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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노조 위원장이 직원들에게 메일 보냈더니…"

[복수노조 시행, 그 뒤엔·③] 모일 수는 있다, 단 회사와 대화는 못한다?

322. 복수노조 허용 이후 한 달 동안, 새로 생긴 노동조합 개수다.

그런데 노조 관계자들은 이런 증가세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한국노총은 "신설 노조의 80∼90%는 대부분 사측의 필요로 만들어진 페이퍼 노조"라고 분석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기존 노조를 지키든, 새로 노조를 만들든 모든 조건이 사측에 유리하다"고 토로했다.

복수노조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던 양대 노총이었다. 여전히 노조 관계자는 "복수노조 제도는 노동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좋은 제도"라고 했다. 단, "문제는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이라고 했다. 이 조항이 노동자가 아니라 사측의 '교섭 대상 선택권'만 높여준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복수노조 시행 40여 일째를 맞아 '교섭창구 단일화'로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을 찾았다. <편집자>


- 복수노조 시행, 그 뒤엔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수상한' 갈비탕 회식
"'밤일' 못 견디겠다고 했더니 공장 문 닫은 것도 모자라…"

7월 30일, 삼성 에버랜드 직원들은 노사협의회가 보낸 단체 이메일을 받았다. "삼성노동조합이 외부 불순세력과 결탁해서 불법적인 행동을 한다면 삼성 사원과 회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라며 "동요하지 말고 기존의 노사협의회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용이었다.

박원우 삼성노동조합 위원장은 에버랜드 리조트 사업부 사원 600여 명에게 노사협의회의 주장을 반박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곧바로 응징이 왔다. 삼성의 인사팀 노무담당 관리자는 박원우 노조위원장에게 연락해 "회사의 컴퓨터를 비업무용으로 이용하는 것은 징계감"이라며 이메일을 삭제하라고 했다.

모일 수는 있으나 사측과 대화는 불가

'무노조 삼성그룹'에 들어선 삼성노동조합이 공식적인 자격을 얻은 지 한 달째. 조합원 4명으로 출범한 삼성노조는 새 조합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조 출범과 동시에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이 해고됐고, 지난 6일에는 김영태 회계감사의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김성환 삼성노조 지도위원은 "회사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하기 전에) 노조가 사측의 탄압을 이겨낼 건지 간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에 주어진 권한이 얼마 없다는 점도 불리하다. 보통 노동조합이라면 출범 이후에 으레 준비할 '사측과의 교섭' 절차를 삼성노동조합은 거치지 못하고 있다. '알박기 노조'로 알려진 삼성 에버랜드의 또 다른 노조가 지난 6월 사측과 2년짜리 단체협상을 미리 체결한 탓이다. 삼성노동조합은 앞으로 2년 동안 헌법이 보장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중에 단결권만을 보장받게 됐다. 다시 말해 당분간은 '모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노조의 "간을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삼성노동조합

매번 '한발 앞선' 신고, 복수노조 도입해도 마찬가지

'복수노조 금지'를 악용한 삼성의 '무노조 경영' 사례는 이전까지만 해도 복수노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의 대표적인 근거로 손꼽혔다.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노동계에서 오래 전부터 악법으로 통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노조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실제로 삼성의 '유령 노조 만들기'의 역사는 길다. 1987년 삼성조선(현 삼성중공업) 노동자 700명이 노조설립 신고를 시도했지만 회사 쪽의 지원을 받은 7명이 30여 분 일찍 노조 설립을 신고해 무산됐다. 같은 방식으로 2000년 삼성 에스원에서 노조 설립 신고를 하려던 시도 또한 20분 앞선 기술지도팀 과장의 노조 설립 신고에 가로막혔다.

