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난 달 18일 해고된 MBC 최승호 PD가 지난 달 30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후마니타스 책다방 4층 강당에서 열린 강연회에 참석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구성을 바꿔 정부로부터 MBC의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PD는 MBC 시사교양국에서 <경찰청사람들>, <'MBC스페셜> 등을 제작했으며 총 7년에 걸쳐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을 제작했다. 이 기간 최 PD는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을 취재하고 '검사와 스폰서' 등의 취재프로그램을 보도한 바 있다. 현 정권 들어서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보도를 수 차례에 걸쳐 했다.
이날 강연회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정영하)의 파업 조합원들을 후원하기 위해 마련된 '보고싶다 무한도전'이란 이름의 노조 후원 도서전의 일환으로 열렸다. 최 PD는 강연 후 곧바로 같은 날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린 MBC 노조의 세 번째 파업콘서트에 참가했다.
"방문진 이사 구조 바꿔야"
강연회에서 최 PD는 현 공영방송 지배구조 상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낙하산 사장이 임명될 수밖에 없다며,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는 법안을 19대 국회가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BC의 경우 MBC 사장 임명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는 청와대와 여당, 야당이 추천한 이사 각 3명으로 구성된다. 이들 중에서 과반의 표를 얻은 이가 사장으로 당선된다. 무조건 청와대가 낙점한 인물이 사장이 될 수밖에 없다.
최 PD는 "6대 3의 구도를 예를 들어 여야 4대 4, 청와대 1의 구조로 바꾸고, 이사회의 3분의 2가 찬성하는 인물이 사장이 되도록 하는 식의 특별다수제로 개선해야 한다"며 "BBC 등 해외 유수의 공영방송이 채택한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다수가 되는 여당 측이 소수인 야당 측 이사의 표를 얻어야만 사장을 임명할 수 있는 제한장치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 PD는 "청와대와 여당 측 이사가 방문진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지 못하도록 해, 공영방송 사장 선임은 여야 합의를 거쳐야만 가능한 형식으로 바꿔야 한다"며 "가급적 빠른 시기 안에 새로운 구조 아래에서 낙하산이 아닌 인물이 MBC의 수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PD는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 과정을 설명하며, KBS 이사회 역시 독립성을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법에 따르면 KBS 사장은 KBS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이사진 11명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방통위 위원 5명 중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나머지 3명은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역시 청와대가 원하는 인물이 사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방통위원 분포는 여야 3대 2의 구도며, KBS 이사 분포는 7대 4다.
'여당이 더 민주적이고 야당이 더러울 때는 이 제도가 나쁜 것 아니냐'는 방청객의 질문에 최 PD는 "우선적으로 최악을 배제시키자는 데 목적이 있다"며 "당장 전 정권 당시는 보수층에서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공영방송이 좀 더 중립적인 위상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승호 PD는 'PD 저널리즘'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프레시안(이대희) |
방송 위력 무서워
최 PD는 공영방송이 정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방송의 영향력을 꼽았다.
그는 지난 2010년 광고주협회 조사 결과를 인용해 "KBS와 MBC의 영향력이 각각 53.9%, 22.6%로 가장 크다.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매체 역시 KBS와 MBC가 33.3%, 24.8%로 과반이다"며 "정권 입장에선 KBS와 MBC만 장악하면 상당수 사람이 정권의 입장을 사실로 믿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최 PD는 "언론 전문가들이 가장 신뢰하는 매체 중 하나인 <한겨레신문>의 국민 신뢰도는 0.8%에 불과하다"며 "(국민들의 눈이 언론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권력 입장에서 공영방송은 꼭 지배하고 싶은 매체"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권력의 욕심 때문에 김재철 사장으로 대표되는 낙하산 사장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최 PD는 언론 장악의 결과 여론이 뒤집어진 사태로 지난 4.11 총선을 꼽았다. 그는 "총선 과정에서 나온 두 가지 큰 이슈는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의혹과 김용민 후보 막말파문이었는데, 당시 KBS와 MBC는 민간인 사찰에 대해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사찰 있었다'고 보도했다. 김용민 후보의 발언은 8년 전 일임에도 헤드라인처럼 중계보도했다"며 "이 때문에 오히려 여권 지지층이 결집하고, 국민들의 여당에 대한 분노는 크게 올라가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 PD는 정부의 이와 같은 언론 장악을 두고 "여론에 대한 무지막지한 테러"로 규정한 후 "언론인으로서 이런 현실을 막지 못한다는 무력감도 (이명박 정부 집권 과정에서) 많이 느꼈다"고 고백했다.
"김재철 사장, 단협안도 무력화"
최 PD는 한편, 파업 전 제작일선에서 직접 겪은 고충을 설명하며 MBC 노조가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특히 김재철 사장 취임 후 편집권 간섭은 더 노골적으로 이뤄졌다고 최 PD는 말했다. 그 예로 최 PD는 지난 2010년 8월 방송된 <PD수첩>의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 방영 당시를 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4대강 사업이 결국 대운하 사업을 위한 것'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방송으로, 당시 시사프로그램으로서는 드물게 시청률 16%대를 기록했다.
최 PD는 "취재 막바지에 '이 사업이 대운하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질문을 4대강 추진본부에 했는데, 곧바로 국토해양부에서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 청와대가 그만큼 화가 났었다"며 "방송 하루 전 월요일, 갑자기 사장이 국장을 불러 자신이 그 테이프를 보고 싶으니 담당 PD가 와서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최 PD는 "이는 MBC 노사 단협안의 '국장책임제'를 위반한 사항"이었다며 "이를 거부하니, 결국 방송 당일 담당 PD도 모르게 경영진에서 프로그램 불방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불방 소식이 알려진 후 누리꾼들의 불만이 크게 보도되자, 결국 일주일 후 방송됐다. 당시 <PD수첩>이 겪은 프로그램 결방 사태는 지난 1990년 이후 처음이다. 과거 90년에도 경영진이 일주일 간 프로그램 방영을 연기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반발해 MBC 노조는 50일간 파업해 편집권 독립 장치를 만들었으며, 이는 현 정부 들어 일어난 KBS, MBC, YTN, 연합뉴스 노조의 대대적 파업 이전까지는 공영방송 최장기 파업 기록이었다.
최 PD는 "그 후 2011년 2월 김 사장이 연임되면서 본격적인 MBC 장악이 이뤄졌다. 즉각 사장 입맛에 맞는 인사가 이뤄지고, <PD수첩>을 만드는 시사교양국은 조직개편을 통해 '이상한 사람(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이 있는 곳'으로 소속을 바꿨다. 국장에는 김 사장의 고교 동창 후배가 들어왔고, <PD수첩> PD 6명이 다른 곳으로 배치됐다. 저는 아침방송 외주담당자로 발령났다"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조가 파업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MBC를 비롯한 언론사 노조의 파업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최 PD는 "오해"라며 "엄기영 사장이 있을 때도 우리는 굉장히 많이 싸웠다. (언론에는 잘 안 알려졌지만) 김 사장이 들어온 후 수 차례 파업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MBC 노조는 이명박 정부 들어 크고 작은 파업을 총 다섯 차례 했으며, 이 과정에서 118명이 넘는 징계자(해고자 포함)가 나왔다.
최 PD는 "국민 여러분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달라"며 "이명박 정부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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