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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선거하려면 상가권리금 문제에 머리를 싸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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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선거하려면 상가권리금 문제에 머리를 싸매라

[김제완의 '좌우간에']<19> '한상대회' 참가 재외동포들 각국의 사례 증언

선거 때마다 정치권은 소모적이고 무익한 정쟁이 아니라 '정책 선거하자', '서민 위한 정책으로 심판받자'고 말한다. 안철수 후보는 '민생법률'을 말한다. 이런 말이 구두선(빈말)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선을 두 달 앞둔 지금 각 캠프에 모인 전문가들이 밤을 새워 도전해볼 만한 과제가 있다. 자영업자들을 위한 상가 권리금 문제이다.

상가 권리금은 현재 상법, 민법 등 어느 법에도 규정이 없다. 법의 바깥에 놓여 있는 법외 제도이며 법치의 실종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 규모도 어림잡기 어려울 정도로 크지만, 지하 경제로 편입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함께 자영업이 늘고 있어 서민생활과 직결된 문제이지만, 정작 정치권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추적하다 보니 국토해양부의 주택정책 담당 고위관리의 잘못된 판단과 만나게 된다. 더구나 그 문제 발언을 언론이 검증 차단하기는커녕 전파하는데 일조했다. 이런 혼선 속에서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정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 계기가 된 국토부 관리의 발언을 찾아보았다.

국토부 주택정책관, 권리금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

2009년 2월 10일 용산참사 직후 열린 정부부처 합동 기자회견에서 국토해양부 도태호 주택정책관이 '권리금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관행'이라고 말했다. 예외적이고 특수한 관행이므로 법제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법이란 보편성 일반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것은 권리금 문제를 팔짱 끼고 바라보고 있는 정부의 입장이 타당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주택정책관의 한마디가 권리금 문제 논의의 진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태호 주택정책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권리금은 다각도로 검토했지만 세계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고 있는 국가가 없다.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제도로 사실 권리금은 세입자 간, 임차인에서 임차인으로 이동되기 때문에 임대인이 직접 받는 경우가 거의 드물고 이를 객관화할 수 없다. 경기변동의 요인에 따라서 권리금이 있다가도 없어지는 경우가 있고 여러 업종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공식 인정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다만 감정평가를 할 경우 매출액, 영업이익 등을 현실적으로 평가해 감정평가 참고사항으로 반영하는 정도로만 하고, 공식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을 계획이다." (2009년 2월 10일 자 <뉴시스> "정부 '재개발 권리금 보상, 인정하지 않을 것'")

ⓒ연합뉴스
세계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는 국가가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라는 발언은 명백한 거짓이다. 필자가 취재한 재외동포 상인들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권리금은 본래 세입자끼리 즉 임차인 간에 주고받는 돈이며 원칙적으로 임대자가 개입하면 안 된다. 권리금액을 객관화하기 어렵다지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절된다. 당연히 경기변동에 따라서 있다가도 없어진다. 이것은 권리금의 속성인데도 주택정책관은 그것 때문에 권리금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불성설이다.

고위 공직자의 잘못된 발언이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큰지는 곧바로 나타난다. 도정책관의 발언 이후 '권리금은 한국에만 있는 관행'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나가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권리금이란 통상 점포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과 영업방식을 이어받는 대가로 지급하는 금전을 말한다. 권리금 수수(收受)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관행이며, 민법에도 규정돼 있지 않다." (토지공법연구 2009년 11월, 허강무 "재개발사업 권리금 보상의 공법적 검토")

"권리금은 법적으로 인정을 안 해주는 돈이고 한국에서만 있는 제도 아닌 제도라고 하네요. 정부나 법원은 이런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으니 상가세입자들만 죽으라는 소리죠." (<삶> 2011년 7월 19일 자 '세상에 대한 쓴소리' 중 "명동 재개발 문제의 핵심은 권리금")