그러나 복수노조가 시행된 지금도 삼성 측은 여전히 '알박기 노조'로 대처하고 있다. 방식은 비슷하다. 이제 삼성노조는 자신들보다 '한발 앞서' 체결된 단체협약이 끝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전까지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복수노조 금지' 조항 탓에 노조 설립 신고를 못 했다면, 이제는 '복수교섭 금지' 조항 탓에 그다음 단계인 교섭을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회사가 교섭권 부여"

2년 뒤 상황도 녹록지 않다. 삼성노조는 또 다른 노조와 '조합원 확보'를 위해 경쟁해야 한다. 복수노조 관련법에 따르면 노조는 여럿이어도 교섭 창구는 하나여야 한다. 2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하지 못하면 조합원의 과반수를 확보한 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획득한다. 사실상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다. 다수를 점하지 못한 노동조합은 이름뿐인 노동조합으로서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노조 관계자들은 "교섭 창구가 하나라면 노조가 복수로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복수교섭 금지'가 복수노조 도입의 핵심이었던 '노조 선택권'을 여전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박점규 금속노조 단체교섭국장은 "노조를 만들고 싶은데 창구 단일화 때문에 못 띄우는 사업장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문상환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지금 복수노조 법은 회사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며 "자율교섭을 할 건지, 교섭대표노조를 설정할지에 대한 권한을 회사만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문 정책실장은 "경남 센트럴의 경우, 회사가 지원하는 노조 조합원 수가 기존 노조보다 훨씬 적은데도 회사가 자율 교섭을 택했다"고 말했다. 회사가 지원하는 노조는 소수노조이든 다수노조이든지 간에 '교섭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셈이다.

삼성노조 "교섭 요구해 '알박기 노조' 폭로할 것"

삼성노조 측은 가로막힌 교섭권에 대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은 18일 회사에 교섭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조 부위원장은 "회사가 만들었다는 에버랜드 노조가 이미 교섭을 끝냈다는 소식을 언론에서만 들었지, 사내에서 공식적으로 교섭 체결 소식이 공지된 적은 없다"며 "공문으로 교섭이 이뤄졌음을 확인하는 게 순서상 맞다"고 말했다.

조 부위원장은 "에버랜드 노조는 공식적으로 노조를 설립했다고 발표한 적도, 조합원을 받겠다고 공지하거나 회사와 교섭한 사실을 사내에 공고한 바가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김성환 삼성노조 지도위원은 "교섭 요청을 통해 에버랜드 노조가 알박기, 어용노조라는 사실을 법적 다툼을 통해 폭로하는 싸움을 할 것"이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활동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계획에 대해 삼성노조의 자문을 맡은 권영국 변호사는 "교섭권을 차단할 목적으로 회사가 지원하는 노조를 만들고, 그 둘이 공모해서 단체협약 체결했다는 정황이 상당하다"며 "복수노조법이 가진 맹점을 회사가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은근한 괴롭힘, 상식적으로 이해 안 돼"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은 노조를 만든 후 조합원들에게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긴다고 했다. 유독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들에게만 안 되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놀이공원은 비가 오는 날은 손님이 없어서 보통 일찍 보내주거든요. 그런데 다 퇴근시켰는데 유독 노조 조합원만 안 보내주더군요."

'이상한' 인사제도도 생겼다. 그는 전에는 연차를 구두로 요청했는데, 갑자기 조합원이 속한 팀만 2~3일 전에 전자결재를 받도록 한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새로운 인사제도는 전부 적용해야 하는데, 딱 집어서 한 팀만 그렇게 조치했어요."

노조를 만든 날 해고된 조 부위원장은 회사의 징계도 미리 계획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징계 날짜를 14일로 미리 잡아놓고, 감사는 징계위원회 당일까지 진행했다"며 "검찰에서도 먼저 조사를 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데, 회사는 날짜를 미리 잡고 거꾸로 조사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얼마 전 업무상 필요한 서류를 컴퓨터로 출력해서 봤던 박원우 노조위원장도 과잉 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인사팀 노무담당 차장이 와서 "회사의 자산을 밖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그를 제지했다는 것이다. 단지 서류를 출력해서 볼 요량이었던 박원우 위원장은 무척 황당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부위원장은 "회사에서 우리를 좋아할 상황은 아니지만, 회사 구성원으로서 노조를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는 언론에 '복수노조 시대라서 노조를 막을 수 없고, 노조를 법적으로 대우하겠다'고 인터뷰했다"며 "이제 그만 탄압하고 노조 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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