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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노근리 조사 재협상 검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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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노근리 조사 재협상 검토 없다"

장맛비 속에 노근리 56주기 위령제 열려

노근리사건에 대한 한미 양국의 2001년 조사 결과가 축소·은폐됐다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을 담당하는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외교부로서는 재협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유족 등 관계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26일 충북 영동군 노근리 사건 현장에서 열린 노근리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한 외교부 북미국의 조병제 심의관은 행사가 끝나고 열린 유족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노근리 사건과 재조사 요구란?

노근리사건은 한국전쟁 기간 중이던 1950년 7월 26일 미군들이 노근리 쌍굴다리 밑에 피난민들을 모아두고 사격을 가해 250여 명(신고자 수 기준)의 사망자를 낸 양민학살사건으로 2001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유감성명을 이끌어 냈다.
▲ 사건현장인 충북 노근리 쌍굴다리. 장맛비가 내리는 26일 오전 이곳에서는 56주기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열렸다.ⓒ프레시안

그러나 성명 발표와 동시에 발표된 한국과 미국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이 사건이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피난민 속에 인민군이 포함됐다고 생각한 현장 병사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며 조사보고서가 축소·은폐됐다고 주장해 왔고, 지난 5월 29일 미국의 <AP> 통신은 사건 하루 전인 7월 25일 대구에서 열린 미군의 피난민대책회의 내용을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정리해 미 국무부로 보낸 이른바 '무초 서한'을 공개해 학살이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증명했다.

무초 서한에는 "만약 피난민들이 미군 방어선의 북쪽에서 출현할 경우 경고사격을 하되, 이를 무시하고 남하를 강행할 경우 (피난민들은) 총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무초 서한이 2001년 조사보고서에는 왜 빠졌는지에 대해 확인 요청을 해 놓은 상태지만 미국은 2개월이 다 되도록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고, 유족들은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에 재조사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교부 "미국이 예산 연기할 가능성 없다"

조병제 심의관은 또 미국이 제공키로 한 추모사업 비용 400만 달러가 오는 9월 30일까지 집행되지 않을 경우 예산 기간이 만료된다는 미국 측의 통보와 관련해 "예산(집행의 시한)을 연기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며 "이제 결정을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추모사업이 노근리사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 의해 저질러진 100여 건의 양민 학살 전체에 대한 '면죄부'라며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유족 대표들은 이날 간담회에서도 이같은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명분상으로도 받을 수 없고, 우리가 그걸 받는다면 다른 사건 피해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소송에 걸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2001년 1월 12일 유감성명에서 "본인은 이들(노근리 희생자들)과 한국전쟁 중 희생당한 무고한 한국 민간인을 위해 미국이 건립할 추모비가 위로조치가 되고 이번 사건이 종결짓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말해 추모사업이 양민학살 사건 전체에 해당함을 분명히 했다. 그 후 미국측이 보내온 추모비 비문에도 '노근리'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 위령제가 끝나고 유가족 대표들과 조병제 외교부 북미국 심의관(가운데 서 있는 이)이 간담회를 갖고 있다.ⓒ프레시안

미국은 또 400만 달러가 보상금이 아닌 순수 추모사업비라며 보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추모사업은 추모비 건립과 장학사업으로 구성된다.

이에 대해 조 심의관은 "미국은 노근리사건에 보상을 하면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지난 100년간 해외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일어난 수많은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도 보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조 심의관은 또 "강대국을 상대로 일하다 보면 철벽이 있다. 가서 아무리 두들겨도 안 될 때가 있어 나로서도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면 명분을 미국에 주고 우리는 실리를 취하자고 (유족들에게) 말하고 싶다"며 "장학사업에서 노근리 유족들을 압도적인 다수의 수혜자로 하고, 나머지는 상징적인 수준으로 넣어주는 방식으로 해서 장학사업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피해자들, "명분도 실리도 없다"며 '미국식' 추모사업 거부

그러나 정구도 노근리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다른 지역 피해자 대책위원회에서 400만 달러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전화까지 왔다"며 "그걸 뒤집어 보면 양민학살 119건을 무마할 자신이 없으면 받지 말라는 얘기"라고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위령제에 참석한 다른 피해자들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양해찬 유족회 부회장은 "우리가 추모사업을 받으면 다른 양민학살 피해자들에게 공적(公敵)이 된다"고 말했다.

노근리사건 당시 한쪽 눈을 잃어 의안(義眼)을 사용하고 있는 양해숙 씨는 "정부에서 조금 받은 돈으로 눈 수술을 했는 데 턱없이 부족했다"며 "그렇더라도 다른 학살사건이 다 포함된 추모사업비는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 피해자 양해숙 씨는 "미국이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니까 우리 역시 오기가 생긴다"고 분해했다.ⓒ프레시안

지난 1999년 피해자들의 미 국무부 방문시 정은용 노근리대책위원장과 동행하기도 했던 양 씨는 "전에는 국무부 사람들한테 점잖게 얘기했었는데 이제는 늙어서 무서울 게 없다"며 "다시 한번 간다면 감옥에 들어갈 각오를 하고 따지겠다"고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조 심의관은 위령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무초 서한에 대해 확인을 요청하긴 했지만 서한의 존재 자체가 곧 상부에서 사격을 하라고 명령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해 미국이 설령 서한을 확인해 주더라도 재조사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조사 당시 무초 서한이 왜 누락됐는지에 대한 미국의 답변이 나오면 서한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이날 열린 위령제에서는 300여 명의 노근리 주민, 피해자, 유족회원 등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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