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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이제는 지역이다

[길에서 책읽기] 하승수,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촛불은 꺼졌다. 잔치는 끝난 것처럼 보이고 고지서는 화살처럼 수없이 날라와 박힌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는 버젓이 푸줏간 진열대로 밀고 들어왔다.

날마다 불꺼진 촛불을 잡아들이고 감옥에 가두는 소식이 초겨울 바람에 나뭇잎 떨어지는 것보다 더 스산하게 이어진다. 명박산성은 더 높이 쌓아 올려지고 있고 군사독재정권 때의 공안정국보다 더 교활한 조삼모사식 저강도 공안정국도 새롭게 선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야 뒤늦게 2007년 대선에서 일어난 선거 쿠데타를 피부로 실감한다. 이미 방송에는 5공식 쿠데타 진압군이 들어왔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역대 사상 최저 수준인 15.4%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총유권자 수 808만 명 가운데 50만 명이 '미친 교육'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50만 명의 선택이 앞으로 2년 동안 서울시 전체의 교육을 좌지우지하게 됐다.

정말로 이제 촛불은 끝난 것일까. 촛불 시민들은 결국 무엇에 참여했던 것일까. 그렇게 치열했던 봄과 여름의 밤은 그야말로 한여름밤의 꿈으로 끝나고 말았단 말인가.

1980년 3월부터 5월까지 수 십만의 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거의 날마다 축제의 시위를 벌였던 '서울의 봄' 때도 그랬다. 그 뜨겁던 민주주의의 희망과 열기는 5.17 군사쿠데타와 함께, 그리고 끔찍했던 광주민중항쟁의 살인 폭력 진압과 함께 한 순간에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일반 시민들이 느꼈던 처절한 절망과 허망과 분노는 지금의 촛불소멸론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하승수 지음>ⓒ프레시안

1987년 6월항쟁 때도 그랬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백만의 시민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고, 이제 드디어 가슴벅찬 민주주의의 새날이 열리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 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광주민중항쟁의 살인 진압 당사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느꼈던 좌절감은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대한 실망감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역사에는 시차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운동의 확산과 이동에는 시차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과 사회의 인식과 실천은 어느날 한 순간 확 깨달음에 도달하는 혁명과 돈오(頓悟)의 패러다임뿐만 아니라 동심원처럼 점점 더 멀리 퍼져나가면서 깨달음에 도달하는 점수(漸修)의 길도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나타난다. 이런 역사의 변화무쌍한 시간차 때문에 우리는 늘 새로운 선택을 하고 새롭게 다시 실천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게 된다.

촛불은 그러므로 꺼진 게 아니다.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풀뿌리 속에서 이제 새로운 변모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경험과 학습은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킨다. 아마도 앞으로 촛불은 아무도 예상못한 지난 5월과 똑같은 방식으로 켜지지는 않을 것이다.

단언컨대 촛불은 이제 지역으로 가야 한다. 촛불이 추구하고자 했던 한국사회의 변화는 지역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다. 사실 정치는 결국 지역이다. 서울도 한 지역이다. 민주주의는 지역의 자치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들이 만들어 낸 온라인상의 그 수많은 코뮤니티는 이제 실제 시민들이 삶을 살고 있는 지역공동체에서 생생한 살과 피를 얻어야 한다.

서울에서는 구 단위로, 전국의 시군까지 새롭게 생긴 수많은 지역 촛불 코뮤니티를 보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이미 미래를 실천하고 있는 촛불지성의 현장이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에게는 더많은 꿈과 더많은 몽상이 필요하다. 사회의 변화는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꿈과 몽상이 없다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막아낼 수 있는 방안도,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지켜내는 일도, 나라를 팔아먹는 공기업 바겐세일 민영화를 저지하는 일도, 교육과 의료, 비정규직 문제까지 한국사회의 모든 의제가 해결될 수 있는 기초는 지역이다. 주춧돌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중앙도 무너진다. 주춧돌이 없으면 중앙정치의 집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민주화를 완성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이른바 민주정부는 지역정치 차원만을 놓고 본다면 결국 지역 토호들의 부패를 강화시켜주고 지역을 완고한 보수의 아성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실천한 것이 아니라 하승수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풀뿌리 보수주의를 확실하게 착근 육성시켜 놓았다. 김대중, 노무현은 지역 자치와 민주주의의 역적들이다. 그들은 결국 유사 파시즘의 길을 활짝 열어놓았고 이명박 정부를 불러 온 장본인들이다.

