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면담에서는 전작권 전환 문제가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였다. 주목할 점은 미국대사관이 박선숙 의원을 제외하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전작권 전환을 늦춰야 한다는 점에 거의 의견을 같이 했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여야 의원들이 "한국 국민들은 전작권 전환을 미국의 안보 공약이 약해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나라당의 황진하 의원은 전작권 전환 연기를 강력히 주장했다. 외교전문에 따르면 황 의원은 노무현-부시간의 합의를 "잘못된 결혼(bad marriage)"에 비유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 황진하 새누리당 국회의원 ⓒ프레시안(곽재훈) |
"노무현 측은 한국 주권의 회복이라는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었고 미국(부시)측은 '전략적 유연성'의 기회로 간주했다. 안보 문제에 대한 노무현의 판단은 그가 북한을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매우 잘못된 것이었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전작권 이양 합의의 기초가 된 것이다."
그러자 미국 국방부 장관실의 한국담당 수석과장인 브라이언 아라켈리안(Brian Arakelian)이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전작권 전환은 우발 계획과 바람직한 양자 관계의 가정, 그리고 이러한 계획에 내재된 한반도의 최종 상태에 관한 재평가를 촉진해왔기 때문에 전작권 전환은 한미 연합방위와 전략적 환경에 대한 양자 간 평가를 강화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작권 전환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이 앞으로 유사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조윤선 의원은 "유효한 지점들"이라고 답하면서도 "그러한 주장은 한국 국민들에게 전달되는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라켈리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배치되는 것에 대해서는 한국 국민의 지지를 설득할 수 있고, 자신의 국방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은 확신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당황스럽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 발언에 대한 미국대사관의 평가도 주목된다. 외교전문은 "박지원은 노무현 정부 때 전작권 전환 합의는 주한미군이 한국을 떠나는 게 좋다는 소수의 한국인의 주장에 기초한 것이었다며 암묵적으로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고 적었다. 이에 반해 같은 당의 박선숙 의원은 "전작권 전환이 주한미군이 한반도 전쟁 발발 시 손을 떼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전작권 문제는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MB, 친이-친박 갈등 해결 카드로 전작권 꺼내
주한미국 대사관은 2010년 2월 5일부터 16일까지 11명의 국회의원을 비롯해 학자와 언론인들을 만나 전작권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이에 기초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내용은 2월 16일 미국 대사관의 외교전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 대사관은 이렇게 논평했다. "강력한 친미 대통령인 이명박은 2007년 유세 때 전작권 전환 연기를 공약했고 만약 그가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의 핵심적 지지 세력과의 관계가 약화될 것이다." 그러면서 "전작권 연기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퇴역 군인들"이라며 "이들은 한나라당의 핵심적인 지지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대사관은 MB 정부와 한나라당이 전작권 환수 연기를 희망하고 있는 배경에는 정치적 고려가 깔려 있었다고 본 것이다.
특히 미국 대사관은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이전 문제를 둘러싼 친박-친이 갈등의 무마책으로 전작권 환수 연기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혹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6월 지방선거를 위해 실망한 박근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당 분란을 수습하기 위해 전작권 전환 연기를 요청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MB 정부는 2010년 2월 초에 미국에 전작권 환수 연기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주한미국 대사관의 2010년 2월 22일 자 외교전문에 따르면,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만난 자리에서 "2012년 4월로 예정된 전작권 전환 문제를 미국 정부와 협의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이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이후 전작권 전환 연기를 논의했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내용이다. 동시에 MB 정부의 동기가 안보적 고려보다는 짧게는 6.2 지방선거, 길게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주요하게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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