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UCLA에서 진행되었던 '나꼼수' 강연회에 참석했다. 나꼼수' 팀이 미국에서 순회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올 초에 연구년을 받아 미국에 온 필자로서는 이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때마침 UCLA에 온다니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문화판에서 벌어졌던 이런 저런 일로 과거 몇 번 만나본 적이 있었던 김어준 씨와 반갑게 인사도 할 겸, 그리고 이들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 재미있는 '이빨'로 좌중을 압도할까 궁금해 하면서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나꼼수'가 뭔지 잘 모르는 딸아이와 함께 강연장에 들어갔다.
역시나 경연회에 참석한 많은 청중들은 3명의 나꼼수 멤버들과 정봉주 의원을 대신해서 참여한 소설가 공지영 씨의 발언을 귀담아 듣고, 수시로 이들의 발언을 지지하는 뜻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나꼼수'와 한국 사회의 역학관계, '나꼼수'의 미디어적인 기능, '나꼼수'와 진보언론과의 관계, '나꼼수'와 한국의 민주주의 등 참석자들의 쏟아지는 질문들이 심도 깊고, 진지했던지 '나꼼수' 멤버들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강연은 좋은 질문과 좋은 답변으로 이어졌고, 한국 정치 지형의 답답한 현실에 '쫄지 않고' 통쾌하고 직설적인 언어로 말하는 이들에게 미국의 한인 청중들은 적지 않은 위로를 받는 분위기였다. 강연이 끝나고 책 사인회 시간 때문에 패널들과 제대로 인사하지도 못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와중에 내 머리 속에 내내 맴돌았던 것은 바로 진보에 대한 나꼼수 멤버들의 생각이었다. 진보에 대한 그들의 답변은 하루 종일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강연회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주진우 <시사인> 기자, 그리고 시사평론가 김용민 교수가 진보지식인 혹은 진보 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단상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진보 지식인들은 5분 안에 해도 정리할 수 있는 말들을 책 한권으로 말한다. 그들은 대중의 언어로 말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적 유희를 위해 그들만의 언어로만 말하려 한다. 그러니 대화가 안 된다. 진보 혹은 좌파 지식인들은 대중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대중들을 설득하려면 대중들의 언어가 필요하다.' 이런 정도의 멘트였다. 그리고 어느 청중들로부터 받은 질문 중에서 '나꼼수'는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질문에 김어준 총수는 진보가 꼭 계급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사실 이날 강연회에서 진보와 좌파에 대해 언급한 이들의 발언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 취지의 발언은 나꼼수 팟캐스트 방송을 듣고 있으면 자주 나오는 말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발언은 일리가 있다. 실제로 진보적 지식인, 진보정당, 진보 미디어들은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설득하는데 줄곧 어려움을 겪어왔다. 아니 실패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다. 특히 대중들과 소통하는 언어의 문제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의 관습은 너무나 경직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필자 역시 김어준의 생각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도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지식인들과 현장 활동가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언어는 너무 경직되고 스타일도 너무 굳어있다.
