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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의 꿈', 그 이후의 금융 패러다임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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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의 꿈', 그 이후의 금융 패러다임은 뭔가?"

[우석훈 칼럼] "이제는 '금융 민주화'다" <3>

- "이제는 '금융 민주화'다"

<1> "대권주자에게 묻는다…외환은행, 어쩔 건가?"
<2> "이헌재 손 잡았던 노무현의 실패, 반복할 건가?"
최근 산업은행이 아주 웃기다. 산업은행의 민영화 논리는 공기업 개혁과 메가뱅크 설립, 두 가지였다. 공기업의 부패는 민영화 논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오래된 전가의 보도 같은 것인데, 시장이 정부보다 효율성이 높다는 기본 가설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일방적인 주장일 뿐, 일반적인 법칙 수준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 전기와 철도 혹은 우정 서비스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정부가 출범하면서 산업은행과 함께 한전 민영화가 대두했었다. 나한테도 여러 경로로 질의가 와서, 한전 민영화하면 정권 임기 내에 '블랙아웃'이라고 하는 대정전 사태가 벌어질 위험이 있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한전은 6개 발전사로 분할되었고 전력계통만을 한전이 담당하는데, 전국적인 통합 그리드가 실시간 비딩 시스템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가장 값싼 전기를 순간적으로 구매한다는 것인데, 이런 전국적인 통합망은 순식간에 전국의 전력망이 마비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지난 여름에 전력치가 피크로 갈 때, 블랙아웃을 예상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바로 그날 여수 공업단지에 사소한 사고가 생기면서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다. 한전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그날 여수를 셧다운시킨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가 많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전국이 셧다운되는 '블랙아웃'이 벌어질 가능성인 높았던 날이다. 만약 민영화 과정이었다면, 비상 사태에 잘 대응을 못하기 때문에 진짜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나올 수도 있다. '저렴한 전기'도 중요한 문제지만, 안정적인 전기 공급 역시 국가적 과제이다. 민영화된 전력회사가 담당하는 캘리포니아는 언제든 블랙아웃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다.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이 그렇게 담당해야 할 업무가 있는데, 전기나 수도와 달리, 금융의 공금성은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사람이 알게 되지 않는다. 현재 산업은행은 강만수 혼자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되어 있어서, 우리은행 찝적대다가, 기업은행, 혹은 우체국 예금 업무 등, 뭘 먹을까 이리저리 쑤시는 중이다. 그 근저를 흐르는 논리가 바로 메가뱅크, 즉 덩치를 키워서 민간예금이 업무인 상업은행이 아니라 대규모 출자 같은 걸 처리해주는 투자은행으로 가자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은행의 시대는 끝났다. 금융 자유화를 했던 아일랜드 등 많은 나라들이 IMF 구제금융으로 갔고, 리먼 브라더스 등 한 때 시대의 패러다임을 이끌던 투자은행들은 망했다.

정부에서 강만수 총재의 이런 독자적이면서도 자의적인 행보를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아마도 원자로 플랜트 수출과 같은 때 이면 계약 같은 것을 통해서 큰 덩치의 지급 보증을 해줄 때의 필요 정도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따져볼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덩치 큰 은행으로 국민경제를 지탱한다는 메가뱅크 모델은 사실상 종료했다.

자, 지난 10년 동안 한국 금융을 이끌어온 금융계의 패러다임을 복기해보자. IMF 경제위기 때에는 외자유치가 제1의 기준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DJ 중반에 금융강국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메가뱅크론으로 넘어갔다. 노무현 시절에는 서비스 강화론이 나왔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때의 서비스는 문화경제 쪽이 아니라 금융과 건설업 그리고 영리 병원과 같은 특수 서비스 영역들이었다.