"권리금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관습이라고 한다. 권리금이라는 관습이 없는 외국에서는 점포나 비즈니스 권리를 거래할 때 매도자와 매수자를 대신해 변호사가 나서서 해당 점포의 납세실적을 바탕으로 점포의 가치와 거래 액수를 산정한다고 한다." (<프레시안> 2월 9일 자, 조성찬 토지+자유 연구소 토지주택센터장 "상가 세입자 권리금 문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일반 네티즌뿐 아니라 토지관련법 전문가, 주택문제 전문가들조차 권리금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관행 관습이라고 말한다. 이들도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 출처는 모두 도정책관의 발언으로 추정된다. 2009년 2월에 나온 도정책관의 말이 시기적으로 앞서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해서 권위있는 단정적인 진술은 그의 발언 외에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상대회' 참가 재외동포들의 증언…"권리금 어느 나라에도 다 있다"

올해 총선부터 재외국민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재외국민 유권자는 230만 명인데 그중에 절반 정도가 영주권자이다. 이들은 대부분 외국에 이민 가서 자영업에 종사하므로 상가 권리금에 대한 전문가들이다. 필자는 지난 16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한상대회' 참가자들을 취재해서 그들의 경험에서 나온 정보를 모았다.

▲ 지난 18일 폐막된 세계한상대회가 내년에는 광주에서 개최된다. ⓒ뉴시스

캐나다에서는 권리금을 '굿윌(good will)'이라는 말로 불린다. 선의, 선의의 돈 또는 선의로 인정해주는 돈이란 뜻을 가진 용어이다. 굿윌은 좁은 의미의 권리금이다. 재고비와 시설비까지 더해져 통상적 의미의 권리금이 된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많으며 다운계약서 관행도 있다. 재계약시 주거용 주택의 경우 임대료 인상 상한선 있으나 상가는 없다. 계약기간은 3년씩 두 번 모두 6년이다. 임대차 보호법 등에 따라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고 관행으로 이뤄진다. 그로서리(식품점)의 경우 2년 치 매출이 권리금 산정 기준이다. '한상대회'에 참가한 캐나다 한인상공실업인총연합회 안정호 씨의 증언이다.

시카고에서 온 사업가는 미국에서는 상점을 거래할 때에 기업가치를 판단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납세실적과 함께 매출과 순이익 규모 그리고 브랜드 가치 등을 평가한다. 나라마다 권리금을 뜻하는 용어가 다른데 미국에서는 '키머니(key money)'라는 말로 불린다. 상점의 문을 여는 열쇠를 건네받기 위한 돈이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권리금을 열쇠라는 뜻의 '야베(llave)'라고 부른다. 키머니와 같은 뜻이다. 중남미 나라들에 다 있는 관행이다. 3년마다 주인에게 키머니를 납부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법제화된 것이 아니고 관행이어서 부동산시장을 장악한 유태인들이 자의적으로 세입자들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아르헨티나 동포 출신으로 지금 서울에 거주하는 박채순 씨가 확인해주었다.

프랑스에서는 상점 권리금을 '퐁 드 꼬메르스(Fonds de commerce, 영업권)'라고 부른다. 일상생활 중에는 줄여서 '퐁'이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빠 드 뽀르트(pas de porte)'라는 별칭이다. 직역하면 "그 집 문앞 발걸음"이 된다. 세탁소를 예로 들어보자.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가 어느 지점에 있다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알고 있다. 세탁물이 생겼을 때 발걸음이 자동적으로 그 집의 문앞으로 향한다. 권리금은 고객들의 무의식적 습관적 인지를 돈으로 계량한 것이다. 프랑스인들답게 이런 특성을 따서 문학적으로 이름지었다. 3년 단위로 세 번 연장 계약하며 세무서 발급 공증계약서 양식을 사용한다. 만일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집주인이 임차인을 내보낼 경우, 이 양식에 기재된 권리금을 보상한다. 식당의 경우 1년 매출액이 권리금 협상 시의 기준이 된다. 프랑스 사례는 파리에서 영주권을 소지하고 생활했던 필자의 경험에 따른 것이다.

중국에서는 양도금이라는 뜻의 '전양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세무서에 신고 안 하고 세금 안 내도 처벌 대상은 아니다. 집주인과 계약 시에 계약서에 제3자에게 전양비 양도가 가능한지 여부를 명기한다. 통상적으로 변호사가 대행하므로 한국보다는 공식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흑룡강신문> 청도 지사장 박영만 씨의 증언이다. 인도에서는 '커미션(commission)'이라 불린다. 제도화돼 있지는 않다. 인도에서 건축업을 하는 동포의 말이다.

