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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

[한윤수의 '오랑캐꽃']<375>

외국인노동자는 직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1년 동안은 꼼짝도 못한다.
그래서 *외국에서 말이 많았다.
한국은 인권탄압국이라고!

여기다 설상가상!
3년 동안 꼼짝 못하게 되는 수도 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작년에 생긴 악법 때문이다.

3년간의 취업활동기간 범위 내에서,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근로계약을 체결 또는 연장할 수 있다.

당사자 간의 합의?
좋아하네.
어떤 바보가 날 잡아잡수! 하고 3년 계약에 합의하나?
죽어도 안 한다.

그럼 어떻게 3년 계약에 합의한 것으로 둔갑하는 걸까?
이것은 거대한 음모다.
이 음모를 추적해보자.

먼저, 안전장치가 없어 사람이 너무 자주 다치거나, 코가 마비될 정도로 냄새가 지독하거나, 귀가 멍멍할 정도로 소음이 심하거나, 먼지가 많이 나서 목이 메거나, 좁은 컨테이너 기숙사에 너무 많은 인원을 수용하거나, 식사를 한 끼만 제공하는데 반찬이라곤 김치만 주는 바람에, 외국인들이 의무근로기간 1년만 채우고 나면 무조건 그만두는 *한계기업을 갑(甲)이라 치자.
▲ 사진1. 표준근로계약서 상부 ⓒ한윤수

▲ 사진2. 표준근로계약서 중간부 ⓒ한윤수

1. 갑(甲) 회사에서 태국인을 1년이 아니라 3년짜리로 구해달라고 노동부에 요청한다.
2. 노동부는 갑 회사의 대표 성명, 주소, 기본급, 수습기간 활용여부, 숙식 제공 여부 등을 적은 표준근로계약서[사진 1 참조]를 작성해 태국에 보낸다. (주의할 것은 이 계약서에는 가장 중요한 근로계약기간이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다[사진 2 참조]는 점이다. 고의로 비워둔 이 빈 칸은 누가 생각해냈는지 기막힌 아이디어다! 만일 3년이라고 적혀 있으면 누가 사인하겠나? 아무도 안 하지!)
3. 태국인은 근로계약기간이 1년인 줄 알고 계약서에 사인한다.
4. 태국인이 한국에 온다.
5. 사장님은 갓 입국한 어리버리 태국인에게 뭔가에 사인하라고 해서 사인을 받아둔다. (아마도 여기서 결정적으로 1년짜리가 3년짜리로 둔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두 가지 케이스를 알고 있는데, 하나는 사장님과 함께 고용지원센터에 등록하러 가서 사인했고, 또 하나는 공장 현장에서 일하는 도중에 사장님이 불러서 사인했다.)
6. 며칠 후 외국인 등록증을 받아 보니 근로계약기간이 3년으로 되어 있다.
7. 태국인의 억장이 무너진다.

이건 사기가 아닌가!

G20 의장국?

국격이 부끄럽다.

*외국에서 말이 많았다 : 직장 이동의 자유가 없어서 말이 많았다. 하지만 작년 4월까지만 해도 <근로계약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외국인노동자들은 그나마 법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권 하에서 이 조항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당사자 간의 합의>라는 괴물 조항이 생긴 것이다.

*한계기업 : 여기서 한계기업이란 3D 업종 중에서도 꼴찌 10프로에 해당하는 최악의 기업을 말한다. 종업원의 안전이나 복지나 공해 방지에 전혀 투자하지 않아서 그야말로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그런 기업이다. 그런데도 이런 한계기업주들은 그만큼 투자를 해서 우수한 인력을 끌어들일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못해먹겠어. 이놈들이 일할 만하면 나간단 말이야. 1년이 뭐야?"하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문제는 정책 당국자들이 이런 한계기업주들의 주장을 순진하게 받아들인 데 있다.
"그럼 3년으로 해, 3년!"
이것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아니다.
'마지날 비즈니스 프렌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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