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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이제 대중의 감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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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이제 대중의 감옥인가

임백준의 '컴퓨터를 통해서 보는 세상' <3>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고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라던 최인훈의 말은 이제 “광장은 대중의 감옥이고 밀실은 개인의 감옥이다”로 바뀌어야 할 듯하다.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고스란히 무인카메라(CCTV) 안에 기록되는 요즘 ‘대중의 밀실’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광장’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마음놓고 쉴 수 있는 ‘밀실’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무인카메라가 광장을 ‘대중의 감옥’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동안 (몰래 찍는다고 해서) ‘몰카’라고 불리는 음험한 카메라의 눈동자는 ‘개인의 광장’ 역할을 하던 ‘밀실’의 영역을 부지런히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의 최첨단 프로젝트**

최근 종로구청이 무인카메라를 이용해서 인사동 거리를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과, 강남구청이 강력 범죄 예방을 위해서 거리 촬영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거지면서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논란은 구청의 ‘행정 편의주의’와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프라이버시’가 충돌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음으로써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발상의 뿌리는 단순한 ‘행정 편의주의’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유명한 ‘원형감옥(파놉티콘: Panopticon)'을 건설할 것을 제안했던 벤담이나 그 원형감옥의 정치적 의미를 파헤친 푸코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러한 발상 안에는 상당히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함의가 감추어져 있다.

지난 1일 <에이피통신>은 미국 국방부 산하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수많은 컴퓨터와 카메라를 이용하여 도시 안에서의 차량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전하여 관심을 끌었다. ‘보는 전쟁터(CTS: Combat zones That See)'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쉽게 말해서 종로구청과 강남구청이 사용하는 CCTV를 첨단 컴퓨터 기술과 결합하여 기능을 대폭 상향조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CTS는 컴퓨터의 화상 인식 기능을 통해서 자동차의 번호판은 물론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의 얼굴까지 순식간에 자동으로 식별하기 때문에 단순한 무인카메라의 경지를 뛰어넘으며 활용의 범위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CTS의 성능이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그렇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빅 브라더’의 출현은 소설 속의 상상이 아니라 진지하게 예견된 사실이었기 때문에 CCTV의 기능을 능가하는 CTS의 출현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에이피통신>의 보도와 관련해서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의 프로젝트에는 “전세계의 각종 거래와 개인의 기록을 조사하고, 개인이 보고 듣고 말하고 만지는 모든 것을 기록, 분석하는 전산화한 일지를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 국방부는 이러한 시스템 개발의 목적이 ‘테러를 방지하고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빌 게이츠의 ‘최첨단’ 저택**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1995년에 ‘미래로 가는 길(The Road Ahead)'라는 책에서 ’정보화 사회‘에 대한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11장의 제목이 ’황금을 찾아서(Race for the Gold)'라는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의 내용은 미래 세계에 대한 진지하고 비판적인 고찰이라기보다는 PC와 인터넷 산업의 미래를 중심으로 주로 ‘돈벌이’의 기회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었다. 그 중 컴퓨터로 제어되는 자신의 ‘최첨단’ 저택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게이츠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당신이 꽂고 다닐 전자 핀은 당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집에 알려줄 것이다. 집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고 심지어는 당신의 요구를 미리 앞질러 헤아리기까지 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컴퓨터 시스템의 능력과 장차 사람들이 누리게 될 편리함에 대해서 탄복하는 사람은 순진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컴퓨터 시스템의 작동을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을 사람은 정작 게이츠 본인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빈틈없이 감시하며 정보를 수집하는 첨단 시스템이란 손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끔찍한 재앙에 불과하다. 필자가 그의 집을 방문해 본 일이 없으므로 그 집의 컴퓨터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추측을 해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여러 명의 손님과 함께 파티에 초대되어 하루 저녁을 그의 집에서 보냈다고 해보자. 그 날 저녁 자기가 화장실에서 몇 분을 머물렀는지, 어떤 사람에게 몇 초 동안 눈길을 주었는지, 누구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음식을 골라 먹었는지, 심장 박동 수가 몇인지, 혈압이 몇인지, 어떤 물건을 만졌는지 등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된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하여 컴퓨터 시스템이 당신의 요구를 ‘미리 헤아리기’ 위해서 그런 정보를 분석하여 어떤 결론을 도출한다고 해보자. 변화 무쌍하고 충동적인 사람의 ‘요구’를 ‘미리 헤아려서’ 판단하는 컴퓨터 시스템의 무미건조한 센스는 아마 촌스러움을 넘어서 엽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할 것이다. 더구나 수집된 정보가 당신의 ‘요구를 미리 헤아리기 위해서’만 사용된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미래 사회의 ‘권력’이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

물론 자기가 사는 집을 설계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므로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미 국방부의 프로젝트와 빌 게이츠의 ‘최첨단’ 저택 사이에는 (그리고 종로구청과 강남구청의 CCTV에도) 사실 의미심장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첨단 테크놀로지의 이면에 숨어서 개인의 삶과 관련된 정보를 ‘광장’과 ‘밀실’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고 축적하겠다는 ‘권력’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쪽은 ‘테러의 방지’를 내세우고, 다른 한쪽은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을 내세우고 있지만 개인의 정보를 수집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러한 욕망의 발현을 우리는 최근 교육행정정보시스템(네이스)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목도한 바 있다.

