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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ㆍ안철수, 알면서 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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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ㆍ안철수, 알면서 왜 이러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실현의지 없거나 재벌 눈치 보거나

대선 후보별 보건의료공약의 윤곽이 드러났다. 안타깝게도 주요 대선 후보의 의료공약은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럽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입장에서 후보별 보건의료 공약을 비교 평가한다.

이 글은 각 후보의 보건의료 공약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보다는 얼마나 실현가능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둘 것이다. 아무리 좋은 구호와 주장을 하더라도 실제 그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재원 확보방안이 없다면, 그 공약은 '빈 공약'이 될 공산이 크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그런 경험을 해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지난 노무현 정부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 80%, 공공의료기관 30% 확대 공약을 제시하긴 하였다. 하지만 보장률 확대계획은 세웠지만 재원대책이 없는 터라 정권 초기에 폐기된 바 있다.

각 후보별 보건의료 공약의 주요내용을 아래의 표로 간략히 요약하였다. 좀더 세세한 공약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주요 핵심 내용만을 간추렸다.

▲ 대선후보 보건의료 공약

고액진료 환자 85%를 외면한 박근혜 후보 공약

먼저 박근혜 후보의 보건의료정책을 보자. <표>에서 드러나듯이 박근혜 후보의 보건의료공약은 매우 빈약하다. 재난적 의료비 부담을 해소하겠다는 방안으로 내놓은 '4대 중증질환의 100% 국가 책임'이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이 공약 역시 큰 한계를 지닌다.

문재인 캠프에서 적절히 비판했듯이 4대 중증질환이라는 것이 전체 고액진료(연간 본인부담 500만 원 이상)의 15%(전체 335만 명 중 51만 명)만을 대상으로 한다. 국민들이 직면한 재난적 의료비 부담을 해소하기엔 큰 결함을 지닌 공약이다.

중증질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큰 이유는 선택진료, 상급병실료, MRI, 초음파와 같은 비급여 항목인데 이를 어떻게 국가가 책임지겠다는지 방안이 빠져있다. 오히려 새누리당의 박인숙의원은 대한의사협회가 주최하는 대선공약토론회에서 선택진료와 같은 비급여를 급여화할 계획은 없으며 오히려 반대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비급여를 급여화하지 않고 100%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건지 납득이 안 간다. 또한 그에 필요한 재원이 얼마인지,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히고 있지 못하다.

박근혜 후보는 왜 이리 부실한 보건의료 공약을 내놓았을까? 보건의료 공약에 대한 '빈' 정책은 그 자체로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보인다. 박근혜 후보 캠프가 보건의료를 생산해낼 능력이 없거나 관련전문가의 참여가 적어 구체적 정책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보건의료부문에 굳이 개혁의 칼을 댈 필요성이 없다는 정치적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일종의 '비결정'의 정치로써 제도적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을 정책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지금의 보건의료 환경은 여기에 특별히 손을 대지 않으면 의료영리화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의료공급체계는 전형적인 자유방임적 시장경쟁에 노출되어 있어 그대로 놔두면 영리화경향이 강화된다. 지금의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을 그대로 놔두면 보장률은 점차 하락하게 될 것이고 국민들의 의료불안은 더 커지게 된다. 결국 재벌보험사의 민간의료보험의 구입을 늘릴 수밖에 없다. 민간의료보험의 확장은 역으로 국민건강보험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문재인, 재원마련 방안 불명확…안철수, 재원방안 아예 없어

다음은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공약이다. 사실 두 후보의 보건의료 공약에 대한 기대는 컸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돈보다 생명이 먼저인 의료'라는 슬로건 하에 비급여의 급여화, 연간 100만 원 상한제 시행 등 그간 진보진영과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목표의 실현을 즉각적인 실행이 아니라 2017년으로 느슨하게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그에 필요한 재원확충 방안은 공식적인 문서에 담겨져 있지 않다. 단지 재원방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우선 고소득층의 부담을 확대하고, 국고지원을 확대한 뒤 추가 필요시 보험료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것도 보험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뒤로 밀렸다.

안철수 후보의 공약은 문재인 후보보다 훨씬 후퇴하였다. 비급여의 단계적 급여화와 입원 보장률 확대 등 방향을 제시하였으나, 구체적인 목표수치가 없으며, 100만 원 상한제의 실현은 국민적 동의하에 추후 검토과제로 넘겼다.