▲ '나는 꼼수다' 여의도 공연 당시 ⓒ프레시안(최형락) |
그렇다면 진보와 좌파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주장은 모두 옳은 것인가? 바로 이 지점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들의 발언이 일견 타당하면서도 이들이 진보 혹은 좌파 운동에 대해 너무 쉽게 자기 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고 정당한가하는 의구심 말이다. 김어준의 명료한 정리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찌르지만 혹여 그의 발언에 진보 혹은 좌파운동을 너무 손쉽게 단정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김어준 발언은 진보 운동의 개별적인 사례들을 평가한 것이 아닌 진보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의 일반적인 발언 속에는 진보에 대한 어떤 분명한 생각, 명료한 판단이 들어있다. 한마디로 진보의 화두는 재미없고, 진보의 지식인들은 잘난 척하며, 진보의 언어는 쾌락과 세속의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점에 자신의 판단과 가치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어준 식의 반어적 수사를 가지고 필자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진보는 좀 재미없으면 안 되나? 진보를 말하기 위해 진지하게 한권의 책을 쓰면 안 되나? 진보의 언어는 때로는 철학적이고 성찰적이면 안 되나? 20대 시절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을 공부하면서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대중의 자생성에 굴종해서는 안된다." 이 말은 어떤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 하는 외로운 혁명가들에게는 어울리는 말일지 몰라도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식인들, 수많은 현장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어울리는 말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진보와 변혁을 말할 때, 대중들의 평균적 의견에 반하는 일이 생겨날 수도 있다고 본다. 때로는 즐겁고 직접 화법의 언어도 필요하지만 고통의 언어, 긴 호흡의 언어도 필요한 법이다. 왜냐하면 진보의 현실과 현장은 늘 항상 고통스럽고 질퍽하고 대중들과 고립되어 외로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청계천의 시다들이 그랬고, 종로의 성적 소수자들의 언어가 그랬고, 안산의 이주 노동자들이 그랬다.
진보의 언어가 이 수많은 문제들을 대중들에게 설득시키기에 너무나 경직되고 자기도취이라는 지적도 일견 타당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것은 비단 '설득의 언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중들이 나서도록 진보적 지식인들이 새로운 언어를 개발해야한다는 것 역시 엘리트적인 생각이 아닐까? 문제는 대중들 안에도 이미 수많은 차이와 차별이 존재하고 진보의 담론과 실천은 일반적인 다수의 대중들을 설득해야하는 것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 대중들이 싫어하고 다수의 대중들에게 공포스럽고 설득될 수 없는 일들도 있다는 점이다.
'나꼼수'는 분명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대중들에게 용기를 주고, 정치로부터 무관심했던 대중들이 자신의 정치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도록 그들을 정치의 현장으로 호출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어떤 진보정당도, 그 어떤 진보 지식인도, 그 어떤 진보 미디어도 '나꼼수'만큼 단숨에 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나꼼수'의 진보의 정치는 보편적 민주화를 원하는 대중들의 정치를 대변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꼼수'가 일반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는 것은 일견 그들의 언어와 수사와 화법 때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중들의 원하는 것 바로 그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가 진보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말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명확하다. 가급적이면 최대 다수의 진보적 통합을 이루어내고, 그게 어렵다면 반드시 이번에 정권교체만큼은 이룩하고,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면 가급적 노무현의 정치적 후계자 문재인이 그 교체의 최종 승리자가 되는 것 말이다. 진보진영이 진보정치가 정파주의에 매몰되지 말고 대중이 원하는 이 거대한 물결에 아주 쿨하게 동참해야 한다고.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며 통쾌하다. 이것이 '나꼼수'가 특별하게 주장하는 정치적 비전인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이 정치적 목표가 대중들이 진정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김어준과 '나꼼수' 팀들은 분명 정권교체를 위해서 민주당부터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을 포함해 외곽에 포진해 있는 모든 진보적 민주 세력들의 통큰 대연합을 통해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길 원한다. 정치적 입장과 전망이 조금 혹은 아주 다르더라도 '공공의 적'인 '가카의 세력, 가카의 정당'을 몰아내는데 한 힘을 합하자는 것이다. 김어준 식의 미학으로는 이들의 정치적 차이와 대립은 쫀쫀한 것이고, 짜증나는 일이며, 대중을 위한 일이 아닌 것이다. "씨바 왜 연대, 연합을 할 수 없는 거야?"