하승수의 지방정치 진단은 간명하다. 수십년간 관변단체에 포진했던 지역유지들, 건설업자들, 부동산업자들 등 이른바 토호 기득권 세력은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로 태어날 수 있었던 지방자치 제도의 부활을 계기로 지방정치를 통해 지역의 정치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이들 지역 차원의 기득권연합은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일보다는 땅값 상승과 건설 이익, 투기 이익을 위한 부패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이들은 중앙정당이나 지방자치단체장과 유착되어 있고, 국가차원의 기득권연합과 연계되어 있다. 이른바 '개발동맹'이다. 이들은 평등, 인권, 평화, 생태 등의 단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때로는 적대감까지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세력들은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각종 선거 때에 표를 동원할 수 있는 조직과 사람들이 있다. 지역 내 각종 단체들의 상층부는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 중앙의 정당은 바로 이들 지방정치인들과 후견-피후견 관계를 맺으면서 중앙관료집단-재벌-보수언론으로 연결되는 '교체되지 않는 지배집단'을 구성하고 있고 한국의 대의정치를 장악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선거 때에 투표나 해 주면 되는 존재들일 뿐이다.

자치단체장의 구속으로 해마다 선거를 치르는 자치단체가 있는가 하면 어처구니 없는 지방의회의 부패와 무능함에 대해서는 너무나 흔하디흔한 일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왜 지역주민들은 이런 부패무능의 지역 토호들을 대표로 선출하는 것일까.

물론 지역 주민들 또한 개발과 성장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미 붕괴된 지역공동체를 복원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지역자치와 자립을 기획하는 주민운동과 정치운동이 소수의 지역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 먼저 지적되어야 한다. 지역주민들에게는 토호들 이외에 다른 대안세력이 없었다.

지난 8월 29일 경희대에서 열린 <한국사회포럼: 2010 지방선거 대응전략 토론회>에서도 역시 같은 논점이 되풀이 제기되었다. 일부에서 지방선거 또한 중앙정치가 설정한 구도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므로 지금부터라도 반한나라당 전선을 고민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주장이 이어졌다. 물론 그런 주장이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낡은 정치공학의 발상은 우리 사회를 전혀 변화시킬 수 없음은 이미 민주정부 10년이 웅변해주고 있다. 대의정치는, 그리고 진정한 사회변화는 소수의 지배권력이 바뀐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역자치 운동은 나 자신의 의식부터 바꾸는 새로운 사회전환의 풀뿌리운동이다. 다가오는 에너지-식량위기, 기후변화의 쓰나미 앞에서 우리는 지금 시급히 농업을 중심으로 한 풀뿌리 지역공동체 형성 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비정규직의 해결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니 정규직화니 법제화니 사회적 일자리 창출같은 실현불가능하거나 임시미봉의 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업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수백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예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의 농사꾼으로 존재이전을 해보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은 다름아닌 지역에 있다. 지역은 바로 생태이자 공동체이자 소농이다. 진보정당운동도 거품 빼고, 어깨 힘 빼고 다시 지역에서부터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한가위에 모처럼 가족과 함께 지역공동체에 대해, 농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시기를.

그리고 잠깐만이라도 고향에도 가지 못하는 기륭전자, KTX, 코스콤, 이랜드, GM대우... 이런 노동자들의 현실이 나 자신과 가족, 이웃의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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