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보육 현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사회복지관, 정신보건센터, 의료 사회복지,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등 다른 복지 진로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게 지금까지 함께했던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정이 들었던 것일까?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 마음속에 생기기 시작했다. '혹시 이 길이 나의 길인가?'
놀랍게도 나는 지금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육교사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에도 다니고 있다. 학업을 마치면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이 되고자 한다.
비록 설익었지만, 보육교사 생활을 바탕으로 나만의 보육 철학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건 '차별 없는 동등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아동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제 '사랑하게 된' 아이들에게 내가 알게 된 보육을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나의 보육 철학을 구현하는 현장, 국공립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고 싶다.
▲ 어린이집. ⓒ연합뉴스 |
보육교사에 대한 낮은 사회적 평가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아동의 행복과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보육 활동에 얼마나 많은 난관이 놓여 있는지를.
우선은 사람들이 보육교사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태도에 우리 교사들이 힘들다. 보육교사는 유아교육학, 아동학, 보육학 등을 전공한 엄연한 아동 전문가이다. 삼성 어린이집, 관공서나 기업 부설 직장 어린이집의 경우에는 석사 과정을 졸업해도 공채를 뚫고 입사하기 힘든 시설이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육교사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다. 보육교사를 그저 "1년 과정 쉽게 공부해서 자격증 얻어 아이 보는 사람, 혹은 보모"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처음 보육교사로 나섰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평가가 낮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한 후배 교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대접해 주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저 단지 '교사'로 대우해 주길 바랄 뿐이죠."
낮은 사회적 평가는 보육 교사들에게 피해 의식, 상대적 박탈감,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이는 결국 업무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 보육 서비스 질도 낮아져 아이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급여 이야기 때마다 저하되는 사기
보육 교사에 대한 낮은 사회적 평가는 열악한 처우로도 드러난다. 내가 2004년 처음 초임생활을 시작했을 때 처우 개선비를 포함한 급여가 1호봉 기준 약 130만 원이었다. 그나마 보육 교사들이 들어가기 어렵다는 국공립 어린이집이 이 수준이니 민간 보육시설은 오죽할까? 당시 민간 시설에 다니는 대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우개선비를 포함한 초봉이 80만 원에 불과했다.
물론 지금은 호봉 자체도 오르고 여러 가지 수당도 생겼다. 초임 교사의 급여도 국공립 어린이집을 기준으로 보면 수당 포함 180만 원 정도로 예전보다는 급여가 많이 올랐다.
하지만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급여가 낮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고려하면 우리 보육교사들이 급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보육교사들의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다.
평가 인증, 보육 현장을 억누르다
보육 현장을 둘러싼 환경도 교사들을 힘 빠지게 한다. 툭하면 바뀌는 보육 관련 정책과 지침들이 혼란스러울 정도이다. 내가 초임 교사로 보육 현장에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보육시설 평가 인증 제도가 없었다. 국가 수준으로 표준화된 보육 과정이 없는 까닭에 어린이집마다 프로그램이 제각각이었다.
2006년에 평가인증 제도가 도입되었고, 이후 확대 시행되었다. 이 때문에 보육 시설의 관리와 교육 프로그램이 체계화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반복되는 감사, 너무나 많은 서류 작업으로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했다. 평가 인증 제도 자체에 대해 회의감마저 들 정도이다.
지금의 보육 현장만 보면 내가 그리는 보육 철학을 꽃피우기는 어렵다. 아무리 선량한 보육 교사일지라도 '아동의 권리와 행복'을 최우선으로 실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나는 꼭 어린이집 원장이 되고자 한다. 일단은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이! 지금의 난관을 넘어서는 실천 사례를 만들고 싶다. 이러한 노력이 퍼짐으로써 결국 보육 현장을 새롭게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원장의 막강한 영향력
우선 내가 원장이 되면, 원장부터 '올바른 아동에 대한 마인드'를 가질 것이고, 이를 동료 원장들과 공유할 것이다. 사실 영유아 보육 시설에서 원장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원장의 마인드와 보육 철학, 운영 방침에 따라 그 시설의 방향성과 특성이 상당히 결정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아동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는, 진정성이 없는 원장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굉장히 위험하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한 인격체가 아닌 "돈"으로 본다거나 원장의 위치를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만 삼으려 한다면 이는 이제 자라나기 시작하는 순수한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교사들에게도 선배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싶다. 교사는 교사로서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보육교사의 직업적 본분은 무엇인가? 영유아의 보호와 교육을 위해 때로는 엄마와 같이, 때로는 교사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때론 엄하게 후배들을 대할 것이다.
간혹 보육교사에게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의무와 교사 노동자로서 권리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어려운 처우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우리가 모두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들 보살핌을 뒤로 두는 건 보육 교사로서 최소한의 윤리와 양심을 거스르는 일이라 생각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교사들과 어우러진 멋진 어린이집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
부모에게 당당한 원장이 필요해
부모들에게도 무작정 끌려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들도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그만큼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보육 교사로서 해가 흐를수록,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갖지 않는 부모들을 더 많이 접하는 듯하다. 특히 무상 보육 시행 이후 그렇다. 무상 보육의 긍정적인 역할은 나도 동의하지만, 부모로서 책임감을 방기하게 하는 일도 가끔 생기고 있다. "국가가, 어린이집이, 그리고 교사가 알아서 키워줄 거야"라는 안이함이다. 아이가 아픈 것보다 자신의 할 일들을 우선시하는 엄마들도 있다.
또 아이들과의 다툼에서도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보면 전화로 온갖 항의를 한다. 그런데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에는 "그런데 어쩌라고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보시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엄마들도 있다.
이분들은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사'는 선생님도 전문가도 아닌 아이의 부모이다. 특히 영유아기, 부모와의 올바른 애착 관계 형성과 인성 교육이 한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
나의 '무한도전'은 진행형!
아이들은 사랑을 주면 그 사랑을 몇 배로 돌려준다. 우리 어른들처럼 이익에 따라 사랑을, 사람을, 상황을 계산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순수한 눈을 보면, 가끔 얽히고설킨 어른들의 세계가 생각나 왠지 모르게 아이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감동이다. 내가 아이들과 평생을 보내고 싶은 이유이다.
근래 무상 보육이 시행된 이후, 정치권, 사회복지 현장, 유아교육계 곳곳에서 '보육'이 뜨거운 이슈이다. 그만큼 보육은 우리나라의 미래 세대를 키우는 중요한 일이다. 보육은 어린이집 현장의 노력만으로 풀 수 없는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근래 보육 예산을 둘러싸고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갈등을 빚고 있는데, 양자가 대승적으로 보육 정책을 펴야 한다. 일부 비리를 전체인 양 대서특필하는 언론의 접근 방식도 고쳐야 한다. 아이들을 둘러싼 여러 주체가 서로 협력해야만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이집, 지역공동체, 복지국가도 가능할 것이다.
내가 보육교사이지만 감히 복지국가를 말하는 이유는 나의 꿈은 보육 현장의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해 결국은 복지국가로 완성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첫 목표는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이 되는 것이다. 나의 보육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항상 반성하는 좋은 원장이 되고 싶다. 동시에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할 세상이 복지국가이면 얼마나 좋으랴? 아이들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향한 나의 '무한도전'은 항상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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