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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요

[한윤수의 '오랑캐꽃']<327>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거 세 가지.

1. 미친 놈이 칼 든 거
2. 무식한 놈이 돈 많은 거
3. 모르는 놈이 용감한 거.

그러나 나한테는 더 무서운 게 있다.
<감독관이 우물쭈물 하는 거>
왜 무서워?
눈물 흘리는 사람이 생기니까 무섭죠.
솔직히 *김완선이 눈보다 더 무서워요.

노동부 감독관은 어떠한 위압에도 굴하지 말고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 포청천 같이!
하지만 너무나 유약하여 결단을 못 내리는 초짜 공무원들까지 감독관으로 임명되어 배치된다.

필리핀 사람 마이클은 A사의 자회사인 B사에서 일했다. 하지만 월급은 언제나 A사에서 받았다.
B사가 문을 닫았다.
마이클은 다음날 A사로 옮겼다. A사나 B사나 똑같은 플라스틱 사출 회사이고 똑같은 사모님(여자 사장님)한테 월급을 받았으므로 마이클은 다른 회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클이 퇴직금을 달라고 하자, 사모님이 잡아뗐다.
"B사는 내 꺼 아니야. 시동생 꺼지. 시동생 회사에서 6개월, 내 회사에서 10개월 일했으니 퇴직금 안 줘도 돼."

결국 노동부에 진정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담당 감독관이 갓 발령 난 *초짜 공무원이요, 경험이 없는 20대 여성이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혹시 우물쭈물하는 거 아녀?"

아니나다를까, 감독관은 우물쭈물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질질 끌었다.
왜?
두 회사가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니까.
*마이클 말을 들어보면 같은 것 같고, 사모님 말을 들으면 다른 것 같고.

감독관은 침묵과 *변명을 거듭하다 100일 후 결국 가장 편한 길,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결론을 냈다. 진정하기 전의 상태로!
<A사와 B사는 별개의 사업장으로, 진정인의 계속 근로를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행정 종결함>

결국 피해를 본 건 16개월 일하고도 퇴직금을 못 탄 노동자다.
"다 거짓말이에요."
마이클은 지금 *배신감과 분노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는 이 사건을 재조사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한다.

이제 국민권익위원회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김완선이 눈 : 가수 김완선이 잘 나갈 때 "나 오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라는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노래보다 김완선의 눈이 더 무서워 이런 유행어가 생겼다. "니가 더 무섭다!"

*초짜 공무원 : 왜 하필이면 공장이 밀집되어 있으며, 화성시에서 굵직한 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00면 담당자로 베테랑을 배치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포스트에 초년병을 배치하나? 베테랑들은 지금껏 고생했으니 이젠 초년병에게 맡겨놓고 한가한 자리에서 쉬라는 뜻인가?

*같은 것 같기도 : 두 회사가 자금을 같이 쓰니까 같은 것 같다.

*아닌 것 같기도 : 사모님은 시동생 회사에 경리가 없어서 자기가 경리를 같이 봐준 거라고 주장했다. 좀 궁색한 변명이지만 이 변명대로라면 같은 회사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마이클 말 : 마이클은 두 회사가 같은 회사라는 것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원래 B는 사모님의 조카 이름이고, 그 이름을 따서 만든 회사다. 명목상 대표로 되어 있는 시동생은 회사에 거의 나오지 않고 조카인 B만 나와서 일했다. 그런데 B가 여름에 에어컨을 너무 빵빵 틀어서 사모님과 다툼이 잦았고 결국 그것 때문에 해고되었다(B는 지금 시내버스 운전을 하고 있다.) 그러니 생각해보라. 실제 소유주가 아니면 어떻게 마음대로 B를 해고할 수 있겠나? 사모님이 실제 소유주다.

*변명 : 감독관은 결국 "주소도 다르고 전화번호도 다르니까 다른 회사"라는 피상적인 논리로 자신의 결정을 변호했다. 즉 그녀는 실제로 돌아가는 상황으로 판단하지 않고 회사 이름으로 판단한 것이다. 회사 이름이야 다르게 지었으니 당연히 다르다! 하지만 만일에 머리 좋은 사장이 외국인근로자를 많이 쓰기 위하여 회사를 자기, 동생, 처제 명의로 3개로 분사(分社)해놓고, 노동자마다 한 회사에 11개월씩 근무시켜 총 33개월을 뺑뺑이 돌린 후 "자, 너희들은 퇴직금 없어. 두 회사는 내 회사가 아니거든. 봐. 주소도 다르고 전화번호도 다르잖아."
하면 퇴직금 안 줘도 되는가?

*배신감과 분노 : 마이클은 화성 지역 필리핀인들의 지도자다. 공명정대한 인물로 필리핀 사람들의 신망이 두텁다. 돈 몇 푼 때문에 거짓말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나와 눈도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인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덩달아 센터를 방문하는 필리핀 사람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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