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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ㆍ유시민의 '봉숭아 학당'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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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ㆍ유시민의 '봉숭아 학당' 놀이

[김제완의 '좌우간에']<10> 진보에는 네 가지 색깔이 있다

한국사회는 뿌리 깊은 지역주의로 오랫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두 번에 걸쳐 호남이 지지하는 정권이 들어서 이 문제는 크게 완화됐다. 이제 한국사회의 주요모순은 지역갈등에서 이념갈등으로 바뀌고 있다. 정치 경제 문제에서 문화예술 교육계까지 넓고 깊게 진보 보수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는 서구선진국에서 수입된 박래품인데도 한국사회에서 유난히 악성적이고 해법을 찾기도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진보와 진보주의 용어의 모호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 용어 문제에 눈여겨 본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진보주의는 없다

진보주의가 무엇인가를 접근하기 위해 그것의 반대 개념을 찾아보자. 사전적인 의미에서 진보의 반대는 보수가 아니라 퇴보이다.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 등은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해를 끼치고 역사의 발전을 후퇴시킨 이념이었지만 당대에는 다수에 의해 선택된 진보이념이었다. 명목상 퇴보를 지향하는 이념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이념은 진보를 지향하므로 진보주의는 형식논리상 성립이 불가능하다. 서양의 어떤 사회과학사전에서도 프로그레시비즘이 표제어로 나타나지 않으며 단지 프로그레스나 프로그레스의 개념만이 보이는 이유이다.

이런 사실은 2002년 발간된 "진보와 보수"에 실린 홍윤기 교수의 기고 논문에서 처음 지적됐다. 진보주의는 사회과학 사전에서뿐 아니라 서구의 정치사상사 개론서에서도 별도의 항목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홍 교수는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사전에 나타난 기이한 개념현상"이라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긴다. 매년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학 등 사회과학 박사학위를 받고 들어오는데 이들 중에 진보주의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나라들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와 달리 "진보"는 서양에서도 사용돼 왔는데 이것은 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나타난다. 진보가 서양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사용된 대표적 사례는 마르크스의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따라 원시공산제에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그리고 공산주의로 변화하는 것을 진보라 했다. 현대에 와서는 미국에서 오바마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프로그레스센터라는 용어가 발견된다. 그러나 프로그레스는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진보라는 말의 원어는 리버럴이다. 이쯤 되면 진보 용어를 둘러싼 혼란이 심각한 수준에 와있음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진보 보수는 한국사회 특산품

한국사회에서 진보 보수 용어의 탄생 비밀을 먼저 찾아보자. 80년대 치열했던 사회운동과 사상투쟁의 성과로 전쟁 후 절멸됐던 좌파가 복원됐다. 그런데 제도권 언론은 이들을 가리켜 좌파 좌익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누군가에게 이 말을 붙이는 것은 정치적 사망선고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파의 대용품이 필요해졌는데 이때 진보가 발탁됐다. 진보와 짝을 이루는 보수도 함께 따라왔다.

보수주의는 영국에서 탄생해 미국에서 주로 사용돼 온 것으로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또한 지키고 간직할 것이 적은 제3세계 나라에서는 보수주의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도 일제식민지와 전쟁 등을 거치면서 전통적 가치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가 사용하는 보수주의 용어는 어디서 건너온 것일까. 한국과 일본에서 공히 보수주의가 사용되는데 미국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간단히 살펴봐도 진보 보수 모두 학계의 개념규정을 거쳐 정상적으로 도입된 개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진보-보수라는 용어의 조합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80년대에는 지금과 같은 뜻을 가진 진보 보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기억해낸다면 이 사실이 쉽게 납득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진보-보수"는 한국사회의 특산품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 용어의 조합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좌파-우파, 미국 영국에서는 리버럴-보수주의 그리고 일본은 미국의 것을 수입해 사용한다. 한국도 일본처럼 미국의 것을 수입해 쓰기는 마찬가지이나 리버럴이 진보라는 말로 변형 대체된 점이 다르다. 남북분단과 80년대라는 조건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진보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혼란들

지난해 3월 진보통합 주제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는 민노당 진보신당 등의 통합이 중심흐름이었고 국민참여당이 함께 하자며 구애를 하는 입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는 옆자리에 앉은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연구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와 같이 하려면 좌클릭해서 진보 쪽으로 오시오." 그러자 유시민 원장은 이렇게 반문했다. "내가 진보인데요?"