이런 논의들이 모여서 한미 FTA 논의까지, 즉 '타인의 손을 빌린 개혁'까지 자연스럽게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연결된 것이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고 현장에서 벌어진 것은 금융의 토건화, 지금 '배드 뱅크' 문제로까지 불거진 PF 문제가 이 때 생긴 것이다. 토건 쪽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게 금융정책을 통한 인위적 저금리로 가계 부실 문제와 한국이 1980년대 이후 가장 성공한 금융정책으로 평가받는 인플레이션 관리까지, 총체적 난국을 맞게 되었다.

구(舊) 패러다임은 난국에 봉착했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전환기가 바로 현 시점이고, 그런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장관도 아니고 차관도 아니면서 권한이 아닌 권력을 가진 산업은행 총재인 강만수의 묘한 위치가 등장한 것이다. 일시적인 진공상태이면서 누구도 금융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하지 못하는 지금, 강만수가 노리는 것은 어영부영 덩치를 키운 은행을 만들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메가뱅크 시절로 가자"는 것 아니겠는가? 내년 총선이면 최소한 국회에서는 여야가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강만수도 보는 것 같다. 그러니 남은 몇 달, 어떻게 날치기라도 해서 메가뱅크를 되돌릴 수 없는 현실로 만들겠다, 이러다보니 지금과 같은 산업은행의 우왕좌왕 행보가 나타난 것이다.

금융허브를 통한 금융강국, 이게 아니라면 우리의 금융은 도대체 어떤 패러다임 위에 얹혀야 할 것인가? 이런 국민적 논의가 필요한데, 이런 논의를 이끌 수 있는 것은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등 소위 빅 쓰리 아니면 그들 보다 나은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싶은 대선 후보군들이다. 이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논의의 한 가운데 그들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것과 개별 금융사안이 아닌, 미래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우리은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지금 부실에 그대로 노출된 저축은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개별사안들은 사실 앞으로 우리가 끌고 가고 싶은 한국 금융의 미래 모습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금융민주화는 이런 논의의 연장선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IMF 경제위기 이후 두 번의 민주당 정부와 한 번의 한나라당 정부를 관통했던 메가뱅크 논의를 대체할 다음 금융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내가 제시하고 싶은 것은, 세 가지 원칙 정도이다.

첫 번째는, 금융 공공성.

공적인 분야든 민간 분야든, 금융은 단순한 상품을 만들어서 팔면 그만인 일반 제조업 분야는 존재의 이유와 작동 방식 자체가 다르다. 기업체야 돈만 벌면 그만이지만, 은행이나 보험은 돈만 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화폐 발행과 이자율 결정 그리고 재정 및 통화 정책들이 밀접하게 금융을 통해 우리의 실생활과 연결되기 때문에, 금융은 공적인 것에 대한 연관성이 일반 상품 보다는 몇 배가 높다.

물론 어떤 것이 금융 공공성인가, 하나씩 들어가면 정말 책 한 권만큼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원칙으로서, 메가뱅크로 가기 위해서 은행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에 대한 공적인 기여를 하기 위한 것이 금융기관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많은 사안에 대한 다른 해법이 제시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농협의 금융지주화, 이것도 순전히 메가뱅크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목적으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했는데, 이게 과연 농업이라는 눈으로 보면 옳은 것인가, 우리의 농업을 위해서 금융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위상을 갖는 것이 옳으냐,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 메가뱅크

논의는 어쨌든 금융을 키워서 국제적인 규모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여의도의 금융가를 더 키우고, 그걸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지역은행이나 저축은행 같은 건, 하거나 말거나, 신문에 나오지만 않으면 된다, 이 정도로 별 철학없이 그냥 방치되어 있던 것 아닌가? 지역경제에 제대로 된 축을 두자는 것은, 결국은 우리가 선진국이 되면서 한 번은 넘어야 하는 분산형 경제로 가는 길에 대한 논의이다. 메가뱅크 논의는 국제주의라는 기치 아래 사실은 서울 중심주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요하다면 증권거래소를 부산이나 혹은 다른 경제가 어려운 도시로 옮겨갈 수도 있고, 한국은행 자체도 광주든 전주든, 얼마든지 옮겨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저축은행에 대해서도 지역거점 은행으로서의 기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가능성이 열린다. 토건이 아닌 지역경제에 대한 대안이 있는가? 지역에 어떻게 하면 다시 제조업이 자리를 잡게 할 수 있는가? 우린 이런 논의가 너무 없이 결국 토건 금융인 PF 일변 정책으로 갔고, 그러다보니 저축은행들도 따라서 PF로 간 것이다.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서의 지역 금융에 대한 기본 논의들을, 메가뱅크 열풍이 끝난 지금,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세 번째는 고용정책으로서의 금융.

