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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ㆍ무용 등 공연예술의 한류를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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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연극ㆍ무용 등 공연예술의 한류를 꿈꿔 봅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01] 예술경영지원센터 이규석 센터장

지난 1998년.... 국내 비주류 젊은 예술가들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창의적인 예술활동을 해보자며 <독립예술제>라는 새로운 장르의 문화축제를 마련했습니다.

이들이 펼치는 축제의 장에는 자유롭고 창의력이 넘치는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고, 젊은 예술가들은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또 2002년부터는 아시아 예술가들이 참여해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아시아의 비주류문화축제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비주류 젊은 예술가들의 중심에는 이규석씨라는 예술전문 경영인이 있는데요, 예술계의 변방에서 일해왔던 그가 최근 정부 산하단체인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는 왜 예술현장에서 행정직으로 자리를 옮겼을까? 그가 행정직의 중심에서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일까?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이규석 센터장을 초대해, 그가 예술행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은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이규석 센터장입니다.

이규석 센터장은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재학시절 연극동아리 "스케네"를 조직하면서 자신의 예술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연극을 너무도 사랑했던 그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입학한 후에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꾸준히 연극을 무대에 올렸고 극단에서 조연출과 기획을 맡아오면서 대학졸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학로로 진출했습니다. 1998년에는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독립예술제>를 시작으로 10년 가까이 비주류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오다 지난 1월 문화관광부 산하단체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문을 열면서, 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겨, 국내 예술현실에 맞는 예술경영에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약간 늦긴 했지만 센터장 되신 것을 축하드리구요, 아무래도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는 자유분방한 일을 하시다가 정부산하단체에서 관과 관련된 단체의 일을 하려면 느낌이 다르실 것 같은데, 넉 달 정도 일해보시니까 어떻습니까?

이규석 센터장 : 우선 책임감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구요. 이전에는 저나 동료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했던 거라면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예술단체나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같이 찾아내고 고민해서 뭔가 대안들을 마련하는 역할이다 보니까 거기서 오는 책임들이 많이 가중되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예술경영, 예술행정이란 말이 많이 쓰이고는 있지만, 무슨 소리냐.. 창작하는 데 무슨 돈을 대주는 거냐.. 그렇게 얼핏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예술경영지원센터라는 곳이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설명을 해주시죠.

이규석 센터장 : 명칭이나 기관 자체도 많이 생소하실 텐데, 기존의 예술지원은 주로 창작지원 중심의 직접지원이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창작에 필요한 돈을 대주는..

이규석 센터장 : 네. 그런데 예술에 대한 직접지원 수단이나 제도들이 발달되면서 최근에 와서는 예술에 대한 지원효과들을 효과적으로 배가시키기 위해서 간접지원에 대한 필요들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일종의 예술경영에 대한 지원이구요, 그런 역할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출범했다고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예전에는, 예술이란 창조적인 작업이다.. 그랬는데 이제는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 경영도 중요하다. 그래서 그것을 위한 노하우를 지원해 주는 것. 또 하나는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해외교류에도 굉장히 역점을 두시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규석 센터장 : 사업내용들을 중심으로 본다면, 현제 센터에서 주로 하고 있는 일들이 예술기관이나 단체에 대한 경영컨설팅 업무들이 있구요, 지금 지적하신 공연예술 중심으로 국제교류나 해외진출에 대한 지원사업들이 있고. 또 하나는 예술현장에 대한 다양한 평가사업들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센터장이 될 당시에 언론보도를 보니까 변방의 북소리가 예술행정의 중심에 들어갔다. 이런 얘기가 있던데요, 말하자면 어떻게 재야의 예술인이 상당한 액수의 돈을 쓰고 지원하는 책임자로 가게 됐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규석 센터장 : 저 스스로도 그런 자문도 많이 하고 주변에서도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입니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저 스스로 갖고 있던 정체성이나 대외적인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문화예술계의 야인이거나 반골.. 그런 역할을 계속 자임해 왔었고. 그러다 보니까 우리 예술계가 갖고 있는 경직된 구조나 비판적인 목소리에 대해서 많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었구요. 그런데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센터장 역할을 맡게 되면서 과연 이전에 갖고 있던 비판적인 목소리를 조금 더 실천적인 예술가의 역할로 옮겨갈 수 있겠는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도에 편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고. 이전에 했던 비판적인 목소리들을 제대로 된 예술행정으로 옮겨줄 수 있겠다는 기대도 같이 공존하는 것 같구요. 저도 그 사이에서 좀 더 실천적인 예술행정가의 위치에 설 수 있게끔 많은 고민을 하고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박인규 :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올해 생기면서 초대 센터장이 되신 건데 제가 알기론, 서울 프린지페스티벌을 약 8년째 꾸려오면서 현장에서 쌓아온 경영실력을 평가받아서 오시게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나요?

