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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 논란을 넘어 반성과 성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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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 논란을 넘어 반성과 성찰로

[한반도 브리핑] '김대중의 햇볕정책' 아닌 '우리의 햇볕정책' 필요해

지난 8월 18일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2주기였다. 김대중에 대한 여러 가지의 평가 중에서 지금까지도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것은 아마도 햇볕정책일 것이다. 2000년 정상회담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조명 받은 햇볕정책은 그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또한, 햇볕정책이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그의 이름처럼 따뜻한 햇살을 비추었던 것도 사실이다. '빨갱이'란 낙인은 평생 그를 괴롭혔고 죽어서도 그 낙인에 시달렸음에도 그는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신념에 따라 햇볕정책을 추진했고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결실을 맺었다. 그 결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니 그의 공과를 잠시 젖혀두고서라도 그의 역사적 자취는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고 물리적 충돌까지 겪은 지금 그의 햇볕정책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고, 또 햇볕정책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특히, 햇볕정책이 빛을 보게 된 시기가 1999년 서해교전을 경험한 이후라는 점에서 남북 충돌의 국면을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 햇볕정책으로의 회귀를 바라는 많은 주장들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북미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던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까지 가서 자신의 햇볕정책을 보편타당한 정책으로 주장했으니 어쩌면 햇볕정책을 대북정책의 현실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김대중도서관

햇볕정책이 남북관계에 커다란 역사적 획을 그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햇볕정책에 의해 만들어졌던 남북관계는 그 전과 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고 또 오늘날의 남북관계는 그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햇볕정책으로의 회귀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햇볕정책의 계승을 넘어서서 이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햇볕정책이 추구하는 '화해와 협력'의 철학은 계승하되 지난 시기에 만들어졌던 구체적인 정책들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냉전에서 벗어나 화해와 협력의 단계로 성장하는 중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의 단계에서 시련을 겪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햇볕정책의 기본철학은 유효하지만 그에 의해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정책들은 오늘의 시점에서 재검토되고 시대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

사실 햇볕정책은 지금까지 논란의 대상이었지 반성과 성찰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객관적 조건의 탓도 있겠지만 극과 극으로 갈린 평가 속에서 햇볕정책을 둘러싼 논쟁만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찬양과 비난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반성과 성찰은 발전의 출발점이다. 햇볕정책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지금 햇볕정책에 대한 향수와 복귀를 원하는 만큼 발전을 위한 성찰과 반성이 그만큼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것이 햇볕정책의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오늘날 남북관계는 많은 사람들의 인정하듯이 더 이상 나빠질 여지가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간간히 서해상에서는 포성이 울리고 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 역시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오랜 침묵을 깨고 북한과 미국은 대화의 길로 나서기 시작했다. 북한의 수해지원을 위해 미국이 긴급지원에 나서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개척해온 '북방영토'의 상실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기대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8.15 축사'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있었던 남북간 접촉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모멘텀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이래저래 남북관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만이 난무하고 있다. 남북관계만이 뒤처지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햇볕정책은 우리의 외교에 있어서도 중요한 변화의 계기였다. 특히 남북 간 분단 상황에서, '분단 외교'에 의한 제약을 어느 정도 극복했었다. 2000년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의 외교 각축전이 벌어지는 무대가 되었고, 우리는 일정하게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었다. 많은 비판에 시달렸던 '종속 외교'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손으로 풀어나가려고 했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런 점에서 햇볕정책은 단지 남북관계에서만 '화해와 협력'의 철학을 구현한 것이 아니라, 외교에서도 '자주적인 외교'의 방향을 일정정도 회복할 수 있게 한 출발점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의 한계와 오류를 내재했지만,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우리의 목소리를 그렇게까지 높인 적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햇볕정책은 남북관계와 우리의 외교에 있어서 중요한 변곡점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향수에 젖어 옛일을 추억하듯 '과거의' 햇볕정책에 멈추어 있어서는 안 된다. 시대가 변했고, 사람도 변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햇볕정책을 추억은 하지만 발전을 위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상황을 비관하며 오로지 '햇볕정책'으로의 복귀만이 능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능함의 한 표현일 수 있다. 오늘의 시대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아니라 '우리의 햇볕정책'을 만들어내야 할 시대이다. 그것이 미래의 남북관계 발전을 착실히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준비하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준비는 '과거의 햇볕정책'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통해 '우리의 햇볕정책'을 다듬어가야 할 것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2주기 추모를 지켜보면서 '햇볕정책'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이의 단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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