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의 일이다.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가는 길에 뉴욕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당시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던 네덜란드 출신 천문학자의 집에서 며칠 신세를 지게 되었다. 독신인 그녀의 집에는 작은 손님방이 있었는데 지인들에게 그 방을 흔쾌히 내어주곤 했었다. 여독 때문에 늦잠을 자고 깨어나 보니 벌써 정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점심때까지는 돌아오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나가고 없었다.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그녀의 서재에 눈길이 닿았다. 내 시선이 책 한두 권을 지나서
소파에 드러누워서
▲ |
이 책을 읽고 나서 갈릴레오는 종교를 전면적으로 거부한 혁명 투사가 아니라는 지은이의 생각에 동의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던 것 같다. 크게 보면 갈릴레오는 늘 주류에 편입되어 있었다. 그를 비호하는 귀족 세력이 늘 존재했다. 메디치가는 그의 비호 세력을 넘어서서 그와 공동 운명체 같은 위치에 있었다.
그는 그런 위치를 즐겼고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책을 낼 때마다 자신을 유리한 미래로 이끌어줄 권력자에게 바쳤다. 물론 이런 헌정은 당시의 출판 문화의 관행이었지만 그는 남들보다 더 영리하고 더 적극적이었다.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한쪽에서는 비난 받고 모함 받았지만 여전히 다른 쪽에서는 추앙 받고 보호를 받았다.
늘 안전하게 기존 정치 종교 체제 내에서 영광을 얻고자 노력했다. 적절하게 대외적으로 수사적으로 자신이 발견한 객관적 사실을 부인하거나 신념과 동떨어진 고백을 하는 굴욕도 달게 받았다. 갈릴레오는 체제 속에서 어떻게든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책을 지식인들만의 공용어인 라틴어 대신 대중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쓰는 전복을 기하기도 했지만 자신은 아마 그것을 전복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 같다. 더 많은 사람이 읽기를 바라는 단순한 감각이 발동했을지도 모른다.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 군사용 컴퍼스 같은 과학 장비를 상업적으로 개발해서 팔기도 하는 실용주의자였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면서 갈릴레오의 딸은 천문학자가 아니라 수녀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베네치아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 마리나 감바와의 오랜 동거 관계에서 태어난 갈릴레오의 큰 딸은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해의 무더운 여름날인 1600년 8월 13일에 태어났다."
"갈릴레오는 '소중한 여동생'을 기리고자 딸에게 비르지니아라는 세례명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정식 혼인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딸 또한 결혼하기 힘들 거리고 생각했다. 딸아이가 열세 번째 생일을 맞은 직후에 갈릴레오는 그녀를 아르체트리에 있는 산마테오 수녀원에 넣었고, 그녀는 이곳에서 평생 가난과 은둔의 삶을 살았다."
"비르지니아는 수녀가 될 때, 아버지가 별에 매혹되었음을 알고 마리아 첼레스테(celeste는 이탈리아어로 '하늘의'라는 뜻이다)라는 수도명을 택했다."
갈릴레오의 딸 첼레스테 수녀는 신분의 장벽 때문에 결혼하지 못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이 책의 첫 문장이기도 한 '존경하는 아버지께'로 모든 편지를 시작하는 첼레스테는 아버지를 빼닮은 딸이었던 것으로 이 책에 묘사되어 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헌신으로 겹겹이 쌓인 그녀의 삶의 궤적이 이 책 곳곳에 묻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나는 작년부터 매달 발행되는 한 웹진에서 두 사람이 정해진 다른 두 권의 과학책에 대한 서평을 각각 쓰고 또 대중 앞에서 이들 책을 소재로 대담을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두어 달 전에는 내가 석사 학위 논문을 지도했던 옛 제자를 필자로 대담자로 모셨다. 그녀는 앞서 말했던 네덜란드 출신 천문학자의 논문 지도를 받아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귀국해서 교수가 되었다. 오랜만에 그녀도 보고 싶었고 특히 그 때 다루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해서 그녀가 각별한 추억이 있을 것 같아서 그녀를 모셨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불쑥 이 프로그램에서 <갈릴레오의 딸>을 다루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순간 한참동안 잊고 지내던 친구 이름을 들은 것 같은 설렘이 일었다. 그녀가 이어서 자신이 곧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 우습게도
그리고 이젠 할머니의 모습도 언뜻언뜻 보이는 뉴욕의 그 천문학자가 서울에 왔다. 결혼식에 참여할 겸 국내의 천문학자도 만날 겸 처음으로 한국 나들이를 한 것이었다. 바쁜 일정을 치르고 있던 그녀를 어느 오후에 만났다. 우리는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추억이 4~5년 전 쯤에 멈춰 서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느라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8984980080#}
▲ <갈릴레오의 딸>(데이바 소벨 지음, 홍현숙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생각의나무 |
다시 읽은 <갈릴레오의 딸>에 대한 나의 감상평은
"그러나 마리아 첼레스테의 편지로 미루어볼 때 갈릴레오는 생전에 그 같은 분열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기도의 힘을 믿었으며 자신의 숙명인 과학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변함없이 훌륭한 가톨릭 신자였다."
