뜻인가? |
스 : | 바로 그렇다. 폭력은 폭력을 유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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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프레시안무비 |
슈 : | 영화 속에서 메이어 총리는 "모든 문명은 극단적인 경우에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의 가치를 관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대사가 영화의 주요한 핵심이라고 생각되는데. |
스 : | 맞다. |
슈 : | 너무나 실용적이면서 너무나 펀더멘털한 말이다. 그리고 세계정치의 전환점이 된 또 다른 테러를 알리는 말 같기도 하다. 영화 말미에서 당신은 뉴욕 맨해튼의 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을 오랫동안 보여주고 있다. 72년 9월 5일 뮌헨과 2001년 9월 11일 뉴욕 간의 연관성을 나타내려는 의미였나? |
스 : | 꼭 그렇게 비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팔레스타인 테러와 오늘날 알카에다 테러 간에는 연관성이 없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과 지하드주의는 서로 아무 관련이 없다. |
슈 : | 그러나 72년 이스라엘의 기반을 뒤흔든 테러 공격과 30여 년 뒤 미국을 뒤흔든 공격은 이후 파장 면에 있어서 매우 뚜렷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기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부정에 맞서 싸우고 국민들을 좀 더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가 과연 얼마나 많은 자유를 희생해야 하는가란 질문이다. |
스 : | '뮌헨'은 이미 미국에서 중동에 대한 논쟁, 그리고 조지 W 부시가 선언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방법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슈 : | 당신은 부시 행정부를 자주 비판하고 있는데.. |
스 : | 이라크전쟁, 그리고 국민자유에 대한 (정부의) 제약에 대해 비판적이다.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
슈 : |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
스 : | 젊은 시절 정치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발전시키게 된 순간부터 나는 이스라엘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다. 유대인으로서 나는 이스라엘의 존재가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인식하고 있다. 유대인이란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반유대주의와 반시오니즘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걱정스럽다. 만약 필요하다면, 나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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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 감독(사진 오른쪽) ⓒ프레시안무비 |
슈 : | '뮌헨'은 독일과 이스라엘에서 동시 개봉됐다. 이스라엘에서 극단적인 반응이 나올까 봐 두렵지 않나? |
스 : | 관객들은 각자의 개인적인 신념, 그리고 인생 경험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낼 것이다. 또 그래야만 한다. 영화를 본 팔레스타인 관객들은 너무 친 이스라엘적이며, 자신들의 고통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비판적인 유대인들과도 이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극단적인 반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가 진정한 토론을 유발하고, 완고한 입장을 다소나마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중동에서 총소리가 아니라 대화의 소리가 커지길 바란다. 탈무드에는 "올바른 길이 무엇이냐에 관한 토론이야말로 최고의 선이다"란 말이 있다. |
슈 : | '뮌헨'이 보다 미국적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보다 유럽적이라고 생각하나? |
스 : | 내가 만든 영화들 중 단연코 가장 유럽적인 영화다. 유럽에서는 보다 쉽게 받아 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모든 극단적인 비평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가 당신을 불편하고 두렵게 만들었는가. 그렇다면 자신이 왜 이런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도 그리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
슈 : | '우주전쟁'에 이어 '뮌헨'까지 최근 잇달아 어두운 영화를 만들었다. 다음 번에는 좀 더 가벼운 오락영화를 만들 계획인가? |
스 : | 나는 내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한다. (이 세상을) 어둡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에 대한) 웃기는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영화란 강력한 도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정말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가 하면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좋은 오락을 제공하는 것도 매우 훌륭한 일이다. 두 가지 다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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