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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과 서구적 가치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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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과 서구적 가치의 균열

서명준의 '베를린통신' <7>

독일 정치인은 기도하는 모습을 연출하지 않는다. 보수야당인 기독민주당 의원들조차 종교적인 행동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치는 공적 영역에 속한다는 사회적 공개념 때문이다. 유럽에서 종교는 사적 영역이다. 지난 여름 유럽연합은 논란이 되었던 종교에 관한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지 않았다. 또 맥주와 포도주를 마시거나 춤을 추는 유럽 정치인의 ‘사적’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적’인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은 없다.

지난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후보는 역대 대통령 후보 가운데 가장 열렬히 신앙심을 보인 후보였다. 더군다나 재선된 부시 대통령의 신앙심은 초선 때보다 더 열성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계몽과 소비 그리고 개인주의 등 이른바 현대화 과정은 종교를 주변부화 해왔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첨단이자 모더니티의 대표 주자인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보여준 일종의 종교적 르네상스에 유럽인들은 매우 놀라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는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반대한 보수 성향의 내정자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이탈리아 출신 법무담당 집행위원 내정자인 로코 부티글리오네가 동성애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유럽의회 사회당, 녹색당 그룹 등이 반대함에 따라 집행부 출범에 파행을 겪다가 지난 18일에서야 유럽의회로부터 인준받은 것이다. 그러나 부티글리오네 후보는 결국 제명되었다. 이는 유럽 정치에서 종교가 사회적 후퇴로 간주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의 이번 재선은 유럽과 미국의 서구사회적 가치에 균열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무엇보다 최근 유럽과 미국은 대테러전에 대한 입장 차이를 보여왔다. 특히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와 최근 타계한 철학자 자끄 데리다는 미국의 도덕적 권위의 파산을 선고한 바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세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 것으로 주간 디 차이트(11월11일자)는 보도했다. 신문은 유럽의 세력 강화를 반미주의로 간주하는 동유럽 국가들이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는 유럽과 미국간 긴밀한 협력 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한 해였다. 예컨대, 올 초 쉬뢰더 독일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해 양국간 우호를 다졌고 지난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에서 미국은 2차대전 당시 해방군으로서 환영받았다. 또 G-8 정상들은 중동의 민주화를 위한 공동방안을 모색한 바 있고 최근 나토는 이라크 경찰 훈련을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상징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세기 들어 이슬람 근본주의와 대량살상무기라는 공동의 위협에 대해 서구사회는 공동의 해법을 사실상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독주를 막고 분열된 서구의 민주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 유럽은 이란과 이-팔 분쟁 해결에 적극 나서야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란은 이를 위한 시험장인 셈이다. 일간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11월16일자)에 따르면, 유럽연합이 미국 일방외교의 대안으로서 이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데에 기여했고 유엔안보리 회부를 막았다고 분석했다. 이로써 일단 이란은 이라크 독재자 사담의 전철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또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팔레스타인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의 죽음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철수는 팔레스타인 국가수립을 위한 두 번째 기회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독일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럽 차원의 공동 지원을 촉구할 것이라고 시사주간 슈피겔(11월15일자)은 전했다. 슈피겔은 또 중동 분쟁 해결을 위해 나토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아울러 최근 요쉬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서구사회가 전체주의 위협에 분열되었던 지난 1930년대의 전철을 반복하느냐 아니면 지난 1940년대 루즈벨트 대통령처럼 현명한 대통령이 나와 더 나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출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냐는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질책이자 서구사회의 분열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미국의 일방외교는 유럽인들에게 미국을 ‘낯선 나라’로 만들었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이러한 유럽인들의 미국 인식을 더욱 낯설게 만들었다. 국수주의와 열성적인 신앙심이라는 또 다른 ‘낯선 가치’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점증할수록 종교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이러한 문화적 충격의 원인은 어쩌면 유럽인들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9.11 미 테러참사 이후 미국인들의 위기의식과 상실감을 유럽인들은 진심으로 이해했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미국을 낯설게 만든 건 유럽을 젊은 유럽과 늙은 유럽으로 분열시킨 미국의 실책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은 미국인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이 없고 여전히 대서양간 공동의 서구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도됐다(주간 디 차이트, 11월11일자). 게다가 최근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독일 집권 좌파 녹색당 당수는 헨리 키신저식의 현실정치보다 오히려 네오콘의 방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고 독일 언론은 전했다. 이는 지난 몇 년간 국제법을 무시해온 미국의 군국주의에 반대하지만 지난 9.11 미 테러참사 이후 테러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고 무엇보다 분열된 대서양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유럽 정치권의 의지의 반영인 셈이다.

지난 미 대선에서 득세한 종교적 근본주의는 유럽인들에게 서구적 가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모더니티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종교 르네상스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의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의 실마리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보수적 가치를 늘 자랑스럽게 여기는 독일 기독민주당도 묵묵부답이긴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은 종교적 가치를 중시함으로써 유럽인들이 싫어하는 부시 대통령을 또 다시 선택했다. 이는 무신론과 종교의 대립이 아니라 다양한 종교간 갈등을 겪는 현대사회의 일면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신앙이나 보수주의와 형태만 다를 뿐 사회문화적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유럽인들은 미국인들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테마가 되지 못하는 환경적 가치는 어째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독일에서 여전히 중대한 사회적 관심사인가. 나아가 눈 앞의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가치중심적 인식으로 전환한 미국의 시민의식은 어쩌면 유럽의 좌파가 항상 원해왔던 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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