이규석 센터장 : 서울 프린지페스티벌을 통해서 해왔던 일들을 좋게 평가해 주시는 것 같구요, 요컨대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같은 현장에서의 기획들이 나름대로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이전에 없었던 축제의 모델이나 활동들을 조직해냈던 사례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의 현장경험이나 노하우, 노력들을 많이 감안해 주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그걸 만들어서 정착시키기까지는 정부의 지원이 별로 없었을 거 아닙니까? 바깥에서 굉장히 힘들게 했는데, 그때의 설움이랄지 그런 걸 지원에 써봐라. 그렇게 한 것 같은데요.. 프린지페스티벌.. 프린지라는 말도 낯선 것 같구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란 게 어떤 겁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97.3MHz)'

이규석 센터장 : 프린지라는 말은 직역하면 주변부나 가장자리. 이런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인데요, 프린지라는 용어가 문화계에 쓰이게 된 건 1947년에 에딘버러 프린지페스티벌이 만들어지면서 문화예술계 용어로 사용됐습니다. 조금 비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프린지페스티벌이라는 건 문화예술계에서도 일종의 마이너리그격이라고 보시면 되겠구요. 마이너리그라는 주변적 위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류문화에서는 소개되지 않거나 담아낼 수 없는, 실험적이고 새로운 예술가와 예술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는 축제. 이렇게 용어가 정착되게 됩니다. 예컨대, 우리가 브로드웨이라고 이름붙이긴 하지만 그 안에는 오프브로드웨이나 오프오프브로드웨이가 있어서 브로드웨이 중심가에서 선보일 수 없는 실험적이고 새로운 것들을 오프, 혹은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공급해 주는 것처럼 공연예술축제 안에서도 주류축제들이 해내지 못하는 역할들을 해주는 새로운 종류의 축제모델로 프린지페스티벌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처음에는 독립예술제란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그런 걸 만들 때는, 말하자면 어디에서 받아줄 데가 없다.. 그랬을 것 같은데 왜 독립예술제를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됐습니까?

이규석 센터장 : 1997년 무렵까지도 우리 문화예술계가 그렇게 다양하진 못했습니다. 제 기억으론 97년까지가 아마 사전심의나 이런저런 예술표현에 대해서 억압적인 제도들이 있었던 해였던 걸로 기억나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젊고 새로운 예술가들이 마땅히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창구도 없었고. 더더군다나 실험적인 예술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가 많지 않았던 상황이다 보니까 그런 예술활동을 하고자하는 개인이나 단체에게 마땅한 통로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보니까 그런 욕구들을 갖고있는 문화예술인이나 단체들이 한번 우리 스스로 판들을 만들어 보자. 그런 것들이 계기가 됐었습니다.

박인규 : 어떤 예술장르의 어떤 분들이 참여해서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됩니까>

이규석 센터장 : 장르로 보자면 종합예술축제.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축제성격이었구요. 그 안에서 장르별로 약간 특성이 있습니다만, 영화쪽에서는 주로 독립영화들이 그 축제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고, 음악의 경우에도 청취자 여러분이 익히 알고계시는 인디음악이나 언더그라운드 음악쪽의 밴드나 뮤지션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었고, 미술에서는 거리미술, 공연예술 쪽에서도 실험적인 연극인 무용인 중심으로 이 축제가 준비되게 됐습니다.

박인규 : 98년도에 처음에 시작하셨는데, 속된말로 맨땅에 헤딩한다고.. 처음에 상당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장소도 필요하고 경비도 필요했을 텐에 어떻게 조달하셨나요?

