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집 잘 읽었습니다. 2009년 '다윈의 해'에 쏟아진 진화 관련 책들의 홍수 속에서 건질만한 게 별로 없어서 아쉬웠던 차였습니다. 특히 한국적 맥락에서 진화론 150년 역사의 의미를 회고하는 담론이 부족했다고들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 책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역사학자 임지현, 생물학자 전방욱, 의학인문학자 강신익, 동양철학자 김시천, 그리고 대담을 이끌어가는 철학자 최종덕 선생님 들의 면면을 봐도 영민한 독자들을 들뜨게 만듭니다. 이 분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새롭고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계신 분이지 않습니까? 이들이 함께 펼쳐 보이는 진화론의 과학적 이해와 인문사회학적 함의들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귀한 지면을 빌어 서평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색다르게 써보겠습니다. 다윈 선생님이 이 대담집을 읽었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요. 또 한국적 맥락도 잘 알고 계시다고 해보지요. 이제 저는 다윈 선생님의 서재에 가서 그를 인터뷰합니다. 이 책에 대한 그의 소감과 해명, 그리고 비판들을 들어보겠습니다.
▲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
다윈 : 음…. 우선 흥미로운 부분들이 좀 있었습니다. 특히, 김시천 선생이 동양 사상의 관점에서 내 이론을 비교한 부분은 아주 독특한 시도였다고 봅니다. 대담자인 최종덕 선생과 의학자 강신익 선생도 동·서양의 비교학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서양 학자로부터는 듣기 힘든 말들이 많았어요. 이 점이 이 책이 내게 주는 새로움이었습니다.
장대익 : 여기 언급된 동양 사상은 이해하기 힘들지 않으시던가요? 저는 그쪽 공부가 짧아서 그런지 다소 추상적으로 읽히던데요.
다윈 : 난들 쉽겠어요?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긴 했습니다. 다만, 진화론적 사유와 동양적 사유 간의 유사성 및 상관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지식의 계보 그리기와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서 세상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이해나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또, 이건 좀 조심스런 말이긴 한데, 차이점보다 유사성을 강조하는 이런 비교들이 자칫 동양적 사고의 우월성이나 동등성에 집착하는 지적 열등의식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점검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책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장대익 : 한때 '신과학 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말인가요? 이런 우려는 최종덕 선생도 하고 계시잖아요.
다윈 : 내 말은, 단지 비교를 통해 유사성을 찾는 것이 최종 목표여서는 곤란하다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생각들은 모두 비슷한 면이 있으니까. 뻔한 얘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새로운 통찰과 더 넓은 설명력을 낳아야 그게 의미 있는 비교 아닐까요?
장대익 :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책에서 좋았던 점 몇 가지 더 얘기해주실 수 있으세요?
다윈 : 일단 구성이 맘에 듭니다. 역사, 사회, 생태, 철학적 관점에서 내 이론의 의미와 함의를 짚어줬으니 마치 맛있는 코스 요리를 먹은 느낌이에요. 다만, 구성에 있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진화론의 역사와 함의를 다루는데 진화생물학자나 과학사학자가 한 사람 정도는 대담에 참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찌됐든 이 책의 가장 특징은 '한국'이라는 상황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는 점일 겁니다.
장대익 : 그러시군요. 그 '한국적 맥락'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말씀 나누기로 하구요. 혹시 이 책에서 불편한 점, 또는 받아들이기 힘드신 부분은 없으셨는지요?
다윈 : 으흠. 일단 사실 관계가 잘못된 부분들이 더러 있더군요. 눈에 띄는 것 몇 가지만 열거해보죠.
임지현 선생이 "다윈의 외삼촌은 조시아 웨지우드로 본차이나 기업의 창시자"(40쪽)라고 했는데요, 외삼촌이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조시아 웨지우드입니다. 전방욱 선생의 경우, "라마르크의 주장은 다윈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억지"(106쪽)라는 표현을 썼는데, 좀 부끄러운 얘기긴 하지만, 내가 끝까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의존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강신익 선생의 경우에는, "보노보는 계통수로 볼 때 침팬지보다 인간에게 훨씬 가까운 호미니드종이다"(234쪽)라고 했는데, 침팬지와 보노보는 같은 '침팬지속(Pan)'에 속해 있어서 서로가 더 가깝지요. 우리는 '사람속(Homo)'에 속해있지 않습니까? 김시천 선생의 경우도,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의 책이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내의 연령대를 조사한 결과를 진화심리학으로 해석한 것"(382쪽)이라고 했는데, 그들의 연구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아니라 의붓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사례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대담자들이 책을 내기 전에 이런 사실 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검토를 했어야 합니다.
자칫 똑똑한 독자들에게 신뢰를 잃을 수 있잖아요. 대담을 이끌고 있는 최종덕 선생의 경우에도 몇몇 오류가 눈에 띄었어요. 최 선생은 내가 "비글호 항해 5년 동안 부인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다"(179쪽)고 했는데, 나는 항해가 끝나고 3년이 지나서야 결혼을 했어요. 내가 장가를 두 번 갔었던가? 하하하.
