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1주년을 앞두고 있고 3월 23일 원자력 산업계 정상회의와 26~27일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지난 15일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을 발족해 '핵안보'가 아니라 '핵으로부터의 안전'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은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과 공동 기획으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및 핵무기, 핵발전의 문제점을 짚어 보는 릴레이 기고를 마련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등 7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편집자> |
9.11과 미국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는 여러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미국은 재래식 무기에 의한 비행기 납치와 자살 공격이라는 다소 구시대적 방식의 테러 공격 앞에 무너졌고, 미국인들은 혼란에 빠졌다.
9·11 이후 미국은 핵 테러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테러리스트가 납치한 비행기가 빌딩이 아니라 핵발전소에 충돌한다면, 혹은 핵물질을 싣고 민간인 거주 지역으로 돌진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도 힘든 만큼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애초 핵연료봉이나 핵폐기물의 안전한 이동 관리라는 이슈로 출발한 '핵안보'라는 개념이, 이제는 핵시설에 대한 사보타주나 핵물질의 탈취에 대응하는 '핵 테러로부터의 안보'라는 문제로 변한 것이다.
미국의 핵 정책과 핵안보
핵안보가 미국의 군사전략에서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오바마 정부가 새로운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를 발표하면서부터다. NPR은 미국의 핵정책과 전력태세를 제시하는 문서다. NPR은 이를 위해 핵 물질의 밀수 탐지·차단 능력을 강화하고,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려는 테러리스트를 지원·허용하는 행위자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핵 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여기서 미국의 목표가 분명해진다. 미국이 말하는 핵안보는 핵무기의 확산을 보다 강력하게 차단하는 것이다. 즉,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핵안보정상회의는 NPR이 제시한 미국 핵정책의 핵심인 '핵 확산과 핵 테러리즘의 차단'을 국제적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너지는 비확산 체제
핵무기의 확산 문제는 원래 '핵비확산조약'(NPT)으로 대표되는 '비확산 체제'를 통해 이뤄졌다. NPT는 핵무기 보유국이 점차 그 수를 줄여(핵군축) 핵무기 공격의 위협을 없애고, 다른 나라들은 핵무기 보유를 시도하지 않으며(비확산), 대신 그들이 핵발전을 할 수 있는 권리(핵의 평화적 이용)를 보장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NPT는 핵무기 보유국이 그 수를 증가시키거나 질적으로 개량하는 것에는 어떠한 제재도 가할 수 없다. 또한 미국은 핵우산, 핵 선제공격 정책을 유지해 핵공격 위협의 해소라는 문제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핵무기 비보유국들은 NPT가 그저 자신들의 핵개발을 막아 기존 핵무기 보유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틀로 보였다. NPT에 가입하지 않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아무런 제약 없이 핵무기 보유에 성공했다.
정부의 홍보책자에도 나와 있듯이 '현재 세계에 약 12만650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의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이 산재해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물질을 안전하게 지키고,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의 사용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물질을 잘 관리한다고 해서, 혹은 핵 테러의 위협을 잘 차단한다고 해서 우리가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 후쿠시마 원전 수소폭발 장면 |
진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은, 핵발전 자체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지진과 뒤이은 쓰나미로 인해 핵발전소 전력공급 시스템이 무력화되는 사고는 핵 산업계나 정부가 말하듯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그런 사고는 이미 일어났다. 태평양 주변 지역의 지진 발생은 늘어났고, 전에 없던 규모의 지진도 많이 목격된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 앞에 핵발전소 안전 신화는 무너졌고, 핵발전이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불어 아직도 너무 많은 핵무기가 존재하고, 핵발전을 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보유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의 추정치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최대 2만500기의 핵탄두가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핵무기 때문에 안보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핵무기를 확보하려 애를 쓰고 있다.
핵물질과 핵시설의 방호보다 중요한 것
지구를 몇 번이나 멸망시킬 수 있는 핵폭탄과 핵발전소를 안고 있는 한 우리의 생명은 끊임없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핵테러는 가상이 아닌 실제적 위협이며, 안보에 있어서는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존재하는 핵발전의 위험'을 '아직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핵 테러'의 위험으로 환원하고, 핵발전소의 안전을 강화하면 핵발전을 지속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실제 정부는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세계적인 탈핵의 흐름을 거슬러 핵발전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부의 말대로 우리의 안전을 위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야 한다면 핵발전소 안전 강화가 아니라 핵발전 중단을, 그리고 핵무기 폐기를 말해야 한다.
우리의 대안이 국격이다
정부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로 한국의 국격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국제회의를 앞두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테러 대응 훈련을 시작했다. 핵안보정상회의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이전에 정부는 엄중한 경호 조치부터 내세운다. 또한 회의가 개최되는 코엑스 주변의 노점상들은 철거됐다. 강남역 주변은 이미 정비가 끝났고, 선릉역 등 주변 지역으로 정비 작업이 확대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희생.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국격 향상이다.
반면 핵안보정상회의에 문제 의식을 가진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및 노동조합은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을 구성했다. 3월 23일에 열리는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과 26~27일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맞선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퍼져나가고 있는 세계적인 탈핵 흐름에 대한 정부와 핵 산업계의 반격이며, 핵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따라서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하는 이 싸움은 저들의 반격을 막아내고 탈핵의 흐름을 확대할 수 있느냐, 또한 비확산 체제의 한계를 폭로해 이를 넘어서는 핵무기 감축과 폐기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저들에게는 대안이 없다. 이제 우리의 대안을 저들에게 말해 주어야 할 순간이다.
프레시안은 '후쿠시마 1년, 핵 없는 세상을 꿈꾼다'를 주제로 연속 강연을 마련한다. 3월 6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2층 강당에서 열리는 이 강연에는 김종철 발행인(6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13일), 핵 전문가인 장정욱 일본 마쓰아먀대학 교수(20일)가 참여한다. (☞강연회 상세 내용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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