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이다. 그 가운데 정치권력은 6월항쟁 이후 정치의 민주화에 의해서, 경제권력은 외환위기 이후 재벌개혁에 의해서 많이 약화되었다. 게다가 이 두 권력에 대해서는 견제할 수 있는 많은 제도적 장치가 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와 같은 감시조직도 있다.
문제는 점점 더 비대해져만 가는 언론권력이다. 언론권력 특히 신문권력은 제도적 견제장치도 마땅치 않고, 감시단체도 별로 없거나 있어도 힘이 없다. 게다가 2000년 언론사 세무조사 때 보았듯이, 언론은 자신에 대한 국가의 정당한 조세권 발동도, 그리고 시민사회의 감시와 견제도 언론자유 침해로 몰아 부친다.
그런 언론권력이 언론기업의 성장이나 복합소유화로 점점 그 힘을 키워가고 있다. 사실 언론권력은 오늘날 가장 강력한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미국 신문기자 출신의 저명한 언론학자인 배그디키언 교수는 미국 권력의 중심이 군산복합체라는 거인으로부터 오락 정보의 수퍼파워에게로 이동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의 권력이 매체를 소유한 복합기업에 집중되고 있으며 그 권력이 군사력, 경제력보다 더 우월한 것임을 경고한 지적이다.
그러면서 그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미국의 거의 모든 남녀노소를 통제된 이미지와 단어로 포위할 수 있고, 미국의 새로운 각 세대를 사회화할 수 있고, 나라의 정치적 의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소유다. 그리고 그 힘과 함께 여러 면에서 학교, 종교, 부모 그리고 심지어는 정부 그 자체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온다"고 경고하였다. 그는 매체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그리고 그 힘이 얼마나 큰지를 말한 것이다.
매체의 권력화에 대한 이러한 경고는 언론인들이 나름대로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정당에 가입하지 않고, 저명한 언론인들의 경우에는 심지어 투표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권위지들이 사설에서 특정 후보에 대해 공개적 지지를 표명하기는 하지만 "정교분리"라고까지 말하는 "의견과 사실의 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 기사에서는 철저하게 사실 보도와 공정성의 원칙을 지키고, 언론사가 자사의 이익이나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권력을 남용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 미국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언론권력은 얼마나 크고 어떤 모습인가. 한국 신문시장의 8할 가까이를 지배하는 몇몇 보수 신문들의 행태와 권력은 가공할 만하다. 이들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이기를 저버리고 스스로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이 되었다. 이들은 수구냉전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채 사상과 이념의 다양성을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서는 화해와 협력을 통한 공존이 아니라 대결과 긴장을 통한 박멸을 주장한다. 진보적인 인사가 정부 요직에라도 가게 되면 친북 좌경 인사로 몰아 제거하려고 벼른다.
대선에서 이들은 특정 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해 객관성과 공정성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조작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특정 정치세력의 근거 없는 주장을 검증하기는커녕 인용보도와 가정법 사설(일명 "라면사설")을 통해 확대 재생산하는 데 바쁘다. 이들은 특정 정치세력의 선거전을 돕기 위해 색깔론과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교묘한 편집기술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세력의 선거전략을 훈수하고 지도하기조차 한다. 이 때문에 그 정치세력의 선거전략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게 될 뿐만 아니라 네거티브 전략으로 흐르게 되고 선거전이 혼탁해진다.
이 점은 이 번 대선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대한 수도권 공동화론과 서울 부동산값 폭락론, 50대 유권자의 20대 자녀 유권자의 매수론, 선거전의 이념대결론 등을 최근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인이 들고 나오고 한나라당이 이에 추종함으로써 선거전이 더욱더 네거티브로 흐르고 더욱더 혼탁해졌다.
이들 신문은 우리의 여론시장을 지배하는 대언론사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그 크기에 걸맞는 성숙한 분별력과 사회적 책임의식이 턱없이 모자라다. 이들은 국가와 사회의 공적 이익이 아니라 자사와 사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편협한 이익집단처럼 행동한다.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권력을 사익을 위해 남용하는 분별력 없는 가공할 권력, 이것이 우리 언론권력의 어두운 모습이다.
앞으로 어느 세력이 집권하든 상관없이, 이 어두운 언론권력의 모습이 우리 정치의 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언론개혁을 통해서 공룡처럼 비대해진 남용되고 무분별한 언론권력에게 본래의 위상과 본래의 역할을 찾아주는 일이다. 거대신문에게 제자리와 제몫을 찾아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정치개혁이다. 그것은 우리의 정치, 경제, 남북관계, 한미관계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이들에게 제자리와 제몫을 찾아주는 개혁을 먼저 이루지 못하면 구태정치 타파, 지역통합, 한반도 평화정착, 한미관계의 새로운 발전, 기업 투명화 등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루어내기 어렵다. 이들이 자신과 대변세력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반대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혹은 시대착오적인 이념을 고수하기 위해서 집요하게 방해공작을 할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민정부에서 보듯이 집권세력이 자기편이면 그 정책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어버리고, 국민정부에서 보듯이 집권세력이 반대편이면 그 정책이 무엇이건 흠집을 내려했다. 이들이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이들에게 제자리와 제몫을 찾아주는 언론개혁은 앞으로 우리 정치의 최우선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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