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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유출이라고?

[한윤수의 '오랑캐꽃']<106>

사장님은 석 달이 지나도록 월급을 주지 않았다. 더구나 회사에 잘 나오지도 않더니 급기야는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아마도 어디론가 잠적한 것 같았다.

사장님이 나오지 않으면서부터 낯선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회사 이름이 바뀌고 사장님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태국인 푸타는 굉장히 걱정이 되었다.
"회사를 옮겨야 하나? 이대로 있어야 하나? 회사 안 옮기고 *넋 놓고 있다가 혹시 불법체류자 되는 거 아닐까? 어떡하지? 옳지, 발안센터에 가서 도와달라고 하자."

푸타는 그래서 조언을 구하러 일요일날 센터에 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사정을 알아야 조언을 해주지. 사정을 알아보려 해도 일요일이라 아무데도 연락이 안 되어서 일단 푸타 건은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화요일날 고용지원센터 외국인력팀에 전화했다.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인데요, 뭐 좀 여쭤보려고요."
"예, 말씀하세요."
"장안면 석포리에 있는 S산업, 혹시 회사 이름이 바뀌었나요?"
"그건 알려드릴 수 없는데요."
"왜 안 됩니까?"
"개인 정보라서 안되요."
"아니, 회사 이름이 무슨 개인 정보입니까? 거기 근무하는 노동자가 불안해서 자기 *회사 이름이 바뀌었나 알아보는 건데요."
"노동자 본인을 보내세요. 그러면 알려드릴 테니."
"노동자들이 평일날 거기 갈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일해야지! 그래서 우리한테 알아봐 달라고 위임한 거라니까요."
"노동자가 시간을 내야지요!"
"회사에서 쫓겨나려면 무슨 짓은 못해요! 외국인 노동자는 평일날 시간 못 냅니다. 일요일 밖에 시간이 안 납니다. 그렇다고 고용지원센터가 일요일날 근무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여간 정보 유출은 안됩니다."
"별 일이네. 자기 회사 이름도 알 방법이 없다 말입니까?"
"그럼 고용지원센터장 앞으로 정보공개를 요청하는 공문을 정식으로 보내세요. 체불임금 때문이라면 근로감독과에 진정서를 보내거나."
"너무하시네. 바뀐 회사 이름 하나 아는데 일일이 공문을 보내야 한다면 노동자들한테 위임받아 일하는 우리 센터는 어떻게 업무를 봅니까?"
"거기가 어딘데요?"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라니깐요."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모르겠는데요."
어이가 없다. 그 동안 고용지원센터와 쌓아온 유대가 산산히 부서지는 것 같다. 보나마나 타지에서 전입해온 공무원이 지나치게 경직되게 행동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해서 외국인력팀장에게 전화했다.
"고용지원센터나 우리 센터나 다 노동자들 도와주는 일 하는 거 맞죠?"
"그렇죠."
그래도 팀장은 좀 여유가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린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들을 대신 해주고 있는 겁니다. 안 그래요?"
"........."
"문제 있는 노동자들 전부 그리로 보낼까요?"
"미안합니다. 이 사람이 처음 와서 잘 몰라서 그랬을 겁니다. 제가 대신 사과할 게요"

그것으로 얘기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날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소장에게 전화했다.
"외국인 노동자 돕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 아니겠죠?"
"이해 좀 해주세요. 실은 얼마 전에 개인정보를 유출했다고 항의를 받은 사건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노동자 본인 신상에 관한 사항까지도 개인 정보라고 다 금지하면 이 사람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합니까?"
"노동자 본인 신상에 관한 거라면 한 번 논의해보죠."
"좋습니다. 저희도 그쪽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있으면 보완해드릴게요. 근로자의 위임장을 보내드릴 수도 있구요."
L소장은 합리적이고 전향적인 사고의 소유자라 어느 정도 신뢰가 간다.
하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앞으로의 경과를 더 지켜봐야 안다.

개인 정보 유출 금지? 다 좋다.
하지만 별 걸 다 개인 정보 유출이라고 쉬쉬한다면 노동자들 보고 장님이 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 이름이 바뀌었으면 당연히 알려주어야 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알려주어야지! 그래야 노동자들도 사태 변화에 대처할 거 아닌가!
금지(禁止)만이 능사가 아니다.
금지할 것은 금지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센스가 필요하다.
노동자 본인이 본인에 관한 것을 알려달라는데 왜 안 알려주나?

*넋 놓고 있다가 불법체류자 : 회사가 바뀌면 새 사업주가 기존의 외국인 노동자를 퇴사 처리하는 수가 있다. 이때 외국인 노동자는 자기 신분이 변한 줄 모르고 그 사업장에서 계속 일하다가 불법체류자가 된다. 이런 식으로 억울하게 불법체류자가 된 사람이 꽤 있다.

*회사 이름이 바뀌었나 :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 이름이 바뀐 것도 모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외국인들은 대부분 모른다. 한국말도 서투른 사람들이, 간판을 바꾸지 않는 한, 이면에서 진행되는 회사 승계과정을 어찌 알겠는가?
심지어 자신이 언제 어느 회사에 들어가서 언제 퇴직했는지 정확한 날짜를 몰라서 퇴직금 계산이 불가능한 외국인들도 수두룩하다. 또 근무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회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려고 해도 회사 전화번호를 몰라서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114에도 안 나오는 영세한 회사가 많다)
이럴 때 고용지원센터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용지원센터에는 모든 외국인 노동자의 계약서 및 근무기록이 보관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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