이규석 센터장 : 첫 회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거의 스스로 모든 것들을 해결해야 되는.. 표현하신 것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축제를 만들고자 모였던 사람들 스스로가 축제제작비도 만들어내고, 동인제 형식으로 출발하긴 했지만 그런 취지에 동참할 수 있는 젊은 예술인단체를 함께 또 규합해 나가면서 그런 축제만들기 작업이 진행됐구요. 그런 어려운 준비과정 끝에 대중들 앞에 축제가 선을 보이면서 일반관객들이나 언론을 통해서 상당한 정도로 호평도 있었고 많은 지지와 격려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이 축제가 일회적인 축제가 아니라 매년 지속적으로 열려야 한다는 주변의 호응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8년 9년씩 개최돼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시작하면서 소개도 드렸지만 2002년부터는 아시아 다른 나라의 예술인들도 참여를 하고 그래서 이름도 서울독립예술제에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로 바뀌었다고 했는데. 아시아 다른나라 예술인들은 어떻게 어떤 식으로 참여하는 겁니까?

이규석 센터장 : 매년 저희가 축제준비를 하면서 국내에서 젊고 실험적인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목적의식을 갖고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들에 대한 인적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예술가단체들에게 초청제안을 통해서 일종의 초청교류프로그램 형식으로 참여를 하고 있구요. 매해 전체 프로그램 중 약 10% 정도가 아시아권의 초청교류프로그램들이고. 참여하는 예술가나 작품의 성향은 국내에서 참여하는 것과 같이 젊고 실험적인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아시아라고 하면 어느 나라가 주로 옵니까?

이규석 센터장 : 특정 국가에 대한 편향성은 없구요.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의 국가에서 예술가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고 조금 넓게는 인도 같은 나라에서도 참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박인규 : 갈수록 커지겠네요... 언론보도를 보니까 영화감독 류승완씨나 락밴드 크라잉넛 등이 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통해서 대중들한테 이름을 알렸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이규석 센터장 : 예. 첫 축제때 같이 영화상영을 했던.. 당시엔 무명감독이었죠. 아마 제 기억에 그게 류승완 감독의 첫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작품이 독립예술제를 통해서 소개가 됐고, 영화에서 류승완 감독같은 존재가 그런 케이스라면, 음악에서는 크라잉넛 같은 밴드가 축제와 함께 음악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인디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밴드로 자리잡게 된 성공사례도 있고. 공연예술 안에서도 극단 여행자와 같은 극단이 최근에 많이 호평을 받고 있는데 축제 초창기에 참여하면서 예술적인 성과나 극단으로서의 지명도를 얻어나갔던 그런 성공사례들이 있습니다.

박인규 : 지난 8년간 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집행위원장을 맡아오신 건데, 올해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센터장이 되셨기 때문에 집행위원장 역할은 못하시겠네요?

이규석 센터장 : 지금 공식적으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떠난 상태구요, 떠났긴 했지만 계속적으로 축제에 대해서 자문이나 응원자의 역할을 계속 맡고 있구요. 공식적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장과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을 겸직할 수 없기 때문에 떠난 상탭니다.

박인규 : 올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아직 안 열렸죠? 언제 어떻게 하는지 잠깐 소개를 해주시죠.

이규석 센터장 : 올해도 8월에 3주간 축제가 개최될 예정이구요, 올해는 좀 특별하게 아시아 지역의 프린지페스티벌 축제감독끼리 세미나나 포럼 같은 걸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준비모임을 통해서 아시아프린지페스티벌간의 어떤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준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아시아를 대표하는 독립적 문화축제가 되기를 빌어보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예술경영인에서 예술행정가로 변신한 예술경영지원세터의 이규석 센터장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이규석 센터장이 어떻게 해서 예술경영, 예술행정과 인연을 맺게 됐는지 또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한 활동이 일생의 업이 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은데.. 특히 고등학교때는 공부에 찌들어서 과외활동을 하기가 어려운데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연극을 하셨어요. 어떻게 연극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이규석 센터장 : 대원외국어고등학교가 좀 교육열이 굉장히 센 학교였죠. 그런데 객관적으로 돌이켜보면 저 스스로는 그렇게 학업에 매진했던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도 입시에 매달리기 보다는 공부 외에 다른 것들에 대해서.. 딴 생각도 많이 하고 그러다 보니까 우연한 기회에 학교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게 됐고 하다 보니 자꾸 거기서 재미를 많이 느꼈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연극반 지도교사가 희곡작가 하시던 이만희 선생님이셨는데, 그 분을 통해서 연극에 대한 재미에 푹 빠지게 됐던 것 같구요. 저 뿐 아니라 같이 연극반 활동을 했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 이후로도 연극이라든가.. 연극을 매개로 해서 문화예술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들이 높아졌던 계기가 됐습니다.

