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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선택한 노무현 vs '사찰'을 선택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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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선택한 노무현 vs '사찰'을 선택한 이명박

[한윤형 칼럼] 민간인 사찰 그리고 4·11 총선

스물다섯 살에 전역하여 사회로 돌아온 때가 2007년 1월이었다. 정치 평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것이 폐허였다. 군대 가기 전 좌파들이 대중을 무시한다고 비난하던 노무현 지지자들은 2년 사이에 본인들이 '대중주의자'에서 '엘리트주의자'로 갈아타 있었다. 조·중·동이 국민을 세뇌한 더러운 세상을 저주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 낸 게시판 문화의 활기는 간 데 없었고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에선 모두가 이명박을 씹었지만 여론을 바꾸지 못했다. 나는 정권 말에 추진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절망했고 대통령 선거에 대해선 왜 정동영이 희망이 없는지를 설명하는데 그쳤다. 정권 말까지도 어떤 지지자들은 2002년의 사례를 들먹이며 막판 역전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어차피 (군대) 늦게 올 거 왜 월드컵이 있는 해 끼워서 왔어?" 이런 고참의 질문에 "대선 피해서 왔습니다" 하고 답했건만 그해 선거는 내 관심사도 아니었다.

이명박 시대의 추억?

ⓒ프레시안(손문상)
그때를 기억한다면 이명박 시대에도 추억은 있다. 세상은 더 나빠졌지만 그런 만큼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은 더 많았고 논평가에게도 할 일이 많았다. '정치에 새로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흔히 '뉴비'라고 표현하는)이 늘어났고 이들은 자신들이 알게 된 몇몇 단편적인 지식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어떤 루트를 통해서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점점 더 다른 정보를 찾아보며 자신의 맥락을 구축해 나가도록 되어 있다. 2011년 <나는 꼼수다> 열풍이 불자 심지어 나 같은 듣보잡 글쟁이에게도 "나꼼수 때문에 정치에 관심가지고 트위터 하다가 님 글을 읽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2008년 촛불 당시에도 덕분에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 내 정치적 대화의 대부분은 과거 반독재 투쟁의 형식은 그대로 남겨둔 채 그 대상만 '전두환'에서 '이명박'으로 바꾸려 했던 기존 386 세대 정치 인식의 틀과 그것을 그대로 수용했던 또래 세대와의 불화의 기록이다. 나는 "MB는 독재자다"란 말에 반대했고 그렇기 때문에 1987년 이전의 민주 대연합이 필요하단 말에 반대했으며 모든 일을 '벙커 속의 가카'가 지령하는 일이 아니니 만큼 대통령만 욕할 게 아니라 민주화 이후 각 권력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봐야 훨씬 더 정치를 진전시킬 수 있는 비판이 가능할 거라고 썼다. 특히 검찰과 법원을 '정권의 개'로 환원하는 인식이 별로 도움이 되지 못 한다 보았고 법원 판결에 대해 이런저런 글을 남겼다. 지금도 그 생각에 '기본적으로' 변함은 없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 문건 폭로 이후 많은 것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이명박을 악마화하는 음모론적 정치 평론에 대한 나 같은 사람의 반대는 이 세상이 더 이상 권력 기관들끼리 작당하고 대통령 개인에게 '절대 반지'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상식'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은 그 '상식'에 균열을 내는 행동이다. "너희들은 설마 '벙커 속의 가카'가 모든 것을 통제했다고 믿는 거니?" / "믿기지 않죠? 그런데 그것이 사실로 일어났습니다!!!"가 되는 것이다. 김종익에 대한 민간인 사찰 의혹이 터져 나왔던 2010년에 나는 <한겨레> 'hook'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었다.

"<배틀로얄>의 대사를 인용한다면, '참으로 빈틈이 없는 룰'이다.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되도록 룰이 세팅되어 있는 것이다. 정치적 활동을 하려면 회사를 다니면 안 된다. 가령 '철밥통'으로 소문난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더라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가입하여 민주노동당에 당비를 내는 순간 그 철밥통이 걷어차일 테니까. 단 교장 교감이나 고위직 공무원이 된 후 출세를 위해 한나라당에 거액의 후원금을 내는 건 뒤탈 없는 일이니 걱정하지 마시길.

