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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뀐다한들, 그들이 안 바뀐다면…"

[우석훈 칼럼] "진짜 문제는 '모피아'다"

지난 몇 년간, 새해를 맞는 글을 썼었는데, 한 해를 마감하는 글은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참여정부 후반기에 한미 FTA 논쟁 등으로 해를 마감하면서 지난 한 해를 회상하는 게 힘들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온 다음에는, 한 해 한 해가 매년 고통스러웠다. 매년 세상은 더욱 더 나빠졌고, 점점 더 많은 국민들이 빈곤의 길로 접어 들어가게 되었다.

작년부터 2012년 12월 19일, 그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블로그에 D-데이 계산기를 달아놓고, 그거 쳐다보면서 그렇게 보냈다. 이제 359일, 1년도 안 남았다.

올해에는 해를 마감하는 글을 한 번 써보려고 마음을 먹은 게, 저자로서 혹은 학자로서 언론 매체에 해를 정리하는 글을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흔 살을 맞으면서 은퇴하는 것이 오래된 꿈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오면서 그걸 다음 대선까지, 그렇게 미루어두었다. 그래서 내년 이맘 때면, 언론에 글을 쓰거나 그런 일을 더 이상 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첫 섹스의 경제학'으로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1권이었던 <88만원 세대>의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던 게, 2006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래서 그 책의 결론이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얹히게 되었다. 지금 나의 시간표는 대부분 2012년 대선에 맞추어져 있다.

12권으로 준비되는 대장정 시리즈가 9권까지 발간되어 있고, 대선 즈음에 맞추어서 12권을 내려고 한다. 다음 정부를 준비하면서 시민단체 내부를 짚어보는 경향 신문의 '시민운동 몇 어찌'라는 주간 연재는 이제 41회가 나갔고, 내달 2월까지 50회에 마감을 하려고 한다. 새로운 정부에 희망하는 것들을 여기에 얹었다. 그리고 아직은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한 '나는 꼽사리다', 이것도 내년 대선 때까지, 대략 50회분의 방송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나는 오랫동안 '민중의 정부'를 희망하고, 좌파의 집권을 소망하였다. 그러나 다음 대선 이후, 민중의 정부가 출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시민의 정부'이고,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시민들이 주인이 되고, 긴 역사는 아니지만 90년대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추구했던 그 가치가 펼쳐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올해 3월부터, 나는 대선에서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민주당이나 아니면 다른 야당들이 뭘 잘 해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그리고 한국의 보수들이 너무 형편없이 스스로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한미 FTA를 국회에서 날치기시키는 순간, 나는 다음 총선과 대선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약을 날치기하는 세력, 그들은 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무리로서의 수명을 이미 다한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이명박과 그의 일당들이 한국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지난 정권 후반부, 나는 우리가 모을 수 있는 돈을 최대한도로 모아서 우리들의 20대를 위해서 사용하자고 외쳤다. 그 문제가 여당과 야당 혹은 좌우의 문제라기 보다는, 한국 혹은 한국 경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시급하고도 우선적인 문제라고 보았다. 청년 비정규직과 알바, 그들의 경제적 운명이 바로 한국 경제라는 거시 시스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당면한 위기라고 본 게, 경제학자로서 나의 진단이었다.

이명박과 그 일당들은 우리가 가진 돈을 모두 모으기는 했다. 일부는 그들 주머니에 들어가고, 그렇게 탈탈 모은 돈을, 결국 강바닥에 처박았다.

"우리는 대한민국 20대 청춘들의 미래를 4대강에 묻어버렸다."

한국 경제를 흔히 압축성장이라고 말한다. 군부가 벌써 한 번 독재를 했고, 군벌들로부터 정치적 권력을 가져오는 일이 87년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군산복합체라는 군과 결합한 경제가 기형적이라면, 한국은 일본 경제구조를 가져오면서 토목공사와 관련된 토건족이 그렇게 국가와 결합하면서 기이한 사적 경제를 만들어놓고 있다. 장군과 장교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 드디어 토건족도 집권을 한 번 했다.

어떻게 보면, 4대강과 새만금, 이게 바로 토건족들이 군대를 뒤이어 집권하는 과정이고, 그 클라이막스에 부실 공사로 만들어진 보와 분당과 서울에서 사람들이 호소하는 '냄새 나는 수돗물'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군인들이 가져간 정치적 권력을 찾아오는 것을 '제1 민주화'라고 한다면, 도식적으로 현대건설 사장을 내세워서 건설족들이 가져간 권력을 되찾아오는 것을 '제2 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와 정치는 별도라고 얘기하는 기이한 사람들이 가끔 있다. 경제학은 출발할 때부터 정치경제학이었고, 정치와 경제는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다. 김어준이 '닥치고 정치'라고 말했다. 나는 이 표현에 동의한다. 정치를 통해서도 경제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지만, 정치를 지금처럼 현대건설 사장을 축으로 하는 토건족들에게 장악된 상황에서, 어떠한 합리적 해결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으로, 한국의 토건족들의 본진은 어느 정도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지방토호들과 강건하게 손을 잡고, 새만금 등 지방건설 사업으로 튼튼한 방어진을 치고 있다. 길게 보면 70년대 유신경제부터, 짧게 보면 DJ 초반 혹은 노무현 중반 이후로 국정을 농단했던 토건세력의 뿌리는 깊고, 그 영향력은 넓다. 마치 80년대, 전두환 일당과의 일전을 치룬 이후로, YS가 전격적으로 하나회를 숙청할 때까지, 군인들이 여전히 한국의 중 부문을 틀어쥐고 있던 것과 같다.