그러나 진보적 정치에 대한 김어준 식의 비전은 진보 대연합을 통한 정권교체이고, 그 권력의 대안은 바로 문재인이다. 진보에 대한 실제 김어준과 '나꼼수'의 궁극적인 입장은 진보의 언어와 수사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정권교체 그 자체, 문재인으로 대변되는 제3의 민주권력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사실 대중을 설득하는 궁극적인 내용은 이미 나온 것이고 언어와 형식은 그 내용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진보의 언어와 수사가 필요하다는 김어준과 나꼼수 팀의 발언을 귀담아 들으면서 결국 그들의 진보의 목표를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대안 권력에 대한 궁극적인 목표지점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보편적 민주적 대중들이 원하는 가장 평균적인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보의 실제 언어와 이야기는 현실 권력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하고, 이른바 박원순의 권력, 문재인의 권력 그 이상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그 언어는 수사의 영역이 아닌 실제 현실의 언어, 수많은 진보의 담론 중에서 진보의 진보를 위한 것이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보편적 실천, 전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의 실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서열화된 대학 체제의 해체, 사회적 소수자들의 사회적 차별의 철폐, 평화적인 한반도 통일의 로드맵, 세계체제 내에서 한반도의 평화체제, 신자유주의식 다국적 금융자본의 해체, 권력을 대변하는 체제가 아닌 직접적인 민중의 권력을 통해 정치적 구현되는 문제 등은 진보 정치가 오래 동안 고민했던 문제들이다.
진보정치가 이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감성적으로 대중들을 대상으로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설득의 문제 이전에 실천의 내용 그 자체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먼저 필요하다. 이 문제들은 민주 권력의 교체만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이고, 제3의 민주권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김어준 스스로 말했듯이 진보 정치가 계급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맞지만, 계급을 대단히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맞다. 그런 점에서 '나꼼수'의 진보 정치에서 계급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모르겠다.
'나꼼수'가 진보정치에 충고하는 지점들이 중요하듯이, '나꼼수' 역시 진보 정치의 좀 더 급진적이고 민중지향적인 의제들과 그 진정성을 더 깊게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꼼수'는 항상 말한다. 우리의 역할과 목표는 정권교체이고 가카의 '위대한 꼼수'와 '야비한 반띵정신'을 끝까지 파헤치는 것이라고, 그 이후나 그 이상은 우리는 모른다고,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아주 쿨하고 솔직한 발언이지만, 적어도 그들이 진보의 정치를 이야기 할 때만큼은 조금은 비겁해 보인다. 그 이상을 말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 이상의 진보의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권교체만이, 문재인 대안 권력만이 진보 정치의 모든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민중들이 스스로 권력의 주체가 되는 진보 정치의 진정한 진보를 지연시키거나 유예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태도와 방식이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오늘도 '나꼼수'만큼 현실을 고민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진보 운동의 역사는 단한 번도 진보적 지식인들의 대중설득에 의해 좌우된 적이 없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대중들을 설득하려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어떻게 보면 계몽주의적인 발상이다. 진보적 지식인들도 그저 진보적 대중의 한 일원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나꼼수' 역시 대중에 대한 지도력, 전위적 각성이라는 환각에서 벗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김어준은 LA 강연회에서 '나꼼수'가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말하면서 이제 겨우 박원순 시장 한명 당선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들의 최종적인 할 일은 총선에 한나라당의 의석을 최소화시키고, 대선에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있다. 그러나 정작 진보정당, 진보적 정치인, 진보적 의제들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현실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들이 할 일이 아니며, 진보 정치인들이 스스로 할 일이며 만일 그들이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대중들을 설득시키는 언어와 수단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꼼수'는 도대체 진보의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일까?
'나꼼수'가 그냥 현실적인 정권교체를 위해 대중들과 즐겁게 '이빨을 깐다는' 것이면 모를까, 그들이 진보 정치에 대해 굳이 발언하겠다고 한다면 그들 역시 진보 정치의 다양한 의제들을 깊게 고민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진보정치의 궁극적인 진실은 언어와 수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전망에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의 LA 강연회는 나에게 진보정치는 어떻게 대중들과 만나야 하는가의 문제를 상기시키는 것뿐 아니라 대중들 스스로 원하는 진보 정치의 내용은 무엇인가(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상기시키는 시간이었다. 한 단락으로 이야기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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