갈릴레오는 몰상식의 세상에서 상식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외톨이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기존의 질서 속에 편입되려고 부단히도 힘썼던 또 다른 의미에서의 외톨이였다. 평생을 투병을 하면서 지냈던 외톨이였다. 많은 시간을 감금당한 채 고립되었던 외톨이였다. 신분상의 문제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아내로 맞아들이지 못했던 외톨이였다. 사랑하는 딸을 옆에 두지 못하고 수녀원에 보내야했던 외톨이였다.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받아들였지만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외톨이였다.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관찰과 관측 결과를 통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시대는 여전히 중세 기독교의 먹구름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그 자체가 모순인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변함없는 훌륭한 가톨릭 신자'임을 다짐하면 할수록 그를 둘러싼 태생적인 '분열'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기존 체제에 대한 미련을 고수하면 할수록 그의 고통은 더 커졌을 것이고 더 분열되었을 것이고 더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갈릴레오는 역시 어쩔 수 없는 혁명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주어진 체제 속에서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자신이 내포한 분열은 이미 그를 혁명가로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기존 정치 종교 체제 속에서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남으려고 하면서 변절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그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그가 종교를 부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미 과학과 종교의 싸움에서 상식의 편에 섰고 그 자체로서 그는 종교에 침을 뱉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불붙은 세상은 그와는 별개로 더 멀리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는 외톨이였고 여전히 반종교 혁명가였다.
"밤에 잠을 잘 방이 없던 터에 디아만타가 고맙게도 친동생 대신 저를 자신의 방에서 재워주었답니다. 그런데 그 방은 지금 끔찍할 만큼 추워서 머리가 멍할 지경이니 아버지가 여행을 떠나 계시는 동안은 쓸모가 없을, 아버지의 흰 침대보 하나 빌려주시지 않으면 그곳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 몹시 궁금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부탁드릴 일은, 최근에 출판된 아버지의 책을 부디 한 권 보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궁금해서 어서 읽고 싶거든요."
갈릴레오의 딸 첼레스테도 외톨이였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교통했고 수녀원에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처세를 했지만 평생을 수녀원에 고립되어 살았다. 고립된 아버지 갈릴레오와 고립된 딸 첼레스테의 관계는 이번에는 딸의 맹목적인 존경과 일방적인 헌신을 바탕으로 한 주종 관계가 아니었던 것으로 읽혔다. 두 외톨이는 첼리스테의 편지를 통해서 드러난 것처럼 서로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공유하는 일상의 동반자였다. 첼레스테는 단지 딸이 아니라 아버지의 책을 읽고 아버지의 편지를 대필하기도 하는 동료로서의 면모를 그녀의 편지를 통해서 잘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딸은 끝없이 아버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건강을 걱정하는 애틋한 모습을, 아버지는 딸의 요구를 무조건 다 들어주는 딸바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다정한 부녀이기도 했고 서로를 아끼는 연인이기도 했던 것 같다.
<갈릴레오의 딸>이라는 제목이 이제는 어색하지도 않고 이 책이야말로 갈릴레오의 딸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갈릴레오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다만 그를 향한 내 시선이 좀 더 풍요로워진 것은 느낀다.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그가 중세 어느 고립된 섬에서 외롭게 외치는 갈릴레오가 아니라 현대로 나를 불쑥 찾아 온 오래된 손님 같이 느껴졌다. 그를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첼레스테에게도 당연히 초대장을 같이 보내야겠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그곳에 있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녀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