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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아이 얼굴 안 꿰매준다는 성형외과,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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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찢어진 아이 얼굴 안 꿰매준다는 성형외과, 이유는?

[<하얀 정글> 송윤희 감독 대담] "한국의 의료 상업화, 실제론 더 심각"

"아무리 의료 민영화가 심각한 문제라고 해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으면 카메라까지 안 들었을 것 같다. 물론 과잉 진료도 문제다. 환자들이 돈을 많이 써서 죄송한 것도 카메라를 들어야 할 이유였지만, 거기까지였으면 참았을 것이다."

'한국판 <식코>'라 불리는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의 송윤희 감독이 현직 의사로서 카메라를 든 이유다. 그는 의사로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의료 소외 계층이 항상 마음 속에 있었다"며 "(의료) 제도 안에서 소외된 사람을 조명했다는 게 영화의 핵심이었다"라고 말했다.

11일 서울 장충동에 있는 프레시안 강의실에서 한국의 '막장 의료'를 고발한 <하얀 정글> 다큐멘터리 상영회가 열렸다. 상영이 끝난 후에는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과 송윤희 감독이 대담을 했다. 상영회에는 관객 70여 명이 강의실을 메웠다.

ⓒ프레시안(최형락)

'막장 의료'의 현실…"3D CT 안 찍으면 얼굴 안 꿰매준다"

<하얀 정글>의 주제가 '의료 민영화'였던 만큼 대담에는 한국의 '막장 의료'가 도마에 올랐다. 우석균 실장은 "사람들은 <하얀 정글>을 보고 충격을 받지만, 보건의료인들 봤을 때는 고작 저 정도가 '정글'인가라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그 정도로 한국의 의료 실태가 심각하다"고 운을 뗐다.

우 실장은 "어떤 성형외과에서는 아이의 얼굴이 찢어져서 가도 3D CT를 찍지 않으면 안 꿰매준다"며 "하지만 소아들의 CT 촬영은 '추천 D'로 웬만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검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3D CT를 찍어야 하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 관행화된 사례가 너무 많다"며 "돈만 많이 드는 게 아니라 건강도 망치는 게 바로 의료 민영화"라고 꼬집었다.

그가 든 과잉 진료의 또 다른 사례는 로봇 수술이다. 특히 갑상샘(갑상선) 수술 건수가 한국은 외국의 10여 배라고 지적했다. 한국에만 유독 갑상샘에 혹이 있는 환자가 많기 때문은 아니다. 작은 혹도 무조건 제거 수술부터 시도하는 탓이다. 우 실장은 "외국에선 갑상샘에 초음파를 안 들이대지만, 한국은 건강검진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면 할수록 돈이 된다"고 말했다.

"(갑상샘암이라도) 1cm 미만 유두종이면 수술하지 않는 걸로 교과서에는 나온다. 그런데 병원은 '암이다, 건강보험으로 수술하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하지만, 로봇 수술하면 2주만 기다리면 된다, 로봇 수술은 흉터도 적게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게 있다. 수술 안 해도 된다는 게 표준이라는 점, (감상샘암은 전이가 거의 안 되기 때문에) 몇 년을 기다려도 상관없다는 것.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수술비는 60만 원인데 로봇 수술은 1500만 원이라는 점과 같은 맥락은 다 생략한다. 암인데 수술을 기다려야 한다면 환자는 1500만 원이 아니라 몇천만 원이라도 들여서 수술한다."

갑상샘에 생기는 혹은 초음파 검사에서 성인의 67%가 나타난다고 보고될 정도로 흔하다. 전이도 거의 되지 않고 증상도 없기 때문에 평생 혹이 있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다른 이유로 사망한 환자를 부검하다 갑상샘암을 발견할 때도 많다고 지적한다. 대한갑상선학회는 지난해 "(양성이든 암이든) 갑상샘에서 발견되는 0.5cm 이하의 혹은 검사나 수술을 하지 않고 지켜봐도 된다"고 공식 권고하기도 했다.

