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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에 정리해고…"합법적인 정리해고는 없었다"

"정리해고 시 '긴박한 경영상의 요건' 기준 강화해야"

IMF 때 정리해고된 식당 노동자에서 '먹튀 외국 자본'에 거리로 내몰린 쌍용자동차 노동자까지…. '한진중공업 사태'를 계기로 각 사업장의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16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진중공업과 희망버스에 대한 집단토론회'에서였다.

같은 날 오후 2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도 '한진중공업 사태 해법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학술단체협의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노동당 권영길‧민주당 정동영‧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실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정리해고의 법적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고 노동자들은 여론과 정치권의 뒤늦은 관심에 대해 반가워하면서도 "정리해고 문제가 좀 더 일찍 사회 쟁점이 됐다면 거리로 내몰린 해고자들이 어려움에 허덕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이제라도 희망버스와 한진중공업 사태를 통해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통장잔고 3만 원, 카드빚 150만 원을 남기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故 임무창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노제. ⓒ프레시안(손문상)

정규직을 정리해고하고 아르바이트를 쓰는 '흑자 기업'

현대자동차에서 식당 노동자로 일했던 장영자 씨는 1998년 당시 정리해고 대상자 277명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가 정리해고를 단행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회사가 정리해고를 할 만큼 경영 상황이 절박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회사는 해고자들을 2년 뒤 '리콜'하겠다고 했지만, 이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남은 자리는 '하청 비정규직'이었다.

정리해고 뒤 '질 낮은 일자리'가 들어선 사례는 흥국생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은 2004년 '미래의 경영 위기'를 근거로 전체 여성 노동자의 2/3를 퇴직시켰다. 그 자리에는 대신 아르바이트 여성 노동자 100여 명이 들어섰다.

흥국생명에서 사무직 노동자로 일했던 이형철 씨는 "매년 흑자가 난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노사합의서를 수차례 작성했지만 이마저 휴지조각이 됐다"고 말했다. 앞선 토론회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상 기업이 존폐 위기에 처할 심각한 재정 위기가 도래하지 않는 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단체협약은 유효하다"며 "해고는 부당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법 위에 있었다.

이 씨는 "지난해 10월 태광그룹 경영진들이 비자금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다"며 "지주회사의 배를 불리기 위해, 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정리해고가 자행됐다"고 꼬집었다. 이 씨는 "2001년에 울산에서 노조가 파업했지만 손배가압류로 무력화되고, 노조 사무국장이 사측에 부당노동행위하지 말라고 유서를 쓰고 자살했는데 (언론에) 언급이 안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해고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법원 판결에 정리해고는 불법이라도 해도…"

기타를 만드는 회사인 콜트콜텍 또한 세계 기타 판매량 3위를 기록한 흑자 기업이다. 2007년 회사는 예고 없이 공장을 폐쇄시켰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인 이인근 씨는 "이 땅에 정리해고 제도가 들어선 이후로 단 한 번도 합법적인 정리해고는 없었다"며 "단지 노동자 힘이 약해서 합법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리해고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씨는 "법원에서 아무리 부당해고라고 판결해도 이를 이행하는 자본이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콜트콜텍 해고에 대해 고등법원은 '경영상의 이유가 없으므로 다른 해고 요건을 살펴볼 필요조차 없이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아직 사건은 대법원에 2년 계류 돼 있다. 이게 대한민국에 사는 노동자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정리해고 철회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정리해고를 한 사업장들을 보면 적자여서 정리해고를 한 경우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진중공업 사태 해법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권영국 변호사는 "정리해고에 관한 법률에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한 경우에만 정리해고를 할 수 있지만, 사실상 사용자가 '경영상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얼마든지 단행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권 변호사는 "법을 개정해 정리해고 사유를 '해고하지 않으면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며 "기술적 이유나 일시적인 경영 악화, 미래에 올 수 있는 경영 위기에 대한 대처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로 봐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구조조정 절감비용보다 임금을 더 깎는다고 말해도…"

외국 자본의 '먹튀'로 정말 '긴박한 경영상 위기'가 찾아온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며 억울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리해고 방침이 정해지자 최기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책실장은 "노동자들은 경영진이 회사를 해외 자본에 팔아넘긴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데 분노했다"고 말했다.

최 정책실장은 이어 "그동안 해고되지 않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언론에 쟁점화되지 않았다"며 "노동자들은 다른 대안은 얼마든 내놓을 테니 제발 자르지만 말라고 애원했지만, 사측이 내놓은 선택지는 정리해고를 받을 거냐, 말거냐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가 해고를 안 하는 조건으로, 회사에서 제출한 구조조정 비용절감 액수보다 더 많은 양보안을 회사에 제시했었다"고 말했다.

해고의 네 가지 법적 요건으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해고 회피 의무 △해고 기준과 대상자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선정 △노조와의 성실한 협의가 있다. 노조가 구조조정으로 인한 비용절감액보다 더 낮은 절감액을 제시했음에도 사측이 이를 받지 않았다면, 사측은 '해고를 회피하려는 의무'를 다하지 않은 셈이다.

이에 대해 권 변호사는 "법원이 4가지 요건을 다 못 갖춰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 해야 하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고려하도록 정리해고의 법적 요건을 강화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 정책실장은 "사회 안전망도 없이 지금까지 15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이 죽음으로 내몰렸다"며 "해고는 정말 살인인 게 확인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쌍용차 해고자라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직이 안 되고, 일용직을 전전하고, 이혼하고, 16번째 죽음으로 내몰릴 가능성 있다"고 강조했다.

한진중공업의 해고 노동자인 윤국성 씨는 "희망버스가 와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 도움이 많이 됐다"면서도 "문제는 입법으로 고치지 않는 한, 아무리 싸운들 정리해고는 전국으로 확산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도 "이제 더 이상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그 누구도 이 나라에 고용이 안정된 사람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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