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효율적인 선거운동은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후보자에게 전혀 돈이 들지 않고 경쟁 후보와 차이를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후보자 텔레비전 토론일 것이다. TV 토론은 고비용 저효율 정치 또는 금권선거를 방지하기 위한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선거법은 이를 법적 의무사항으로 규정하였다. 1997년에는 대통령 선거에서의 토론만을 의무화했으나 2000년의 선거법 개정에서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의 토론도 의무화했다.
선거법 82조 2항은 대통령 선거와 시 도지사 선거에서 후보자 텔레비전 토론회(대선 3회 이상, 시 도지사 선거 1회 이상)를 공영방송사(KBS와 MBC)가 개최하도록 하였고, 토론회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토론위원회에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토론위원회는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 방송사, 방송학회, 변호사협회, 시민단체 등에서 추천하는 인사들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5월 22일 전국 동시지방선거 방송토론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토론위원회는 KBS와 MBC의 서울 본사로 하여금 서울, 경기, 인천의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토론회를 각각 1회씩 개최하도록 하였다. 토론위원회는 토론에 초청할 후보의 선정기준으로 다음의 두 조건 중 하나 이상 충족시키는 경우로 하였다. 즉 ①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의 후보, ②3개 이상의 종합일간지와 두 공영방송사가 조사하여 보도한 후보 등록 이전 20일간의 여론조사 결과 평균 5%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 그리고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후보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담(후보 한 사람이 사회자나 질문자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나 토론(두 명 이상의 후보가 사회자를 통해서 공방을 벌이는 것)의 기회를 부여하도록 의무화하였다.
토론회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역시 토론회에 초청할 후보의 선정기준과 그 초청범위일 것이다. 이상적으로만 말한다면, 동등 기회의 원칙에 따라 동일한 공직에 출마한 모든 후보를 다 초청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후보가 4명 이상이면 토론회가 물리적으로 어렵거나 지리멸렬하게 된다.
토론은 본래 2명의 토론자가 1:1로 대결하는 것이 기본이다. 토론참여 후보가 3명인 경우에는 그런 대로 토론을 어찌해 볼 수 있겠으나 참여 후보가 4명 이상이면 토론다운 토론은 되기 힘들다. 게다가 유력후보는 군소후보와 토론을 하려 하지 않는다. 또 유력후보와 군소후보를 똑같이 다루는 것이 합당한 것도 아니다.
영국 BBC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은 공정한 것은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의견의 범위와 함께 의견의 무게도 고려하여 그 무게에 따라 차별적으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즉 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의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는 뜻이다.
이 기준을 토론에서의 참여 후보의 초청기준에 적용하면 유력후보와 군소후보를 차별하는 것이 불공정한 처사가 아니라 공정한 처사가 된다.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후보자 토론은 불가피하게 당선 가능성이 높은 유력후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도 후보자 텔레비전 토론에 유력후보만을 초청하는 것이 동등기회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고 군소후보를 토론에서 완전하게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그들에게도 텔레비전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자신들의 정강정책을 알릴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군소후보에게도 그들만의 토론이나 대담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이 경우 토론을 고집하기보다는 대담을 통해 그들에게 자신들의 자질이나 정책을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군소후보가 1명이면 토론 자체가 불가하고 여럿이면 토론이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지방선거방송 토론위원회에서는 군소후보들에게도 별도의 토론이나 대담을 기회를 반드시 부여하도록 하되 토론으로 할 것인지 대담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방송사가 알아서 하도록 일임하였다.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군소정당들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의 후보 토론회에 자신들의 후보들도 초청해줄 것을 방송사에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그러나 군소후보를 유력후보와 똑같이 대해 달라는 요구는 유력후보에게는 부당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의 요구를 100% 수용할 수 없는 방송사나 토론위원회의 고충도 이해되어야 한다.
방송사에서 임의적으로 행하는 토론이든, 선거법에 의한 의무적 토론이든, 후보자 토론에서 참여 후보의 초청범위를 결정하기 위한 어떤 기준은 불가피하다. 가능하면 모든 후보를 다 참여시켜야 하겠지만, 군소후보를 무조건 다 포함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불합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애석한 일이지만, 이상과 현실간에는 괴리가 있기 마련이고, 정치는 현실에 더 크게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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