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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송전탑 막는 할머니를 보고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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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송전탑 막는 할머니를 보고 나니…"

[기고] 1차 탈핵 희망버스 참가기

토요일, 빛이 방 안 깊숙이 들어왔다. 눈을 떴다. "가자!" 다분히 충동적이었고, 주말 아침의 긴 햇살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 게다. 탈핵 희망버스 웹자보에 적혀 있는 담당자의 연락처로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버스에 자리가 있다고 한다. 1박 2일짜리 일정이니 챙길 것도 없다. 칫솔과 치약, 면도기는 항상 가방에 들어있으니 그거면 됐다. 물론 수건을 갖고 오지 않은 건 이튿날 아침에 잠깐 후회했지만.

어제까지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나갈 채비를 하는 아빠에게 네 살 먹은 딸이 묻는다. "아빠, 어디 가?" "시골에" "왜?" 최대한 쉽게 얘기해줘야 할 텐데…. "음… 할아버지 할머니 사시는 동네에 쇠말뚝을 박으려고 한대.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하려고." "왜?" 부쩍 궁금한 게 많아진 딸아이에게 탈핵이 무슨 뜻인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까지 설명해줘야 했나? 이미 내 능력 게이지를 넘었다. 패스!

▲ 탈핵 희망버스 추모문화제. ⓒ프레시안(김윤나영)

내가 탄 버스에는 교사 또는 교육운동가, 기자, 대학생, 직장인, 뮤지션, 녹색당 관계자 등이 함께 있었다. 버스는 시끌시끌하다. 뒷자리를 장악하자던 젊은 친구 9명이 공언대로 그곳을 차지하곤 쉬지 않고 재잘거린다. 강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젊은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 머물 일이 드물다 보니 오랜만에 겪는 낯선 모습이다. 서울을 떠나자 하늘은 금세 짙은 구름에 덮였지만 여전히 차 안은 무겁기보다는 봄나들이 가는 살짝 들뜬 분위기이다.

밀양에 와본 적이 있나? 그간 여기저기 구석구석 떠돌아 다녔지만 오늘의 차창 밖 풍경은 낯설기만 했다. 저녁식사를 위해 내린 곳에서 표지판을 보니 영남루니 읍성이니 적혀 있다. 그럼 와봤을 법도 한데, 직접 가봐야 기억이 나려나? 땅에 대해 몸이 반응하진 않는데, 대신 이 도시에 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형과 관련된 추억은 새록새록 떠오른다. 군 생활을 하면서 쓴 시를 통해 교실에 갇힌 학생들을 선동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겠다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배추 파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고 공언하던 그 형은 여전히 넉넉한 마음에 선한 눈빛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겠지?

첫 날 일정에서는 추모문화제, 신라면과 김치를 함께 먹으면 안 되는 이유와 스낵면에 밥을 말아먹으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뮤지션들이 주도했던 진지한(?) 논의, 후쿠시마 취재를 두 차례나 다녀온 기자의 생생한 체험담을 곁들여 함께 했던 저녁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문화제가 열릴 강변 야외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람이 찬 편이었지만 시민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유달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셨던 게 인상적이었다. 인근 5개 시·군에 세워질 송전탑 중 40%가 넘는 69개가 밀양에 건설된다 하니 송전탑 건설이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벗어날 리 없겠거니와 그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평생을 바쳐온 생활의 터전이자 시민들에게 마음의 고향이 되는 곳을 파헤치고 지나는 탓이리라. 오랫동안 자연과 아이와 순수를 노래했던 '백창우와 굴렁쇠 아이들'의 노래나 송전탑 경과지 주민들이 직접 합창단을 조직해 부른 '아리랑', '흙에 살리라'와 같은 노래가 마음 깊은 곳에 달라붙고, 흥겹지만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건 그들 앞에 놓인, 혹은 놓이게 될 아픈 삶의 노래를 날 것 그대로 들려준 까닭이 아니었을까? 주민들의 7년의 싸움을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특히 아팠다. 여기저기서 눈물들을 훔친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된 땅인가, 이런 생각만 자꾸 들었다. 저 힘없는 이들의 고통을 여기 오기 전까지 전연 모르고 있었던 나는, 우리는 또한 어떻게 된 인생들인가 하는 생각까지.