박인규 : 저같은 경우는 7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는데, 대개 그런 예술활동이나 연극활동은 대학에 들어가서 서클에서 인연을 맺는 분이 많습니다. 이규석 센터장 같은 경우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대학서클에 들어간 게 아니라 고등학교 친구들과 그걸 했다고 해요. 상당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규석 센터장 : 그것도 고등학교때의 학교 분위기하고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학교의 교풍이 워낙 엄격하다 보니까 그때 서로 조심스럽게 남들이 하지 않는 연극반 활동을 했던 것에 대한 정서적인 동질감 같은 게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도 각자 다른 곳에 진학했지만 그때 연극하던 마음들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자기학교 연극반에 들어간 게 아니라 따로 학교 바깥에서 극단을 만들어서. 일종의 아마추어..

박인규 : 너무 연극이 좋으셨던 모양이에요. 학교도 중간에 그만 두셨다고 하고. 제 개인적인 얘기지만 제 대학때 친구 중에 영화 제작하는 유인택이라고.. 기획시대 하시는 분인데, 그 분은 연극반때 계속 기획일만 했습니다. 이규석씨도 보니까 연출 보다는 기획에 좀 재능이 있으셨던 모양이죠?

이규석 센터장 : 기획에 재능이 있었다기 보다는 연출에 재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좀 감수성도 풍부해야 되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감성적인 캐릭터이기 보다는 약간 깐깐하고 이성적인 캐릭터이다 보니까 기획쪽으로 역할이 많이 주어졌던 것 같구요. 그리고 물론 졸업은 못했습니다만 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습니다. 하면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분야는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고 싶은 기대가 많았는데, 다큐멘터리 연출이나 연극 기획쪽으로 관심이 많이 높아졌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하는 일 중에서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해외진출, 또는 국제교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최근 몇 년 동안 한류가 아주 대단했지 않습니까? 한류가 사실은 영화, 대중가요, 드라마.. 이런 건데 말하자면 순수공연예술도 차제에 한류와 마찬가지로 좀 나가보자는 뜻이 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규석 센터장 : 네. 한류에 대해서도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긍정적인 측면만을 생각한다면 기존의 영화나 음악을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 영역에서 일어났던 한류들이 일시적인 우리문화에 대한 선호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술영역으로까지 점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구요. 특히 공연예술이나 시각예술 같은 기초예술 분야에서도 우리문화에 대한 정체성이나 상대방 문화와의 상호교류 측면에서 우리예술을 바깥으로 널리 알릴 수 있는 차원에서 한류라는 얘기들을 최근에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예술경영지원센터장을 맡으신지가 이제 4개월 남짓이기 때문에 성과를 물어보기는 좀 성급한 것 같지만, 어쨌든 우리 연극이든 무용이든 해외에 나가서 공연한 사례 같은 게 좀 있습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97.3MHz)'

이규석 센터장 : 우리 공연예술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은, 작년도에 처음 서울아트마켓이란 행사가 생겼습니다. 그 행사를 통해서 우리 공연예술단체들의 국제교류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구요. 작년 이후에 약 20여 건 정도의 실제 해외교류성과가 있었고. 다만 이게 단기적인 성과를 염두에 두고 운영되고 계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중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우리 공연예술에 대한 해외수요나 해외진출기회가 많아질 수 있게끔 전략적인 기획들, 정책설계들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