필자는 이 장면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지켜보다가 좀 과장해서 말하면 현기증이 일어났다.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더없이 중요한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봉숭아학당 같은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더구나 두 사람은 양진영의 수장격인 사람들이 아닌가. 노회찬은 진보를 레프트라고 여기고 말했던 것인데 유시민은 진보를 리버럴이라고 보고 말한 것이다. 이 사건은 필자가 "사색진보"에 착안하게 된 계기가 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살펴보자.

"가장 특이한 점은 한국에서 진보는 인기 있는 정치상품인 반면, 진보와 동의어로 간주되는 좌파는 강력히 터부시된다는 사실이다. (...) 전문가들은 한국인들이 '진보는 좋은 것이고 보수는 나쁜 것'이라는 사고틀을 가진 탓이라고 해석한다."좌우파사전
▲ 노회찬(좌), 유시민(우) 전 대표 ⓒ연합

이 같은 인식은 시대적 경험의 산물이어서 피해갈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언론이 자의적으로 진보를 좌파의 대용품으로 사용했는데 이에 대한 학문적인 검증이나 사회적인 합의 등을 거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진보와 좌파 간에 착종된 인식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어느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가 수강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진보 보수가 7대3의 비율로 나타났다. 그러나 좌파 우파로 설문을 바꿔 물으니 2대8이었다고 한다. 비록 임의적인 데이터이지만 개연성이 있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여서 인용한다.

이 사례를 분석하면 자신이 진보이면서 동시에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20%이며, 보수이면서 우파라고 생각한 사람은 30%라는 계산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우파이면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50%가 된다.(아래의 도표 참조.)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이들이 적어도 좌파는 아니며 보수도 아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중도파들이 여기에 포함돼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의 실체를 구명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정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레프트 리버럴 어드밴스 라이트 사색진보의 발견

한겨레신문이 2011년 5월16일 세종대 사회과학데이터센터에 의뢰해서 조사해 발표한 자료를 보자. 국민의 진보 보수 성향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이다. 이 조사에서 자신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30.7%, 중도는 43.9%, 보수는 25.3%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평시에는 진보 중도 보수가 30대 40대 30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거나 정치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40대 20대 40으로 바뀐다. 그래서 사회학에서는 앞의 것을 단봉낙타형 뒤의 것을 쌍봉낙타형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진보지지층을 30%로 놓고 이들이 누구인지 따져보기로 하자. 과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지율을 더한 좌파정당 지지율은 지난 수년간 5%에서 10%대를 오르내렸다. 편의상 평균치를 7.5%로 잡아보자. 그러면 진보지지자 30%중 7.5%가 즉 네 명 중 한 명꼴로 좌파인 셈이다. 그러면 나머지 세 명은 어떤 사람인가.

다른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의원의 지지율은 전체유권자의 34.7%로 이들을 다시 이념 성향별로 지지율을 나누면 보수층(42.2%) 중도층(35.5%) 진보층(25.7%)이었다. (월드리서치와 윈지코리아컨설팅의 여론조사, 조선일보 2010년 1월14일)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박근혜 지지자 네 명 중 한 명이 자신을 진보라고 여긴다는 사실이다. 어이없는 듯이 보이지만 지난 대선에서 이들의 실체가 드러난 바 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면서 자신이 진보라고 믿는 유권자가 존재함이 밝혀졌었다. 보수논객 조갑제는 "보수가 진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이런 사례들로 자신이 진보라고 믿는 보수 우파가 실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실체를 숫자로 추산해보자. 위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박근혜의 지지율 34.7%중에 진보가 25.7%이므로 전체 유권자의 8.9%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계산을 얻어낼 수 있다. 진보 지지층 30%중에 8.9%는 실제로 우파이다. 이들은 진보 3.4명당 한 명 꼴이다. 이로써 네 명 중 두 명은 레프트와 라이트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면 나머지 두 명은 어떤 사람인가.