장대익 : 에드워드 윌슨을 데이비드 윌슨으로 잘못 표기하거나(207쪽, 325쪽),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red in tooth and claw)"이라는 관용적 표현을 계속 "피 묻은 이빨"로 표기한다든가, 45억 년 된 지구의 나이를 "140억 년 이상"(429쪽)라고 오기한 부분들은 분명 옥의 티들입니다.
다윈 : 사실, 글을 쓰고 책을 내다보면 이런 실수들은 흔히 있는 일이니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애교로 봐줄 만한 것들도 많았으니까요. 더군다나 이 책의 저자는 실상 다섯 명이나 되잖아요? 정작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불편했던 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장대익 : 어떤 점이었나요?
다윈 : 내 후예들에 대한 평가가 좀 공정하지 못해요. 한마디로 편향적이라는 얘기죠.
장대익 :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다윈 : 이 책에는 진화론의 두 팀이 등장합니다. 편의상 A팀과 B팀이라고 하죠. B팀에 대해서는 사회진화론, 우생학,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환원론 등의 용어가 따라다니고, 스펜서, 윌슨, 도킨스 등이 거론됩니다. 이들은 이 책에서 하나같이 비판받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도매금으로 비난받는 수준입니다. 반면 A팀의 굴드와 르원틴 같은 학자들은 '좋은 녀석들(good guys)'로 분류되어 칭찬받고 있더군요.
장대익 : 물론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런 관점을 갖는 것 자체는 대담자들의 입장이나 취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좀 그 부분이 걸리긴 했지만요.
다윈 : 오, 물론이에요.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편향이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 편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좀 미약해 보인다는 점이에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죠.
최종덕 선생은, "사회생물학이 아전인수 격으로 자연 현상을 자기 이익에 맞추어 재조립하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87쪽)고, 전방욱 선생은 "한국에는 지극히 일방적인 진화론만 소개되어 있다"(146쪽)고, 강신익 선생은 "인간 사회가 [분명한 위계 질서가 있는] 침팬지 사회처럼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생물학의 횡포에 해당한다"(231쪽)고, 김시천 선생은 "사회생물학이 생물학적으로 밝혀진 인과성을 인간 사회의 다양하고 복잡한 심리 상태나 집단 정신에 무반성적으로 적용하는 몰인간적 폐해를 보였고"(323쪽), "(도킨스와 윌슨)의 입장은 모든 건 다 적응된 결과라는 것"(406쪽)이라며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요.
그런데 보세요. 하나같이 잘못된 근거로 비판하고 있잖아요. 사회생물학이 언제 우리가 침팬지 사회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까? '모든 것이 다 적응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진화심리학이던가요? 한국에 굴드와 르원틴 같은 저자들의 주요 저작들이 소개된 적이 없단 말입니까? 이건 좀 지나칩니다.
장대익 : 저도 공감합니다만, 제 경우에 진화론 논쟁이 이념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와서 그런지 이젠 좀 그런 비판에 무덤덤해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책의 부제를 보며 기대하던 것들이 채워지지 않아 좀 실망한 측면이 있습니다. 부제가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잖아요. 저는 당연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진화론 관련 논쟁들이 다뤄질 것을 기대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어떤 독자라도 그런 기대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대담자 중 누구도 한국에서 진화론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실명이 등장하지 않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 100년 동안 한국에서 진화론이 어떻게 수용되고 진화해왔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었습니다. 대신 동서양의 외국 학자들의 이름과 이론이 주로 논의되고 있었어요. 이 책에서도 여전히 '한국'은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윈 : 그런 점이 있었군요. 하기야 나는 한국 상황을 잘 몰랐으니. 그런데 혹시 장 선생 이름이 나오지 않아서 섭섭했던 것은 아니고? 하하하.
장대익 : 에이, 그런 것은 아니에요. 한국에서 진화론의 역사를 논할 때 꼭 언급되어야 할 다른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요. 여하튼 간만에 그래도 깊이 있는 대담집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이제 마무리 해주세요.
다윈 :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최종덕 선생이 나를 가상으로 인터뷰했더군요. 맨 뒤에 보니 출전을 포괄적으로 표시하긴 했지만, 가상 대담이란 게 원래 인터뷰 하는 사람이 인터뷰 당하는 사람의 입을 빌어 결국 자신의 말을 하고자 하는 것 아니겠소? 다시 말해 왜곡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죠.
최 선생은 내가 마치 기독교와 진화론을 '분리된 영역'으로 본 것처럼 서술했던데(442쪽), 이건 진실과 좀 먼 얘기입니다. 나는 세계관의 충돌을 보았어요. 그래서 너무 괴로웠었지. 내가 '분리론'으로 이 문제를 쉽게 해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는 (내적으로) 맞서 싸웠지만 끝내 분명한 해결을 보진 못했지요. 그게 바로 나에요.
장대익 : 진화론은 과학이지만 과학의 울타리를 넘어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여러 접점들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차분히 앉아 이 책을 읽으며 진화론이라는 과학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살아왔는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윈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서평을 놓고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인 최종덕 상지대학교 교수가 '프레시안 books'에 반론을 보냈다. 반론은 9월 3일 발행된 '프레시안 books' 6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장대익의 서평에 답한다…다윈이 지식 권력의 수단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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