박인규 : 아직은 그렇게 많다고 볼 순 없겠지만,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 공연예술이 외국에 나가서 공연했을 때 현지반응 같은 게 어떻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규석 센터장 :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수요와 기대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대중문화를 제외하고는 우리예술을 해외에 소개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바깥에서는 고연 한국의 공연예술이나 시각예술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 그런 것에 대한 기대들도 충분히 형성돼 있는 것 같구요. 그래서 오히려 이런 기회요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우리 문화예술계에 좀 우수한 경쟁력이 있는 예술작품들이 소개될 수 있게끔 지원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박인규 : 1987년도에 우리나라가 민주화되면서 굉장히 많은 사회 각 분야의 저력이 나타나고 있는데.. 시민단체 부분은 아시아 최고라고도 하고, 한류도 마찬가지고. 우리 공연예술의 수준이랄까요? 아시아 각국을 다니면서 보면 어떻습니까, 자랑할 만한 수준이 됐다고 보십니까?

이규석 센터장 : 저는 우리 공연예술이 충분한 잠재력과 대외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오히려 아시아지역에서도 일본의 공연예술이 현재까지는 우리보다 한두 발 앞서가고 있지만 조금 더 장기적으로 본다면 일본의 공연예술보다 우리 공연예술이 훨씬 더 강력한 잠재력과, 또 그만큼의 대외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리의 공연예술.. 영화나 드라마, 대중가요를 나아가서.. 예술한류까지 나가는 게 중요하지만, 이런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아까 독립예술제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런 열정과 상상력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예술 인프라라고 해야될지 모르지만 그런 걸 제대로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쪽과 관련해서는 계획이 있으십니까?

이규석 센터장 : 성과 위주의 지원이 아닌 다음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현장에서 전반적으로 자생력과 경쟁력을 얻어나갈 수 있게끔 그런 지원책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고민하고 있는 부분들도, 그것과 관련된 영역의 예술정책을 입안한다거나, 또 예술경영컨설팅이란 게 결국.. 예술기관단체마다 특성들이 있는데 그런 각 기관단체들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컨설팅을 해줘서 그런 역량들을 스스로 갖춰나갈 수 있게끔. 그런 예술경영에 대한 컨설팅 사업들을 앞으로 활발하게 추진해갈 예정입니다.

박인규 : 우리나라에서 1년에 나오는 공연예술작품이 7500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저도 굉장히 놀랐습니다. 또 공연예술단체가 1500개나 되는데 예술단체가 1500개인 반면에 공연장은 500개 남짓이다. 굉장히 공연장이 부족하다. 공급은 많은데 유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도 있는 것 같더라구요. 혹시 공연장을 더 많이 만든다거나 그런 계획은 없습니까?

이규석 센터장 : 그런 측면의 접근 보다는, 저는 활동하고 있는 공연단체의 수나 연간 발표되는 공연작품의 수.. 이쪽도 상당한 규모를 갖고 있고. 반면에 수요 측면에서도 550개의 공연장은 굉장히 많은 규모입니다. 문제는 공급과 수요 모두 다 일정 규모를 갖고 있는데 중간에 유통체계가 부실하다는 거죠.

박인규 : 말하자면 하드웨어 문제이기 보다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다. 예술경영지원센터장은 임기가 있습니까?

이규석 센터장 : 3년 임기구요, 한 번 연임이 가능합니다.

박인규 : 앞으로 잘 하시면 5년 반도 하실 수가 있을텐데, 일단 3년동안 가장 하고 싶은 게 어떤 건지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규석 센터장 : 저 개인적인 배경이 예술현장의 기획자 출신이기 때문에, 최대한..주어진 임기 내에 예술현장에서 필요로 하고 있는 것들을 조금 더 실천지향적이고 비판하는 행정이 아니라, 예술현장에 필요한 것들을 함께 고민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지원자, 응원자의 역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예술행정가의 역할을 하고 싶구요. 역시 단기적으로 성취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기 보다는 긴 호흡의 밑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그런 센터장의 역할을 수행해 내고 싶습니다.

박인규 : 이제는 예술도 경영과 행정이 필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훌륭한 행정가가 되셔서 우리나라의 재능있고 꿈 많은 예술인들이 자기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을 해주시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규석 센터장 : 네.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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