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이 5월 5일 밤에 방영한 <MBC 스페셜> "국민 참여 경선 1부: 정치, 시민이 바꾼다"에 대해 한나라당이 편파방송이라며 6일에는 대변인 논평을 내고, 편파방송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7일에는 MBC 본사에 항의방문까지 했다. 이와 함께 이회창 후보는 이 프로그램의 2부 "개혁의 조건"에 출연하기 위한 인터뷰를 거부했다.
이 프로그램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경선 모습을 보여주는 도입부에 이어 민주당 경선 과정과 한나라당 경선 과정, 노무현 후보의 지지모임인 '노사모'와 이회창 후보 지지모임인 '창사랑'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본론을 채우고 있다. 결론부는 6월항쟁에서부터 비롯된 시민의 정치참여 역사에 이어 민주당 국민 경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노사모 회원들의 활동에 힘입어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대세론을 뒤엎고 승리할 수 있었음을 소개하면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우리 정치가 바뀌고 있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정치를 시민들이 바꾸고 있다는 기획의도를 가진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편파적이라는 한나라당의 비난은 이 프로그램의 의도나 장르를 오해한 때문이다. 조선일보 8일자에 의하면, MBC를 항의 방문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측은 "국민 참여 경선제를 다룬다는 취지라면 취재의 중심이 국민 경선에 참여한 대의원들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이 날 방송에서는 노무현이라는 특정 후보 지지도 및 '노사모'를 집중 취재했다" 며 "이는 특정 후보를 띄우기 위한 의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정치, 시민이 바꾼다"라는 부제에서 명백히 드러나듯이, 국민 경선 그 자체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이 국민 경선이라는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정치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국민 경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경선 판도를 바꾸어버린 노사모의 소개는 프로그램의 제작 의도에 잘 맞는 것이다.
더구나 이 프로그램은, 그 책임 프로듀서도 밝혔듯이, 공정성이 요구되는 선거 보도나 시사 토론 프로그램이 아니다. 선거 보도나 선거 관련 토론 프로그램이라면 엄격한 공정성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과 같이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큐멘터리에서는 공정성은 요구되지 않는다. 선거에서 후보간에 같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동시간 규칙을 규정한 미국의 통신법 315조도 순수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동시간 규칙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장르의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는 그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증거가 적절하고 치밀하게 제시되었는지 여부이어야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이 프로그램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로 우리 정치가 바뀌고 있다는 그 본래 의도를 실증적인 예들을 들어가며 비교적 잘 부각시킨 수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흠결이 있다면, 공정성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프로그램에서 오히려 지나치게 공정성에 신경을 쓴 나머지 프로그램이 다소 매끄럽지 못했던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그리고 특히 본론 부분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노사모와 창사랑을 너무 기계적으로 나열함으로써 프로그램의 맥이 끊기고 지루해졌다. 국민 경선제를 먼저 도입한 것은 민주당이고, 그 경선은 후보간의 열띤 공방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반하여 한나라당은 뒤늦게 마지못해 국민 경선제를 도입했고, 그 경선은 주간조선(4월 30일)조차 "국민들 호응 냉담"한 "김빠진 사이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인기를 끌지 못했고, 결과도 예상대로였다. 그런데도 이 프로그램은 애써 두 당의 경선을 동급으로 취급했다. 게다가 모임의 회원 수, 회원의 자발성, 모임의 역사 등에서 상당히 차이가 나는 노사모와 창사랑도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루었다. 공정성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지나치게 공정성을 의식하여 억지로 공정성을 맞추고자 한 때문에 매끄럽지 못하게 된 그런 프로그램에 대해 편파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프로그램을 편파방송으로 규정한 한나라당이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난 후 그 회의 참석자인 박원홍 홍보위원장이 문화방송을 편파방송이라고 비난한 데 대해 그 이유를 묻자 "(문화방송이) 정권의 시녀니까 그렇다. 사장을 정권이 임명하지 않는가"라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이보다 한 술 더 떠, 문화방송을 항의방문하고 난 후 인적구성이 문제라고 한 데 대해 질문을 받자 박 위원장은 "뻔하지 않나. 누가 임명하고, 어느 지역 사람인가. 현재도 그렇고 과거에 (MBC) 거쳐간 사람들도 다 호남사람들이다. 언론사의 오점이다"라고 답한 것도 양식을 의심케 하는 놀라운 발언이다(오마이뉴스, 8일자).
문화방송 사장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선임한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과거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시절에는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정권이 낙점한 인물을 이사회에서 추인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현 김중배 사장의 경우 정권의 의중과 상관없이 방문진 이사회에서 자율적으로 선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장을 정권이 임명했다는 주장은 김 사장에 대한 중상모략이다.
게다가 "현재도 그렇고 과거에 (MBC) 거쳐간 사람들은 다 호남사람들이다"라는 주장은 지역감정에 호소하기 위해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 악의적 발언이다. 한나라당이 문제삼는 프로그램의 제작에 참여한 프로듀서들 가운데 호남 출신은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과거 문화방송의 요직을 거쳐간 사람들이 다 호남 사람들이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기기 위해 이처럼 사실관계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제1당의 홍보위원장이라니 참 한심할 따름이다. 문화방송을 편파방송으로 몬 박 씨의 반사실적, 지역차별적 발언으로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문화방송사와 그 종사자들이야말로 박씨와 한나라당에 사과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대해 적절하지도 않은 공정성 시비를 일으켜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행위는 극복해야 할 구시대의 더러운 정치다. 지금 우리 정치가 극복해야 할 최대의 과제가 지역감정인데도 일부 정치인과 정당은 걸핏하면 지역감정을 선동한다. 새롭고 깨끗한 정치를 열망하는 유권자들은 이런 더러운 정치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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