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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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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휴가

[한윤수의 '오랑캐꽃']<188>

베트남에서도 혼인은 굉장히 큰일이다.
시골 출신은 하노이에서도 결혼식을 올리고 일주일 후 고향에 가서 또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

한 군인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군인회관에서 열린 하노이의 결혼식은 서울의 호텔 결혼식과 비슷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 그들의 고향인 중북부의 소도시, 타이빙에서 올린 결혼식은 우리 옛날의 전통 결혼식과 근사했다.
먼저 신부네 동네에서 잔치를 한다. 온 동네가 집집마다 방을 다 내놓고 손님을 대접했다. 음식은 가짓수가 무진장 많았는데 나는 한국에서 온 특별한 손님이라고 최고 진미인 고양이 고기까지 먹어야 했다. 골목을 앞뒤로 막고 의자를 놓고 차일을 치니 훌륭한 식장이다. 거기서 예식을 치르고 전세버스로 신랑의 동네로 이동했다.
신랑의 동네 가까이 가자 악사들이 연주를 시작했고 그 연주는 확성기를 통해 온 동네로 퍼져나갔다. 무척 시끄럽다. 하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게 양해되고 모든 게 용서되는 하루였다. 음식을 먹다가 사회자가 호명하면 누구든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일장 연설을 하고 또 노래를 불러야 한다. 나를 시킬까봐 은근히 겁이 나서 중간에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아마 내가 타이빙을 빠져나간 후에도 음주가무와 연설은 몇 시간 더 계속되었을 것이다.
베트남인들은 이렇게 혼례를 성대하게 치르기에 사장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쿤은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사장님에게 두 달 휴가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사장님은 두 달 휴가는 줄 수 없으니 *사표를 쓰라고 했다.
휴가가 왜 안 되느냐고 묻자 사장님이 말했다.
"두 달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책임이잖아. 난 책임질 수 없거든."

쿤이 찾아왔다.
나는 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무리한 요구야. 결혼 휴가 두 달씩 달라는 건."
"그래요?"
"그럼! 한국사람 결혼 휴가는 일주일이야. 알아요?"
"알아요."
"그런데 왜 두 달이나 달라고 했어요?"
"결혼 준비하고 잔치하고 신혼여행 가고 시간 많이 걸리거든요."
나는 그를 이해시켰다.
"그래도 두 달은 너무 길어."
"그래요?"
"그럼! 사장님 입장에선, 두 달 빠지면 다른 사람 쓰는 게 낫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 달 휴가를 달라고 해봐요."

며칠 후
사장님이 한 달 휴가를 허락했다.
쿤은 한국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되어 좋고
사장님은 숙련공을 잃지 않아서 좋단다.

*사표를 쓰라 : 사표를 쓰면 영구귀국이므로 재입국이 안 된다. 따라서 외국인 노동자는 절대 사표를 쓰지 말고 사장님에게 얘기 잘해서 휴가를 얻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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