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통령 선거운동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상대 후보에 대한 비하, 비방, 인신공격, 색깔론, 폭로, 지역감정 부추기기 등과 같은 부정적 선거운동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국민경선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음모론으로 음해하고, 급진좌경으로 몰고, 노 후보가 술좌석에서 특정 신문사 폐간 발언을 했다고 비난하고, 장인의 좌익전력을 문제삼기도 했다. 이런 헐뜯기를 조중동은 대서특필해주었다. 그러나 이인제 후보는 경선을 중도하차했고, 노 후보는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뿐만 아니라 대선의 본선에서도 부정적 선거운동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노무현을 DJ 양자라고 주장하면서 부패정권 심판을 외치고 있으나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국가정보원의 도청설, 노무현 후보의 땅투기설 등을 제기하였고 이를 조중동은 크게 다루어주었으나 역시 기대하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당황한 나머지, 한나라당은 선거전략에서 우왕좌왕하고 있고, 불편부당을 사시로 하는 조선일보는 공정성의 가면마저 벗어던졌다. 예컨대, 월간조선의 조갑제 편집인은 "이번 선거에 정치적 생명뿐만 아니라 물리적 생명까지 걸어야 할 입장"이라는 섬뜩한 말로 이회창 후보를 추궁하는가 하면, 50대 유권자는 20대의 자녀 유권자를 용돈이나 학자금을 끊겠다는 압박으로 이회창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종용하라는 부모 자식간의 윤리에 반하는 충고를 서슴없이 하는 등으로 보수층 유권자의 결집을 선동하는 파르티잔으로 나섰다.
그러나 정책대결을 외면한 채 폭로 비방전으로 선거분위기를 혼탁하게 하는 데 대해서 비판이 일었다. 그러자 민주당은 새 정치를 주창하는 노무현 후보의 지시로 폭로 비방전을 중지했다. 한나라당도 폭로 비방전을 자제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부정적 선거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홈페이지, 정치광고, 방송연설, 대변인 논평 등은 대체로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와 그 정책, 그리고 노무현 정몽준 후보 단일화 등을 비난하는 부정적인 내용들이다.
심지어 후보자 토론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부정적 발언을 가장 많이 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최근에는 노무현 후보의 행정 수도 이전 공약에 대해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는 자신들도 유사한 공약을 했음에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수도권 공동화니 서울 집값ㆍ땅값 폭락이니 하면서 대대적인 위협소구를 하고 있고, 조중동은 한 목소리로 한나라당의 위협소구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런 부정적 캠페인과 그것을 확대재생산하는 조중동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각종 지지도 조사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모양이다. 부정적 선거운동이 약발이 없다는 증거다.
이는 우리 정치발전을 위해 대단히 의미 있는 현상으로 연구의 대상이라 하겠다. 본래 정치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부정적 메시지가 긍정적 메시지보다 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긍정적인 메시지보다는 부정적인 메시지가 더 주목받고, 더 기억하기 쉽고, 후보 평가에 더 많이 활용되고, 더 강한 감정적 흥분을 유발시켜 합리적 인식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정적 선거운동은 선거판세를 지배하고, 상대방 선거운동의 선택 폭을 제한하고, 선거 막바지에는 반박하기 어렵다는 전략적 이점이 있는 것으로 말해진다. 이 때문에 선거전에서 상대후보나 상대당에 대한 헐뜯기가 횡행하게 된다.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그리고 종반에 이를수록 상대후보와 상대당을 더 많이 헐뜯게 된다. 특히 경쟁에서 지고 있는 후보는 이기고 있는 후보를 헐뜯게 되고, 공격을 당한 후보는 반격에 나서게 되어 선거전이 점점 더 부정적 캠페인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16대 대선에서는 왜 이런 부정적 선거운동이 먹혀들지 않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폭로 비방의 내용이 근거가 없고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그 진실성을 믿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측이 제기한 음모설, 급진좌경설, 폐간발언설, 그리고 본선에서 한나라당 측이 제기한 양자설, 도청설, 땅투기설,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서울 부동산 폭락설 등은 뚜렷한 물증이 제시되지 않았고 진실이라고 믿기도 어려운 내용들이다. 많은 유권자들에게 이런 폭로 비방 공격은 선거전에서 이기기 위해 행하는 악의적이고 무책임한 중상모략으로 비쳐진 것이 아닌가 한다.