▲ <하얀 정글>의 송윤희 감독. ⓒ프레시안(최형락)
과잉 진료의 실태는 <하얀 정글>도 지적한다. 다큐멘터리에는 CT나 MRI와 같은 고가 검진을 할 때마다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병원이 나온다. 일일 외래진료 환자 수를 의사에게 문자로 통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관련 기사 : '돈독' 오른 병원의 속살, 현직 의사의 '카메라 고발')

이러한 현실에 대해 송윤희 감독은 "내가 대학병원에서 근무했을 때까지만 해도 경영부문이 의사의 진료에 압력을 가하는 경우는 없었다"며 "2000년대 초반과 2011년인 지금 상황이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다. 송 감독은 "지금 구조에서는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과잉 진료를 강요받는다"며 "경영 입장에서 강요하니 의사들도 자기의 진료권이나 의권을 침해당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송 감독은 "우석균 실장은 왜 (다큐멘터리를) 더 세게 안 만들었느냐고 했지만, <하얀 정글>의 어떤 장면에서는 의사협회나 기득권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염두에 뒀다"며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이런 잘못이 있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시스템 자체도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우 실장은 "그나마 이런 영화가 나온 건 송 감독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공익 제보를 기꺼이 해준) 양심적인 의료인, 노동조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 의료인들이나 여러 병원 종사자들의 집단적인 것들이 이 영화에 녹아있다"며 "그분들과 송 감독이 말하려는 것이 시민과 만나야 힘이 돼서 바꿀 수 있다"고 당부했다.

"돈 없어서 치료 못 받는 상황을 못 믿는 외국 의사"

논의는 한국의 의료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갔다. 송윤희 감독은 "지금과 같이 진료비 보상제도가 행위별수가제이면(의료행위가 이뤄질 때마다 의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수가를 받는 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했다. 그 대안으로 "총액계약제(국가가 병원에 지급할 예산 총액을 미리 정하는 제도)가 있지만, 현재 총액계약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사가 크게 반발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무작정 절대 안 된다고 해서는 나라에선 전체 의료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며 "(의료인도) 변화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석균 실장은 "한국에서 사립초등학교에 나왔다고 하면 꽤 잘산다고 생각하듯이, 외국에는 사립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한국에서 사립초등학교를 나왔다는 것과 비슷하게 본다. 병원은 다 국립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외국의 의사들은 한국 환자들이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간다고 하면, 농담하지 말라며 믿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 실장은 "병원에 가면 치료를 공짜로 받는 게 당연하다는 게 OECD 국가 상식"이라며 "한국도 다른 나라처럼 공립병원을 늘리든지, 사립병원이라도 공공의 역할을 하게 하든지 해야 한다. 또 건강보험 보장성을 지금보다 대폭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에게 '아픈 사람에게 돈까지 받을 수 없다'는 말 들으려면…"

▲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프레시안(최형락)
대담이 끝나자 청중의 의견도 쏟아져 나왔다. 안산에서 온 한 청중은 "아내가 치질 수술을 했는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실이 하나도 없어서 놀랐다"며 "또한 상식적으로도 치질수술에는 초음파 사진이 필요 없는데도 병원에서 찍으라고 했다"는 경험을 쏟아냈다. 그는 "아이가 코뼈가 나가서 수술을 받는데 병원에서는 아무 설명도 안 하고 건강보험이 안 되는 걸로 처리했다"며 "이런 식의 의료 경험을 많이 했다. 무상의료 되지 않으면 갈 데가 없다. 끝까지 간 것 같다"고 평했다.

또 다른 청중은 "의사인 친구가 개원하는 데 빚을 냈다. 환자 하나 오면 더 팔아먹으려고 한다. 의사가 인심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소비자운동이나 환자단체운동과 같은 시민운동보다는 의료인 내부 운동이 있어야 밖에서도 공감하지 않겠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우 실장은 "무상의료를 도입한 나라 중에 어느 나라에서도 의사들이 무상의료에 찬성했던 적은 없다"며 "대부분 파업하고 반대했다"고 답변했다. 그는 "송 감독 같은 의료인도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는 시민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에서는 무상의료를 도입할 당시 전체 의사의 단 1%만 찬성했다. 그로부터 두 세대가 지난 후에 영국에서 환자 본인부담을 우리 돈으로 1000원쯤 매기려고 했다. 그런데 개원의들이 하루 파업했다. 기자가 왜 파업했느냐고 물으니 의사가 '아픈 사람한테 어떻게 돈까지 받느냐?'라고 했다. 이게 제대로 된 의사다.

우리나라 의사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의사 개개인 심성이 못돼서 그런 게 아니라, 제도가 그렇게 만든 거다. 영국 의사라고 해서 한국 의사보다 양심이 특별난 게 아니다. '치료는 권리'라는 생각이 정착하고 두 세대가 지나니까 '아픈 사람에게 어떻게 돈을 받느냐'는 질문이 의사에게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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