정치에 관심을 가지려면 사업가가 되어서도 안 된다. 사업가가 되어 정치 참여를 했다가는 오만 사생활을 탈탈 털려가며 남들이 안 지키는, 있는지도 모르는 법들의 위반 여부를 조사당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최근엔,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 직종에 교수, 연구원, 방송인, 개그맨 등이 추가되었고 그 목록은 점점 늘어만 간다. 조금 있으면 야당 국회의원, 당료, 보좌관, 몇몇 개혁 매체 기자, 그리고 백수를 제외하면 정치에 관심을 가질 권리를 잃어버릴 기세다. 아, 백수는 미래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안 되는구나!

이 정부가 의도하는 것은 아마도 1997년 이전의 세계, 정권 교체가 불가능해 보였던 세계로 시계를 되돌리는 것일 게다. 다행한 일이지만 정부의 이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정책을 모두 바꾸어 버리는 것은 가능해도, 지난 10년 동안 사람들의 경험을 뇌리에서 지울 수는 없다. 한번 '자유'를 맛본 사람이 그 자유를 포기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겁이 많은 시민들은, 여론 조사에선 여당 비토의 의사를 표명하지 않다가 비밀 투표하는 날에만 딱 한번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는 패턴을 학습하고 있을 뿐이다. 2010년 지방 선거의 결과는 바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박정희가 되고 싶었던 이명박?

즉, 이 정부는 한국 사회를 박정희 시기로 돌릴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것을 욕망하기는 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사건 수사에 대한 증거 은폐를 했던 장진수의 폭로는 대통령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적어도 수십 명에 대한 민간인 사찰이 우발적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진행됐고 검찰 수사가 들어오자 증거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여러 권력 기관들이 작당한 정황이 있다. 즉, 이명박은 박정희가 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했던 거다.

이명박의 행운은 그의 수많은 부도덕함이 그 캐릭터를 뭔가 웃기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를 둘러싼 수많은 부정부패 의혹, 추문, 사실상의 거짓말 등과도 격을 달리한다. 이제 야권은 실제로 총선 후에 대통령의 출국 금지를 요구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야권이 개헌선을 넘어서 탄핵을 실행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이는 퇴임 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울 만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MB는 독재자'라는 말 역시 이제 단순한 수사법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사건은 내 입장에서 본다면 정권과 검찰이 정치 평론가에게 흙을 준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범상하게 벌어지고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는 세상이라면 <PD수첩> 판결 뒤에서 김미화의 낙마 뒤에도 '벙커 속의 가카'가 있다는 음모론 이외의 정치 평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 음모론이 서식할 토양이 아직도 굳건함을 몸소 드러내 보이려고 한 셈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퇴행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사건에 대해 심각함을 느껴야 한다. 2년 전에 나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 권력을 위법하게 남용한 이들의 '죄'는 도덕적인 차원에선 독재 정권 시절 국가 폭력 부역자들에 비해 가벼울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정치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수십 년 전의 '범죄자'들에 비해 훨씬 처벌하기 수월한 죄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낙하산 코드 인사와 비리를 단죄(!)한 조·중·동은 그 정권 이후에 집권한 한나라당 정권의 권력 남용에 대해 변명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위법 행위'와 이명박 정권의 '위법 행위'는 정치적으로 다른 층위에 있는 거다. 우리는 그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들이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요구했던 것에 상응하는 책임을 오늘날의 범법자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이렇게 명명백백한 '범죄'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질 때에야, 국가 기관의 중립 문제에 관한 결코 쉽지 않은 담론적 합의의 길도 열리게 될 것이다."

사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해졌고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의 양도 늘어났다. 시민들은 권력 기관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고 이런 경우에는 수사 기관의 발표도 믿을 수 없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서사'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사'는 민주 정부 시기에 많이 근절되었던 '사찰'이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필사적으로 밀고 있는 '서사'는 민주화 이후 사찰이 점점 더 줄어드는 상황에 이명박 정부 역시 서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와 관련자들의 발언을 볼 때 나는 후자를 믿기 힘들다. 그러나 그들이 까발려지는 상황에서 내 믿음을 뒤집을 증거들을 폭로한다면, 당연히 그것들 역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가능한 책임을 물리면 될 일이다.

대통령과 정권의 전지전능함 혹은 무력함

이런 사건이 터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이 정치권력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곤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 사설에서 하나 배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이 사건에서 정치권력의 무능을 읽어냈다는 것이다. 4월 3일자 사설을 인용한다.

"현 정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각 부처에서 차출된 공무원 40여명이 7개 팀에 나뉘어 활동했다. 박정희 정권 이래 역대 정권이 이런 유(類)의 공직 사회 암행 감찰 조직을 운영해왔다.