이 사례들에서 보듯이 여러나라의 시장에서 권리금이 거래되고 있다. 다만 이름이 다를 뿐이다. 법의 강제력보다 시장의 관행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는 나라가 없고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라는 뚱딴지 발언을 한 국토부 관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세입자와 집주인 간의 문제에 정부가 개입해야

혹시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하는 나라가 없다는 뜻을 잘못 말한 것일까. 취재 중에 만난 전문가 한 사람이 그런 추정을 했다. 세간에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 기회에 따져봤다.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한다는 말에는 두 가지의 갈래가 있다. 하나는 세입자 간에 거래한 권리금을 국가가 보호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권리금을 부당하게 높게 지불하는 등 사기를 당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다. 이러한 손실까지 보호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다. 국가가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경우는 세입자와 집주인 즉 임차인과 임대인 간에 권리금을 두고 발생하는 분쟁이다. <골목사장 분투기>(인카운터 펴냄)의 저자 강도현 씨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권리금에 대해서 발생하는 법적 분쟁은 대부분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발생한다. 거액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는데 임대계약이 완료되면서 강제로 사업장을 이전하게 되는 경우다. 건물을 리모델링한다든지, 건물이 매도되어 새로운 건물주가 건물의 용도를 바꾼다든지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113쪽)

강 씨의 지적처럼 권리금을 둘러싼 분쟁은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에서 벌어진다. 이때의 문제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서 해결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장사가 잘 되어서 권리금이 높아지는 경우를 상정해보자.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점포를 빼달라고 요구하고 자신의 친지에게 임차권을 주는 사례가 있었다. 또는 집주인이 월세를 상식수준 이상으로 올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법적인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이외에 계약기간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규정할 것인가도 과제이다.

사안이 복잡해 보이지만 선진국의 경험을 잘 연구하면 답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국토부 고위관리가 외국에는 권리금 관행이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려버리니 해결책을 찾을 길이 막혀버렸다.

이 문제의 해결방향도 문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대부분의 논의의 방향은 용산사태의 해결방안 찾기에 맞춰져 있었다. 뉴타운 등 재개발지역 세입자의 권리금 보상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문제대응 식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항구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권리금을 둘러싼 문제들은 현행법상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용산사태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안이 불과 몇 개밖에 나오지 않아 사회적 관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과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두 개의 법개정안에도 권리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명문화돼 있지 않다. 법무부는 권리금 연구 용역 결과를 받고 특별법 제정을 검토했으나 유야무야됐다.

적어도 쌍용차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비교하면 임대차보호법의 문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자영업자들은 단결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업종 특성상 모든 자영업자들은 독립적인 지위에 있으며 상호 간에 경쟁관계에 있기도 하다. 자본가에 맞서 단결이 요구되는 노동자 계급과 다른 점이다.

마르크스 이론에는 자영업자가 없어

자영업자들의 사회구조적 소외현상은 우리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소외계급을 대변하는 좌파정당도 자영업자 문제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알아보려면 마르크스의 이론이 만들어진 200년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노동계급이 맞서야 했던 지배세력은 지금과 같은 대기업 대자본이 아니라 쁘띠 부르주아로 불리는 소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새로운 진보사상이었던 자유주의로 무장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자유주의에 맞서 공산주의 이론으로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했다. 이 당시의 마르크스 저작을 보면 자유주의자 소상인들은 기회적인 계급이어서 신뢰할 수 없다는 내용이 보인다.

지금 한국이나 유럽 등 어느 나라에서도 소상인 자영업자는 노동계급보다 더 소외된 계급이다. 그러나 200년 전의 적대 관계 프레임이 그 뒤로 수정 보완이 이뤄지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렀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익을 각각 대변하는 좌파 우파의 구도에서 자영업자를 대변할 정치세력을 찾기 어려운 이유이다. 국민참여당 같은 리버럴 정당이 바로 자영업자들을 대변했다면 좌우의 틈새를 메꾸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국민참여당이 그들의 독특하고 고유한 영역을 떠나서 진보통합의 바람에 사라져 버린 것은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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