▲ 눈물을 훔치고 있는 밀양 주민. ⓒ프레시안(김윤나영)

핵발전소 신규 예정지인 영덕에서 오신 분의 연대사,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던 고리1호기 문제로 열변을 토한 녹색당 후보의 연설, 정책 질의서 전달, 다큐멘터리 상영, 각종 공연이 차례로 이어지고, 브라스 파트가 인상적이었던 밴드 '요술당나귀'의 공연을 끝으로 3시간 반의 문화제가 막을 내렸다. 2부는 흥겨운 자리였다. 먹을거리와 마실거리가 풍성한(밀양대책위에서는 희망술독이라는 이름으로 막걸리 술독을 수레에 실어서 나누어주었고, 따뜻한 차와 부추전, 어묵탕까지 배불리 제공해주었다) 자리였다. 희망버스는 주민 분들이 숙소로 선뜻 내주신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까지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 깨어있는 이들의 이야기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아침식사 후 송전탑 건설을 위해 벌목한 자리에 생명의 나무를 다시 심기 위해 화악산 평밭마을 입구에 모였다. 주민들과 함께 오르는 산길에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퍼졌다. "핵을 반대합니다…아이들에게 생명을, 지구별에게 생명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니 둥글둥글한 산봉우리가 겹겹이 주위를 두르고 있고, 그 아래에 위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못이 있고, 민가가 흩어져 있는, 산으로 둘러친 병풍 속에 마을이 폭 담겨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간밤에 따뜻하게 잘 잤는지, 아침식사는 입에 맞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물으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닮았다.


▲ 산에 천막을 치고는 번갈아 철야로 지키며 송전탑 공사 재개를 온몸으로 막고 있는 할머니들. ⓒ프레시안(김윤나영)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참가자들이 손자 손녀 같다며 대견해 하시던 그분들의 눈에서 순간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다. 한전'놈'들 이야기가 나올 때. 평생을 자연 속에서 흙과 함께 살아오며, 노동의 결실로 한 해 한 해 살아가시던 이들을 그곳에서 간단하게 떼어내려 하는, 그냥 살던 대로 살게 해달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호소에 코웃음치며 그들을 조롱하고 심지어 강아지 취급했던 손자뻘의 젊은 용역들로 대표되는, 거대한 벽이다. 화악산의 흙과 나무를 닮은 나이든 주민들은 중장비에 파헤쳐지고 밀리고 잘려나간 화악산의 흙과 나무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다. 쫓겨나면 갈 곳이 없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악에 받쳐 소리치고, 손자 손녀뻘 되는 이들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시는 모습에, 노모를 두고 몸을 불살라서야 겨우 세상에 이야기할 기회를 얻은 일흔 넷 할아버지의 그을린 절규에 더 이상 무슨 말을 잇겠는가? "살만큼 살았다. 공사 재개하면 또 죽겠다. 두렵지 않다"라고 외치며 산에 천막을 치고는 번갈아 철야로 지키며 송전탑 공사 재개를 온몸으로 막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험한 산길을 간신히 기어오르고, 걸어내려갈 수 없어 포대자루를 타고 겨우 내려가면서도 공사 중지할 때까지 계속 그렇게 하겠다 하신다.

▲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인 화악산에는 "무단으로 들어올 시 형법 314조에 의거하여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는 경고문이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영산홍 200여 그루를 심고, 산막으로 내려가는 길은 간간이 들려오는 새 소리뿐, 적막했다. 지금은 일단 공사가 멈추었기에 공사용 중장비들이 곳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농기계로 써야 할 경운기가 중장비 곁에서 바리케이드로 쓰인다. 천막은 꽤 넓었고, 물론 전기는 들어와 있지 않았다. "우린 전기 필요 없다. 너희 도시 사람들도 전기 좀 아껴 써라" 산은 깊었지만 그 속에도 마을이 있었고, 인근에는 그분들의 생활 터전도 함께 있을 터. 그 위를 지나는 765kv의 초고압선과 송전탑은 건설되기도 전에 이미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그 지역에서는 쓰지도 않을 전기 때문에 이전까지의 삶을 포기하라고 강요받는 분들에게 여기저기 보이는 765라는 숫자는 공포와 미움의 대상이다. "형법 314조에 의거하여 '업무방해죄'로 처벌된다"라는 내용의 무시무시한 경고 표지판을 세우기에 앞서, 지금이라도 보다 진정성 있는 논의와 접근이,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성찰과 관심이 필요한 까닭이다.

멀리서 달려와 주어 고맙고, 외롭지 않다고, 우린 이겼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오늘 심은 영산홍을 지켜주겠다고 말씀하신다. 1년만 지나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다던데, 하트 모양으로 심은 영산홍이 이곳에 공포와 미움 대신 사랑과 평화를 가져다주길 바랄 뿐이다. 밀양팔경의 하나라는 위양 못과 화악산이 가족과 함께 다시 찾고 싶은, 고즈넉한 곳으로 남아 있길 바란다. 한결 같이 반겨주실 것만 같은 할머니께서 구워주시는 군고구마나 먹고 하이킹이나 하며 머리를 식히고 싶다. 무심히 써왔던 전기를 아끼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찾는 수고로움은 감수하면서 그분들이 이제껏 살아온 그대로를 죽 보게 될지, 아니면 900여년 전에 그곳을 휩쓸었던 늙은 초적의 재림을 보게 될지, 선택의 순간이 왔다(밀양은 고려 무신정권에 대항한 김사미와 효심의 지휘로 1193년∼1194년에 봉기했던 농민 세력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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