이번에 일부 사찰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관가(官街)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감찰 조직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가 처음 드러났다. 이들이 국민 세금을 쓰며 모았다는 정보 대부분이 여의도 증권가 루머 같은 허접스러운 뒷이야기들이다. 사설 흥신소처럼 공직자들의 불륜(不倫)을 캐기 위해 미행이나 도청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간다. 역대 대통령과 정권 실세(實勢)들이 이런 쓰레기 정보로 국정을 운영하고 나라 안위(安危)를 살피는 데 무슨 도움을 받았는지 알 수가 없다.

과거의 권력자들은 비밀 조직을 통해 수집한 상대방 약점을 가지고 자기 진영의 군기를 잡고 반대 세력의 비판의 날을 무디게 할 수 있으려니 생각해왔다. 그런 정보 정치가 독재 정권 시절엔 어느 정도 통했으나 인터넷과 SNS로 정보가 사통팔달(四通八達)하는 요즘 세상에 뒤캐기와 약점 잡기로 공직자와 반대파를 길들이려 하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는다. 불법 사찰은 그 비밀도 오래 지켜지지 않아 정권이 끝나기 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정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앞서 말한 '사찰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서사'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 사설에는 중요한 지적이 담겨 있다. 그것은 "사찰이 (애먼 사람들이나 괴롭혔을 뿐)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확인된 문건 중 이명박 정부의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문건이 집중된 시기를 보면, 다른 종류의 '서사'의 가능성이 보인다. 일단 확인되는 건 이 정부의 사찰이 2008년에서 2010년 사이 맹위를 떨쳤다는 것이다. 이는 한참 부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늘어났던 시기와도 일치한다. 해석을 좀 더 넣자면 중도파의 지지를 받고 탄생했다 믿었던 이 정부가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더 보수적으로 회귀하면서 '사찰'이란 방식을 택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와 비교·대조할 수 있는 부분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진보파의 지지를 받고 탄생했다 믿었건만 2003년에 노동계·진보 세력과 격한 마찰을 겪었다. 정태인 등의 주장에 의하면 그 후에 본격적으로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와 관료들을 신뢰하는 정치를 펴나간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빠진 맥락은 노무현 정부가 민주당과도 대립하느라 민주당이 축적해 놓은 관료 출신 정치인들도 써먹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야권의 정권 운영 능력, 충분한가?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경제 성장 이후 복잡해진 사회 문제를 행정부가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진실이다. 누구를 활용해서 통치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을 때 노무현 정부는 삼성경제연구소와 관료 사회의 전문성을 택했고,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찰'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사찰이 더 늘어난 게 아니라는 청와대, <조선일보>의 '서사'를 내가 못 믿는 이유 중 하나는 나 자신이 이런 '서사'로 이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관료 사회를 신뢰한다 거듭 말해야 했던 노무현의 정신세계는 공무원을 통제해야 했던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는 다르다. 대신 노무현 정부는 노동계에 대해서는 통제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며 이 역시 이번에 폭로된 문건에서 일부의 정황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는 경찰의 정보 보고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가 기관의 남용 문제로 시민 사회가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지만 일단은 합법의 영역이다.

문제는 재벌 연구소와 공무원 사회 일반을 신뢰한 경우는 '개혁의 후퇴'로 드러났고 '사찰'은 효력을 못 봤다는 것이다. 문건은 정부가 재벌 그룹 인사들도 감시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동반 성장 프로젝트인가 뭔가에 재벌 그룹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자신들이 '좌파'라 낙인찍은 사람 몇몇 쫓아내고 그 자리에 충성한다 꼬리치는 탐욕스러운 자기편을 앉히는 정도나 했지, 국정 운영에서는 전적으로 무력했다.

정권 교체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교훈을 우리의 것으로 되살려야 한다. '가카의 꼼수'를 우리가 배운다 해도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 전문가 대부분이 자본을 위해 복무하는 기형적인 현실에서 전문가 집단 일반을 신뢰한다고 하면 노무현 정부 이상의 개혁을 할 수 없다. 변혁을 위한 활동가들의 요구를 관료들에 맞서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인력풀이 우리에게 있는지, 없다면 어디에서 찾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필요한 때다.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나 복원시키려는 민주통합당과 문재인에게서 내가 희망을 보기 힘든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리는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를 두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개혁 정치의 어려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다. 전자를 통해 이명박 정부 심판의 의지를 다지고 후자를 통해 각 시민들의 좀 더 지속적인 정치에 대한 관심이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위해서라도, 내일의 투표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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