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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 하려면 노동자 이사제 도입부터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새로 선출됐다. 언론은 노무현의 부활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첫 최고위원회 자리에서 한명숙 신임대표는 "모든 강령에 진보적 가치를 반영하겠다"고, 문성근 최고위원은 "노동과 복지, 재벌 개혁에 대해 우리가 만든 초안을 국민에 보고하고 의논해 발표하는 것이 옳다"고, 박영선 최고위원은 "경제 민주화에는 기득권 세력의 특혜를 걷어내는 재벌 개혁과 노동의 개념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인영 최고위원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극복하고 진보적 시장 경제, 사회적 시장 경제로 자기 노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치 과거 민주노동당의 지도부 회의를 보는 듯하다.

'진보적 가치', '노동과 복지', '재벌 개혁', '신자유주의 극복', '사회적 시장경제', 다시 말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노동자 이사(worker director)의 도입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모든 강령에 진보적 가치를 반영하겠다"는 한명숙 민주통합당 새 대표. 그 뒤로 박영선, 문성근 최고위원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서유럽에서 노동자 이사제는 대세

사외이사제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많다. 기업의 투명성 강화에 긍정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주된 평가다. 사외에서 많은 돈 주고 이사를 모셔올 필요가 없다. 기업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기업의 발전에 누구보다 애착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을 이사로 모시면 되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는 노동자 이사제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우익들이 '노동유연성의 천국'으로 극찬하는 네덜란드와 덴마크를 비롯해, 요즘 들어 '조중동'조차 매력을 느끼는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노동자 이사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재미난 사실은 유럽 재정위기의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는 PIGS 나라들, 즉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서는 노동자 이사제가 그리 활발하지 않다는 점이다. 공기업에만 제한적으로 도입되거나 아예 노동자 이사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2007년 금융위기의 주범인 미국에서도 노동자 이사제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더 어려운 이야기다.

1948년 헌법 제정부터 노동자의 경영참가권 논의

대한민국에서 노동자 이사제에 대한 논의는 1948년 제헌헌법 제정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헌헌법 제18조는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천명했다. 물론 관련 법률은 제정되지 않았지만, 이 조항은 "노동자 이익 균점권"으로 불리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폐기할 때까지 우리 헌법에 남아 있었다.

헌법 제정을 둘러싸고 노동자 이익 균점권이 이야기되던 당시, 노동자의 기업운영 참가권도 함께 논의되었다. 노동자의 기업운영 참가권을 지지하는 측은 주장의 논거로 "참여적 사회협의체의 필요성, 상호구조 원칙의 실현, 생산증가에 대한 노동자의 자율적 적극 책임, 노동자의 해방과 독립 달성"을 내세웠다. 안타깝게도 이익 균점권은 헌법에 포함되었으나, 기업운영 참가권은 채택되지 못했다.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기업투명성의 핵심에 노동자 이사제가 있다. 사외이사제도 맨날 개선해봤자, 기업 지배구조의 효율성과 투명성 면에서 노동자 이사 한 명보다 못하다. 그리고 경제민주화, 노동자 복지, 재벌 개혁의 수단으로서 노동자 이사제의 도입은 대단한 효과가 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듯

노동자 이사제는 기존 법의 개정 혹은 새로운 법의 제정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기존 법 가운데, 특히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에 노동자 이사제 조항을 신설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노사공동결정법을 새롭게 제정하여 노동자의 경영 참가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법률 제정이나 개정에 필요한 해외 사례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노동 존중 사회"를 약속한 정당들의 정치적 의지와 결단만 있으면 노동자 이사제의 법제화는 법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중세 사회에서 노예제를 유지하고 싶었던 지배층들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고려시대 노비였던 만적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고 외치면서 노비 백여 명과 궐기했다가 죽음을 당했다. 천년이 흐른 지금, 만적의 주장은 현실이 되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음이 상식이 되었다.

1%의 시대가 가고, 99%의 시대가 오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과 뒤이은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없는 정치적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제 민주통합당조차도 진보적 가치,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노동,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가치들이 제대로 힘을 받으려면 그 출발점은 노동자의 경영참가 강화, 즉 노동자 이사제의 도입이어야 한다. 99%가 아닌 1%에 드는 기업 이사가 될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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