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배명중학교 일일교사로 교단에 서기 위해 학교로 가는 과정에서 교통정체가 심해지자 수업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올림픽 대로상에서 중간정차지대로 가다가 교통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떼었다.
노 후보는 학생들에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법규를 위반하는 것이 옳은지 약속에 늦더라도 법규를 지키는 것이 옳은지를 물었다. 노 후보는 자신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받은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학생들에게 이 사건의 교훈을 깨우치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 일화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노 후보의 교통위반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사실을 이용해서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려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이 일화를 기사로 다룬다면 그 대강은 노 후보가 일일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자신의 교통법규 위반 사실을 예로 들어 법규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깨우쳐주었다는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 신문들은 노 후보의 교통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뗀 사실을 부각시켰다. 조선일보의 경우는 노 후보가 일일교사로서 한 발언은 아예 생략한 채 교통법규 위반 사실만을 다루었다. 물론 다른 신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같은 에피소드를 다룬 신문들의 보도태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기 위해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의 관련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가 타고 가던 승용차가 18일 서울 올림픽대로상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해 6만원짜리 교통범칙금 '딱지'를 뗐다. 노 후보 차량은 이날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위치한 배명중학교에서 오전 11시45분 학생들을 상대로 '1일 교사'를 하기 위해 여의도 당사를 출발해 가던 중 교통체증이 심해 시간을 맞출 수 없게 되자 올림픽대로상의 중간 정차 지대로 질주하다가 교통경찰에게 적발됐다. 승용차 운전자는 차창 문을 조금 내리고 누가 탑승한 차량인지를 밝히지 않은 채 딱지만 뗐다. 이 때문에 경찰은 이 차량이 노 후보가 탑승한 차량인지를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후보는 이 바람에 10여분 늦게 학교에 도착했다.(조선일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승용차가 18일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돼 '딱지'를 떼였다. 노 후보는 이날 서울 송파구 삼전동 배명중학교 1학년 9반 일일교사로 위촉받아 학교로 가던 중 올림픽대로에서 차가 심하게 밀리자 운전사가 차량 통행이 금지된 안전지대로 승용차를 몰았고, 곧바로 교통경찰에 적발된 것. 당시 경찰은 노 후보가 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후보는 수업 시간 직전 간신히 학교에 도착해 학생들에게 "빨리 오지도 못하면서 딱지만 떼였다"고 고백한 뒤 "여러분 같으면 교통 법규를 위반하고라도 약속을 지키겠느냐, 아니면 법규를 지키고 약속에 늦겠느냐"고 물었다. 학생들 중 과반수 이상이 후자에 손을 들자 노 후보는 "맞다. 좀 더 큰 규칙을 지키는 것이 옳다. 약속은 좀 늦더라도 나중에 양해를 구하면 되지만, 교통규칙은 예외를 인정해주기 시작하면 혼란이 생기기 때문이다"고 말했다.(동아일보)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교통질서를 위반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약속시간을 어기더라도 교통질서는 지켜야 할까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8일 서울 송파구 배명중학교 '일일교사' 활동을 위해 길을 서두르다 교통위반 '딱지'를 떼였다. 노 후보는 이날 학생들에게 이 '봉변'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예로 들어가며 두 가지 규칙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노 후보는 학생들이 '교통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제시하는 것을 지켜본 뒤 "교장선생님과의 약속은 개인적인 것이라서 좀 늦더라도 나중에 설명하면 되지만, 길거리 규칙은 잘못하면 회복할 수 없는 무질서가 생기기 때문에 안 된다"고 동감을 표시했다. 노 후보는 또 "여러분이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규칙이 충돌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한겨레신문)
이처럼 같은 에피소드를 기사로 쓰는 경우 어떤 내용을 취사선택하는가에 따라, 그리고 어떤 사실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그 논조나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공정한 기사라면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당연히 선택하고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본질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하지 않은 채 지엽적인 사실만을 다루거나 부각시킨다면 그 보도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겨레의 기사가 세 신문 가운데 가장 공정했다고 할 수 있다. 노 후보가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그 잘못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려 했다는 본질적인 내용을 다루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기사는 교통법규위반으로 딱지를 떼었다는 비본질적인 사실을 부각시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일교사로서 노 후보의 발언을 정확하게 소개함으로써 악의적인 왜곡을 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에피소드의 본질적 내용인 일일교사로서 노 후보의 발언은 생략한 채 딱지를 떼었다는 비본질적 사실만을 다룸으로써 악의적인 왜곡을 범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은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중요하고 본질적인 내용을 생략한 채 지엽적인 사실만을 부각시켜 보도했기 때문에 그 보도는 대단히 불공정한 왜곡보도라 할 수 있다. 이 에피소드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내용--즉, 노 후보가 일일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예로 들었다는 내용--을 생략하고 노 후보가 예로 든 그의 잘못이라는 비본질적인 사실만을 다루었다는 것은 고의적인 왜곡이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의 윤리강령은 중대한 사실을 생략하는 어떤 보도도 또는 중대한 사실을 희생시키고 기본적으로는 무관한 정보를 포함하는 어떠한 이야기도 공정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보도에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사익(특정 인물 집단 죽이기나 키우기, 특정 이데올로기 강요, 자사 이익 옹호, 등등)을 위해 중대하고 본질적인 사실을 생략하거나 무시하고 비본질적인 내용을 부각시키거나 강조하는 행태는 저널리즘의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저널리즘을 빙자한 이익집단이나 정치집단이 보일 수 있는 이기주의적 행태일 뿐이다.
이처럼 저널리즘의 정도를 걷지도 않는 신문이 일등 신문임을 자처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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