IMF 경제위기 이후, 다른 산업부문과 마찬가지로 금융분야 역시 효율성을 명목으로 고용삭감을 하고, 전형적인 상후하박, CEO 등 간부에게는 후하게 주고 맡으로는 비정규직 등을 만들어내며 아주 박한 그런 조직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현재 금융업과 보험업은 고용은 84만 명이 조금 넘는다. 물론 금융 자체를 고용으로만 보기는 어렵지만, 사회 모든 분야에서 조금씩 더 고용을 늘리는 새로운 경제적 흐름을 만들지 못하면 한국 경제도 밑바닥부터 생겨나는 장기적 침체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지금부터 금융에서 우리가 해야 할 구조조정은 계속해서 은행 등 금융기관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예를 들면 1/3 정도 금융분야의 총고용을 늘리는 형태, 그런 것이 되는 게 맞는 것 아닐까? 잡 세어링의 형태일 수도 있고, 워크세어링 형태가 될 수도 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복잡한 작업 공정을 가진 일반 제조업에서의 근무 유연성은 기술적인 문제 등으로 복잡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서비스 업종이며 루틴 업무로 구성된 금융업종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업무 조정과 분할 등이 가능할 수 있다. 아직까지 우리는 금융을 고용이라는 눈으로 본 적이 없이, 그냥 잘라내는 일만 했다. 그러나 최소한 고용에 대해서 전사회적으로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어야 할 때, 고용으로서의 금융이 우리가 금융이 미래 산업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역할로 재인식되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20대 혹은 다음 세대가 금융업에 대한 직업 선호도가 매우 높다.

흔히들 금융을 '경제의 피'라고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금융은 너무 소수의 힘에 의해서 놀아나고 있었고, 정말 일반 국민들이 죽어라고 일할 때 거머리같이 여기에서 그냥 돈을 털어나가는 부정과 부패가 너무 많았다. 외환은행 사태든, 저축은행 사태든, 그런 폐쇄적인 결정구조 속에서 일어난 일이고, 그들이 '금융강국'이라는 이름 하나로 지금까지 추진한 일들이 너무 허무한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

▲ 강만수 산업금융지주 회장. ⓒ뉴시스
다음 총선과 대선으로 가는 길, 우리가 꼭 고민해야 할 것은, 다음 정권의 금융 패러다임 혹은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재설정 작업일 것 같다. 물론 위에 말한 세 가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다른 목표 혹은 가치를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공감대를 찾아나가는 길이다. 단순히 집행과 관리의 분리 혹은 특정 부처의 업무 분장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시스템 설정'이라고 논의하게 된다면, 결국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빠졌던 '조삼모사'의 함정에 다시 빠지게 될 것이다. 한국 경제에 혹은 한국 사회에 금융이란 무엇인가, 그 논의가 진행될 때에만 강만수 같은 사람들이 "이거 나 줘, 안 되면 저거라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

대권 후보들이 금융에 대한 논의를 본격 시작하는 것만이, 총선 전에 어떻게든 처리하겠다는 강만수의 이상한 꿈을 잠시라도 진정시킬 것 같다. 지금은 침묵할 때가 아니다. 한미 FTA만이 날치기 처리되는 게 아니라, 금융도 언제든지 '금융 날치기'로 이상한 방향으로 갈 위험이 상존한다.

(다음 주에는 4차례에 걸친 '금융민주화의 길' 마지막 칼럼으로 환율문제와 원화 가치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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