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중소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간호조무사·물리치료사 등 병원 노동자들이 18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집단 사직서를 쓰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간호사 인력 수급 문제는 개별 병원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인 중소병원이 겪는 총체적 문제"라며 "정부가 나서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중소병원은 인력이 부족해 조합원이 한 달 평균 10~12회 밤 근무를 하고, 주당 50시간 이상 일한다"며 "간호사 이직률이 20%에 육박해 입사자보다 퇴사자가 더 많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인력부족→높은 노동 강도로 인한 이직자 속출→숙련 간호사 부족→의료 서비스 질 저하→지속적인 인력난'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김경규 민간중소병원 대표 지부장은 "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에 간호사 구인 광고를 냈다"며 "노조에서 구인 광고를 내는 사업장은 전국에 아마 중소병원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보건의료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보건복지부에 인력 확충 대책을 요구하며 집단 사직서를 쓰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9년째 간호사로 일한 이윤주(가명) 씨는 "내가 다니는 병원은 100병상에 간호사가 4명"이라며 "간호사 한 명이 25명을 담당하다 보니 밥 먹을 시간 10분을 내기도 힘들어 죽고 싶다는 후배도 많다"고 호소했다. 이 씨는 "대형병원에 있다가 중소병원으로 온 환자는 간호 서비스를 질타할 때가 잦다"며 "간호사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니 항상 죄송하다고 말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잦은 교대 근무와 추가 근무로 일과 가사를 병행하기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16년 차 간호사인 최인희(가명) 씨는 "8살짜리 아들이 '엄마 왜 집에 오면 만날 자? 엄마 오늘 또 밤에 나갈 거야?'라고 묻는다"며 "나는 밤에 나가는 엄마로 찍혔다"고 말했다. 밤 근무와 낮 근무를 번갈아 하는 탓에 간호사들은 수면 장애에 시달리기도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중소병원 간호사의 인력난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형병원이 가벼운 질병에 걸린 환자까지 흡수하면서 병원 규모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이 때문에 간호사마저 대형병원으로 쏠린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의 임금이 연간 1000만 원 이상 차이 나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중소병원의 인력난이 의료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져 환자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지적한다. 특정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서 간호사가 집중치료시설에라도 들어가면, 나머지 환자들은 병실에 방치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간호사가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중환자실 사망인원이 9% 감소하고, 국가적으로 간호사와 환자 비율을 1:4로 고정하면 연간 7만2000명을 살릴 수 있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집회가 끝난 뒤 보건의료노조는 보건복지부와 면담 자리를 갖고, 2차 종합병원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고 간호사 인력난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방안 보완 △의료전달체계 정비를 통한 민간 중소병원의 공공성 강화와 발전전략 수립 △과잉 공급되고 있는 대형병원의 병상 신·증축 규제제도 수립 △지역거점의료기관 지정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민간중소병원 인력 수급을 위한 지원제도 마련 △건강보험 수가 결정 시 의료기관 규모별 수가 차등화를 통한 중소병원 가산율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박노봉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방안을 내놓았지만, 여기에는 2차 중소 종합병원이 가야 할 방향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며 "2차 종합병원 활성화 대책과 인력 부족 문제를 요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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