2011년은, 흔히 모피아라고 부르는 금융관료들의 문제점이 우리에게 전면적으로 드러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금융과 토건의 결탁은 이미 일본에서 우리가 본 적이 있고, 오바마 당선 이후에도 전혀 손을 대지 못한 월가의 권력으로 전면적으로 드러난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금융의 문제는 IMF 경제위기 이후에도 한 번도 사회 의제로 제대로 다루어 본 적이 없었다. 두 번의 정권이 바뀌었지만, 금융관료들은 언제나 양지에서만 살았고, 이헌재, 강만수 혹은 김석동의 경우에서 보듯이, 보란 듯이 다시 살아 돌아와서 최고의 권력으로 복귀했다. 도대체 우리는 그동안 무얼 바꿨던 것일까?

토건과 금융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2001년 일본은 한 때 '일본의 곳간'이라고 불리었던 대장성을 결국 해체하고야 말았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재정과 금융은 물론 예산 수립 기능까지 틀어쥐고, 사실상 한국 금융을 농단하고 있던 기획재정부를 해체하고, 각 기능들을 총리실과 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로 분산시켰던, 그런 뼈를 깎는 개혁을 일본도 했던 것이다.

누적된 부동산 관련 대출로 부실화된 저축은행의 문제, 되지도 않는 메가뱅크를 통한 투자은행을 외쳤던 이헌재와 강만수 같은 이상한 금융 지도자들의 노선에 따라서 사모 펀드에 팔아넘긴 외환은행 사태, 이런 것들이 결국 터져나온 것이 바로 2011년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한미 FTA로 경색되어 있던 국회가 등원하면서 내걸었던 8개의 요구 사항 중, 유독 론스타 국정조사 건만이 누락되어 등원하게 된 일이다. 누군든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외환은행 때 재경부 장관이었던 김진표 원내대표의 고의적 누락을 의심하지 않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한나라당이 반대했다고는 하지만, 그러면 당연히 등원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 기가 막힌 우연의 연속을, 자기들끼리 정기적으로 회합하는 모피아라는 존재가 있다고 하지 않고서 설명할 수 있는가?

김석동 금융위원장, 권혁세 금감원장,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지금 외환은행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는 두 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정조사가 김진표 원내대표의 이상한 결정으로 사실상 물 건너간 지금, 감사원 청구를 하거나, 특검을 발동시키는 것 외에 남은 카드가 별로 없다. 감사원도 사실상 한나라당의 손아귀, 특검은 어차피 검찰의 권한으로 공을 넘기는 일, 토건족들의 뿌리가 깊은 만큼, 모피아들의 뿌리도 깊다. 그리고 두 힘이 결탁되어 있는 한, 국정이라는 것은 사조직의 개인 놀이터 같은 게 되어버렸다.

민주당이야 워낙에 무능한 정당이었다 치더라도, 새롭게 통합 정당으로 재출발한 지금, 금융관료였던 김진표가 새롭게 원내대표로 재신임된 지금, 도대체 뭐가 바뀐 건지, 난 도무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짧은 며칠 동안, 이미 론스타 국정조사는 사라진 채, 이유 없이 국회 등원만 이루어졌다. 금융위원회, 금감원, 여기에 민주통합당까지, 사실상 책임자들은 한통속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지금, 총선,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해야 도대체 뭐가 바뀔 것인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국민은 론스타 먹튀를 막고, 대통령의 친구가 가지고 있는 하나금융으로 외환은행이 통합되는 것을 막고 싶어한다. 그리고 금융위원회는, 어떻게든 론스타를 무사히 내보내서 과거의 잘못이 아무 것도 없었던, 정상적 행정행위로 사태를 무마하고자 대책회의를 진행하는 중이다. 그리고 야당의 원내대표는 이걸 막기보다, 은근히 협조하고 있는 듯한 정황 증거를 보이는 중.

애매한 일반인들이 많이 피해를 보았던 저축은행 사태 역시 이와 다른 상황이 아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카드를 서로 맞교환하며, 국민들을 기만하고 희롱하고 있는 중, 이게 국회의 장막, 국정의 베일 속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 경제의 눈으로만 보면, 탈토건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금융민주화라는 또 다른 목표가 이 테이블에 올라와야 한다는 사실!

'최강 라인'이라고 대통령이 불렀던 최중경, 강만수, 그러나 이런 이상한 조합은 현 상황대로라면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물러난 이후에도 여전히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

▲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가 해체됐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높이는 계기였다. 당시 <한겨레> 기사.
YS가 하나회를 군대에서 밀어내었듯이, 경제 민주화 과정에서 모피아들을 물러나게 하는 과정이 한 번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걸 환기시켜 준 2011년, 나는 이렇게 올해 한 해를 이해하고 싶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경제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외환은행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프레시안>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이 2012년은 외환은행을 지켜내고 공익적 은행으로 다시 탄생시키는 한 해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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