앞서 종로구청의 무인카메라 설치가 단순한 ‘행정 편의주의’의 소산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첨단 테크놀로지와 컴퓨터 시스템을 결합시킨 감시 체제의 개발과 설치, 그리고 그를 통한 정보의 수집은 일개 관청의 ‘편의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후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권력’이 시민 사회를 지배하는 양식으로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CCTV를 설치하는 행위는 단순히 ‘주차위반 차량’을 좀더 효율적으로 단속하겠다는 본래의 의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미래 사회의 ‘권력’이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즉, CCTV나 CTS의 출현은 일과성 혹은 기술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패러다임의 현시에 해당한다. 상상의 세계에 머무르던 ‘빅 브라더’가 마침내 첨단 테크놀로지라는 옷을 입고 지상에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멋진 신세계**

이러한 감시 카메라나 컴퓨터 시스템이 수집하는 정보를 하나씩 따로 들춰보면 사실 그 정보의 ‘참을 수 없는’ 사소함에 웃음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토요일 오후에 인사동 거리를 걸었다는 사실이 카메라에 찍혔다고 해서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설령 내가 부인 몰래 연인을 만나고 있었다고 해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카메라에 찍힌 화면을 다시 들추어볼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종로구청 교통지도과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직원이 나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아닌 한 내가 그의 특별한 관심을 끌 이유는 없다. 즉 나의 익명성은 여전히 보장되는 것이고 인사동 거리는 여전히 우리들의 ‘광장’인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지금부터 인사동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CCTV에 빠짐없이 기록된다고 하자. 방금 말한 것처럼 당장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이 개발한 최첨단 시스템이 세계 각지의 기업과 정부들에게 보급되었다고 하자. 그 동안 CCTV로 촬영되었던 내용이 이 최첨단 시스템에게 입력되어 분석 자료로 활용된다고 해보자.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 새로운 첨단 시스템은 사람들의 얼굴을 판독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지난 수 년 동안 내가 인사동 길을 몇 번 오고 갔는지, 누구랑 함께 오고 갔는지, 어디에서 어디로 갔는지 등을 순식간에 보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고서의 범위는 결코 ‘인사동’ 골목으로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참을 수 없이’ 사소했던 정보가 축적되어 이와 같이 활용이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변하는 순간 사소한 정보들은 이제 ‘견딜 수 없는’ 무게로 사람들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이 새로운 첨단 시스템의 분석으로 인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밀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상대방의 신상 정보마저 미주알 고주알 전부 드러난다. 사소하고 하찮게 보이던 정보들이 쌓여서 나의 삶이 지니고 있는 특정한 패턴들을 컴퓨터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 앞에 모두 노출시킨다. 소비 패턴, 습관, 정치적 경향, 만나는 사람들, 나누었던 대화들, 건강 상태, 재정 상태 등이 모두 키보드의 버튼 하나만 누르면 깔끔하게 정리되어 보고되는 것이다. (오늘날만 해도 신용카드를 통한 소비 패턴은 물론 전자우편의 내용이나 방문하는 웹사이트의 목록쯤은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발가벗은’ 정보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 당신이 사용하는 컴퓨터는 결코 ‘밀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권력’은 이제 나의 ‘요구를 미리 앞질러 헤아리기까지’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신은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인사동 거리를 거닐었는데, 이번 주 토요일 오후에는 인사동 거리에서 정치적인 집회가 예정되어 있으므로 흠, 당신은 그 정치적인 집회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첨단 컴퓨터 시스템의 판단이므로 항의할 생각은 마십시오.) 그 집회는 불법이므로 당신은 불법 집회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안됐지만 당신은 오늘 중으로 구속될 것입니다. 가까운 경찰서나 파출소로 자진 출두해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친절하고 자상한 시스템인가? ‘권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이야말로 ‘멋진 신세계’가 아닌가?

이런 이야기들이 아직은 현실이 아니라 공상처럼 들릴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만큼 시간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빅 브라더’의 출현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만약 완전히 막기 힘들다면 그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법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를 확보하기 위한 시민 사회의 싸움이 필요할 것이다. CCTV로 촬영된 내용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폐기 처분하는 일, CCTV로 촬영한 내용을 오용하지 않는지에 대한 시민 사회의 역감시 장치를 법제화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권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가 사소한 정보의 축적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인식의 정립이 필요할 것이다. 광장이 대중의 감옥이 아니라 여전히 열린 ‘광장’으로 남아 있도록 만드는 일은 (언제나 그랬듯이) ‘권력’이 아니라 시민 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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