안 후보의 재원 방안은 전혀 담겨져 있지 않다.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보편증세를 통한 보장성 확대라는 방안(예를 들어,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1만1000원 인상 방안)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재정방안이 사라지다보니 목표로 한 공약도 후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왜 <안철수의 생각>이 폐기되었는지 그 이유가 국민들에게 제시돼야 한다.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묻고 그에 따라 출마를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 공약의 공통된 한계는 재원마련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각 후보의 보건의료 공약의 실현여부를 판단할 때 어떤 목표치를 제시하느냐보다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갖고 있느냐에 초점을 둔다. 그래야만 공약이 집권 시 구현가능하기 때문이다. (각 세 후보의 공약은 보장성 방안 외에도 지역의료격차 해소, 의료질 향상, 공공보건의료 확충, 건강불평등 해소 등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글은 공약의 실현 방안에 초점을 두고 있어 이에 대한 세부적인 평가는 생략한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가장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재원방안을 제시한 후보는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이다. 심 후보는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무상의료라는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재원 확충방안으로 국민, 사업주,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사회연대적 보험료 인상('건강보험료 1만원 더 내고 5만5000원 민간보험료 부담 해소')을 제시하였다. 그와 함께 국민건강보험료 상한제 폐지, 종합소득에 국민건강보험료 부과 등 국민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통한 추가적인 재원조달방안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그간 진보진영이 사회연대적 재원 확충방안에 소극적이었던 한계를 극복한 것이어서 큰 의미를 지닌다.

ⓒ연합뉴스

문·안 캠프에 진보적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참여했지만…

사실 문재인과 안철수 캠프 양측에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방안에 신념이 강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대거 합류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주장해온 국민, 사업주, 국가가 함께 사회연대적 보험료 인상(즉, 소득별 보편증세)을 통해 보장성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자는 방안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참여한 인사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각 캠프에서 보건의료 공약을 생산해내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적어도 야권단일화시 공통 정책과제로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방식의 보장성 확대방안이 포함될 것이란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양측에서 발표한 정책을 받아본 순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왜일까? 많은 진보적 전문가들이 양측 선본에 합류한 것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국민을 위해 좋은 정책들이 조금이라도 반영되길 바라고, 그런 역할을 해준다면 좋다고 본다. 그런데 결과는 실망스럽다. 양 후보의 보건의료 공약에 대한 재원마련 방안이 부실하거나, 누락된 것을 보면 공약생산에 참여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일 거라는 판단이다.

아마도 캠프의 재정방안을 담당하는 핵심 참모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예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이라는 증세정책이 당장 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캠프의 판단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당선 후에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이라는 보편증세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추진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본다. 그간 양측의 증세에 대한 논의과정을 보면 단순히 선거철이기 때문에 증세논쟁을 회피해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공약 생산에도 경제 전문가들의 영향력 강한 듯

오히려 양측 캠프의 핵심 권력자들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하는 것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반대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들이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둘러싼 이해관계 집단들(기업, 재벌보험사, 경제관료 등)의 정치경제학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가 누누이 강조해왔듯이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을 통한 보장성 확대는 국민들의 의료부담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폭 줄여주는 정책이다. 국민건강보험료는 평균 180%의 급여율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민간의료보험의 지급률이 겨우 50%내외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우수한 제도이다. 더욱이 국민건강보험료는 소득에 부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최하소득자는 보험료 대비 4~5배, 최고소득층을 제외한 중상위 소득자도 1.4~1.8배의 혜택을 받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절반은 사업주와 국고로 추가 지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100만 원 상한제 등의 당면 보장성 확대를 위해서는 대략 14조 원이 필요한데, 사회연대적 보험료 인상 시 국민이 6.5조 원, 사업주 4.4조 원, 국고 3.3조 원이 각각 추가 부담분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보험료를 인상하더라도 그 혜택은 전부 국민이 누리므로 이익이다. 더불어 월 20만 원이 넘는 민간의료보험 지출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사업주와 국고의 입장에서 이해관계는 다르다. 국민건강보험료 인상 시 사업주가 부담해야할 4.4조 원은 현재 전체 기업이 부담하고 있는 법인세의 10%에 해당된다. 법인세를 무려 10% 인상하는 효과다. 재벌을 위시한 기업들이 매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과 보험료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건강보험료 인상에 소극적인 이유다. 국고도 마찬가지다. 친시장 작은 정부에 강한 신념을 가진 기획재정부 경제 관료들은 국민건강보험 국고지원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크다.

특히 지금은 정부 정책에 강한 영향력을 가진 재벌이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에 극도로 반대할 것이다. 이들은 민영보험회사를 소유하고 있고, 민간의료보험은 영리보험사의 주요 성장동력이다. 민간의료보험의 규모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넘어섰으며 현재 4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국민건강보험의 입원보장률 90%, 연간 100만 원 상한제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실손의료보험은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고, 실손보험 외 민간의료보험 시장도 대폭 위축될 것이다.

재벌과 기업에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기업은 추가로 4.4조 원의 국민건강보험료 지원을 해야 하는 부담뿐 아니라, 그 효과는 다시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그들이 소유한 영리보험사의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극렬히 반대할 수밖에 없는 거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계속돼야

나는 적어도 문재인, 안철수 후보를 보좌하는 경제자문을 하는 전문가들이 이런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둘러싼 정치경제학을 모르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잘 알고 있기에, 능력별 누진증세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이라는 보편증세에도 소극적으로 일관하지 않나 의구심이 든다.

아무래도 정권이 야권으로 바뀌더라도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무상의료 운동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가 벌이는 소득별 보편증세, 시민 참여 재정주권운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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