이들 중 하나가 누구인지는 통계자료 없이도 알아맞힐 수가 있다. 앞서 언급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외침 "내가 진보인데요?"를 상기하면 된다. 이것은 유시민 개인의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만 볼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인데 미국 서적에 나타나는 리버럴을 진보라고 번역한다. 미국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립이 우리에겐 선명하지 않아서 자유주의를 진보주의로 자의적으로 번역한 것 같다. 그러니 유럽의 좌파도 미국의 리버럴도 우리에겐 진보로 불린다. 다른 나라 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연구대상일 것이다.

한국의 리버럴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이 다른 사람들이 포함돼 있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리버럴은 자유주의라는 철학적 뿌리를 갖고 있는데 반해 이들은 국어사전적 의미의 진보라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어드밴스" 진보라고 이름붙였다. 그들은 좌우가 아닌 전후가 중요하다고 여기므로 필요에 따라서 좌파나 우파를 자유롭게 선택한다. 필자는 노무현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다.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백만은 "노무현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양파"라고 말했었다. 이들 네 가지 진보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도표가 그려진다.

이 도표를 보면 자신이 진보라고 믿는 전체 유권자의 30%중에는 네 가지 종류의 다른 사람들이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비록 시론적 차원의 분석이지만 이 연구를 통해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네 가지 빛깔을 가진 각기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들은 레프트이면서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과 라이트이면서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 그리고 리버럴이거나 어드밴스이면서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이들 네 가지 진보를 "사색(四色) 진보"라 이름 붙였다.

사색진보와 진보 언어 전쟁

조선시대 정치는 노론 소론 남인 북인 등 사색 당파로 나뉘어 당쟁을 벌였다. 그로부터 여러 시대가 지난 뒤 이 땅에 사색당파가 다시 나타났다. 지금의 당파는 모두 저마다 진보를 표방하여 진보전쟁 또는 진보쟁탈전, 진보언어전쟁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네 가지 빛깔의 진보주의자들은 저마다 자기만이 진짜 진보이고 상대편은 짝퉁이거나 보수 수구라고 몰아붙이며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 진보라는 긍정적인 용어로 자신의 생각을 치장할 수 있다면 정치적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진보를 사이에 두고 각 정파 간에 다툼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정파 간의 다툼보다 더 위험한 것은 우리의 의식 내에서 네 가지의 진보개념이 뒤엉켜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대학교수의 글을 보면 진보가 여기저기 보이는데 앞에서는 레프트, 중간에는 리버럴, 그뒤에는 어드밴스의 개념이 혼재해 있다. 엄정해야할 사회과학개념이 이처럼 자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논리전개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학자들도 이럴진대 일반 언중들이 겪는 혼란은 어떻겠나. 정파 간의 진보언어전쟁은 가시적인 것인데 반해 우리의 의식 내에서 네 가지 진보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오늘 저녁에도 우리사회의 언어생활 현장에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

대학생 직장인들이 술자리에서 만나면 으레 정치판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때 진보가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온다. 진보는 이 시대 정치 사회문제를 논하는 키워드 아닌가. 그런데 이 말이 공연히 친구들을 다투게 한다. 저마다 네 가지 개념 중 하나를 염두에 두고 사용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혼란은 불가피하다.

우리 정치의 원내 1당과 2당은 같은 우파로 '더 우'와 '덜 우'의 차이에 불과해서 이념 스펙트럼 상 간격이 크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사회에서 유난히 이념갈등이 심하다. 그러므로 이념의 차이 외의 갈등요인이 무엇이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각정파 간에 암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진보 언어 전쟁이 그 대표적 사례로 꼽힐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도 없다. 우리는 진보를 차지하기 위해 네 개의 이념정파가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앞으로 네 가지 진보가 우리 사회의 현장에서 어떻게 서로 대립 충돌하고 있는지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필자 주 : "사색진보의 발견" 첫 번째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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