둘째, 유권자들 특히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유권자들이 구태의연한 낡은 정치에 대단히 비판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낡은 정치가 아니라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새로운 정치를 바란다. 그들은 색깔론,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부정적인 선거운동은 타기해야 할 낡은 정치로 보고 있다. 그들은 정치인들이 경쟁자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더러운 정치에 때묻지 않은 참신한 이미지와 함께 정치개혁을 주창하면서 등장한 국민경선 중의 노무현 후보와 후보 선언 전후의 정몽준 후보의 높은 인기가 이 점을 증거한다.
셋째, 노무현 후보의 구정치인과는 다른 면모다. 노무현 후보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세 번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정치활동에서 조직과 돈에 의존하지 않고, 미국에 대해서 자주적 자세를 견지하고, 언행이 매우 솔직하고, 대선 후보로서 결정적인 흠이 별로 없고, 열렬한 지지자들로 구성된 자발적 후원모임이 있고, 희망 돼지를 비롯하여 일반인들이 조금씩 기부한 돈으로 선거운동을 치른다는 점에서 구정치인과 구별되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일찍이 이런 대통령 후보를 보기 어려웠다. 따라서 그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구태의연한 정치에 물들지 않은 참신한 후보로 비쳐지게 되었다. 이런 노 후보의 모습은 유권자들 특히 젊은 유권자들에게는 낡은 정치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정치를 구현시킬 새로운 희망으로 비쳐지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그를 헐뜯는 부정적 선거운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노무현 후보의 메시는 대체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을 대변하는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라는 점이다. 노 후보의 '새 정치'라는 구호는 돈과 음모로 대변되는 구태의연한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우리 유권자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에 와닿는 시의적절한 것이다. 노 후보의 구호는 정치개혁을 갈망하는 젊은 유권자의 심금을 울리는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
실제로 노 후보의 연설이나 홈페이지 등에는 "변화"와 "희망"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 새로운 정치, 변화와 희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헐뜯기와 같은 구태의연한 부정적 메시지는 잘 먹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낡은 정치의 유산인 부정적인 메시지보다는 새로운 정치의 한 모습인 긍정적 메시지가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대안적인 인터넷 매체의 부상이다. 한나라당의 부정적 메시지를 널리 확대재생산해주는 조중동의 눈물겨운 편파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젊은 유권자들에게는 그것들이 잘 먹히지 않는다. 젊은 유권자들은 종이신문을 잘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대자보, 서프라이즈와 같은 대안적인 인터넷 매체를 통해 시사 문제에 접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대안적인 인터넷 매체에는 한나라당의 폭로 비방의 부정적 캠페인과 그를 무비판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조중동의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 한마디로 조중동의 의제설정력과 여론지배력이 급격히 추락한 것이다. 오프라인 매체에서 온라인 매체에로 권력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조중동이 의제와 여론을 좌지우지하던 과거와는 달리 부정적 선거운동이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타깝게 한나라당은 여전히 부정적 선거운동을 계속하고 있고, 조중동은 그런 한나라당의 주장을 충실하게 확대 재생산한다. 하지만 선거전에서는 여전히 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욱더 부정적 선거운동에 매달리지만 효과는 기대 밖이다. 한라라당과 조중동은 아직도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낡은 패러다임에 얽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치의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더러운 정치에서 깨끗한 정치로 변화하고 있다. 낡은 정치에서 새 정치로 전환하고 있다. 부정적 선거운동은 더러운 정치, 낡은 정치의 일부다. 이제 더러운 정치, 낡은 정치는 먹히지 않는다. 따라서 낡은 정치의 일부인 부정적 선거운동 또한 먹히지 않는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이 점을 깨닫고 하루 빨리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해서 정도를 걷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정치를 살리는 길이고 스스로도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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