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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심사위원들은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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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신입사원> 심사위원들은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

['4인 4색 대담회' ③]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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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변호사는 너무 착한 말만 해요."

지난 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서울 여성 플라자에서 열린 <나와 너의 사회과학>(김영사 펴냄) 출간 기념 '4인 4색 대담회'에서 사회를 맡은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송기호 변호사를 이렇게 평했다.

정말 그랬다. '우리' 농업이 살 길을 고민하는 모습에서, 소비자들이 사 먹는 음식이 적어도 유전자 조작 식품인지 아닌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호소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탄식 곳곳에서 그의 진심이 배어났다.

송기호 변호사의 관심사는 주로 농업과 식품 분야이지만, 사람들은 송기호 변호사 하면 으레 자유무역협정(FTA)을 떠올린다. 지난 2008년 한국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 그는 미국이 애초 계획보다 후퇴한 동물성 사료 대책을 내놓은 사실을 한국에 처음 알렸다. 최근에는 한-EU FTA 협정문 번역 오류를 최초로 발견해 또다시 이름을 날렸다. 대담이 이뤄졌던 3일은 마침 한-EU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화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이날 대담에도 FTA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나왔다. FTA 이후의 정치 지형이라는 화두가 나오자 그의 '착한' 말 속에도 날카로움이 묻어 나왔다. 송 변호사는 야당들이 서로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내가 이 영역에서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미안하지만 너는 없어져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겨냥한 말이다. 다음은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왼쪽부터 송기호 변호사와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농민에게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보자"

김민웅 : 송기호 변호사는 <맛있는 식품법 혁명>(김영사 펴냄)과 <곱창을 위한 변론>(프레시안북 펴냄) 등의 책을 펴냈다. 식품법이나 곱창처럼 먹는 얘기를 주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송기호 : 나는 주로 농업 분야에 관심이 많다. 농촌을 떠나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 농업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농업과 접촉할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사회는 농민들에게 "왜 그렇게 옛날 방식으로 농사짓고 사느냐"라고만 했다. 농민에게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도시에 사는 우리는 과연 우리 농업의 조건에 맞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식품이 도시와 농업의 중요한 연결고리이므로 자연스레 식품 분야에도 관심이 갔다.

김민웅 : 사람들은 어느 식당이 음식을 잘하는지, 뭘 먹어야 좋은지는 많이들 생각하지만 식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맛있는 걸 만들지 말라는 식품법은 없다. 식품법은 건강한 식품을 만들라고 할 텐데, 한국에서 식품법의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송기호 : 우리 농업은 미국이나 호주의 농업과는 다르다. 우리만의 농업과 자연환경이 있다. 농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우리 농업과 가까운 식품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식품법은 농업과 우리의 밥상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다룬다. 하지만 한국의 식품법은 우리 농업을 멀리하고 농민의 역할을 줄이는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

김민웅 : 식품법이 농업을 질식시킨다고 했다. 맛있는 걸 먹으려면 요리를 잘해야 한다. 법을 바꾼다고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까?

송기호 : 책 제목을 '맛있는 식품법 혁명'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다. 우리 농민과 밥상을 연결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맛있어야 한다. 학교 급식에서도 친환경 식재료로 바뀐다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더 맛있게, 제대로 먹을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식품법의 변화를 맛있는 혁명으로 불러봤다.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 지금은 조용해진 이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전자 조작 식품 표기가 논란이 됐다. 식품 회사는 유전자를 조작한 재료를 썼다고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유전자 조작 식품은 엄청 쏟아졌고, 반대로 한국 농업 시장은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유전자 조작식품이 나오면 값싸게 많이 먹을 수 있으므로 식량 위기가 사라진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유전자 조작 식품 문제, 어떻게 봐야 하나?

송기호 : 유전자 조작 식품이 나온 맥락을 봐야 한다. 아까 우리 농업은 호주나 미국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은 미국처럼 대규모로 경작하면서 농약을 많이 투입해야 하는 나라에서 주로 쓴다. 농약에 저항성이 적은 작물을 개발하기 위해 나온 게 유전자 조작 작물이다. 반면에 한국의 농업은 주로 소농 형식이다. 농민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지혜나 노동력으로 논밭을 경작한다. 이런 방식에서는 특별히 유전자 조작 작물이 필요 없다. 식품 체계에 유전자 조작 식품이 더 많이 침투한다면, 우리 농업의 독자적인 의미가 사라질 것이다. 우리 농업이 좀 더 제대로 되는 데 유전자 조작은 필요 없다.

농민에게 변하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최근 소비자단체에서 요구하듯이 최소한 유전자 조작 식품 표시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식품 정보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생활협동조합과 농민단체와 같이 하고 있다.

김민웅 : 곱창을 변론한다고 했다. 곱창의 무엇을 변론했나?

송기호 : 우리 동네에 곱창집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1만 원어치를 사서 식구들과 같이 먹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미국산 쇠고기 검역 문제 때문에 곱창 부위가 민감한 부위가 됐다. 이 곱창이 한국산일지 아닐지 걱정거리가 생기고, 두려움 없이 오붓하게 1만 원으로 누렸던 작은 기쁨마저 사라지더라. 이래선 안 되겠다. 곱창으로 누렸던 내 행복을 찾아보자. 그래서 주제를 '우리' 곱창을 위한 변론으로 잡았다.

"FTA는 특정 산업의 문제이기 전에 민주주의의 문제"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 사실 송기호 변호사 하면 주로 FTA 얘기를 많이들 한다. 최근에도 FTA 관련된 소식이 하나 있었다.

송기호 : 지금 국회에서 강기갑, 이정희, 조승수 의원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한-EU FTA 합의에 반대해 농성하고 있다. (대담이 이뤄진 날은 한-EU FTA가 통과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편집자>) 나도 이 토론회를 마치자마자 그곳에 방문할 생각이다. 2일에 이뤄진 합의는 너무 의외였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왔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어려울수록 끝까지 정도를 걸어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김민웅 : 한미 FTA, 한-EU FTA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FTA가 왜 문제인가?

송기호 : 특정 품목이나 특정 산업의 문제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한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질서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조정을 같이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미 FTA, 한-EU FTA는 사회적 약자, 농민, 중소 상인들이 만들려고 하는 공동체적인 입법 질서를 가로막는다. FTA는 이미 잘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옹호하는 법적인 장치다. 그러한 장치가 국제법적으로 관철되므로 많이 걱정된다.

"'신입사원' 심사위원들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그만큼 했나?"

김민웅 : 이번엔 선거 얘기를 해보자. 재·보선에서 야권이 이겼다. 한쪽에선 기뻐하고 한쪽에선 걱정한다. 송기호 변호사는 이번 재·보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송기호 : 이번 선거 결과에 만족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제대로 가다듬고 한 걸음 내딛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 상당히 중요한 국면이다. 재·보선 이후에 무언가 변화는 있었다. 문제는 그 변화가 과연 누구를 위해 어떤 내용을 갖는 변화일지의 여부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할지라도 농민, 중소 상인, 청년,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서초동에서 조그만 법률사무소를 운영했다. 삼성과 같은 큰 회사는 내게 사건을 주지 않아서 주로 중산층 변호를 맡았다. 그런데 10년 전에 내게 사건을 맡겼던 중산층 중에 지금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 옛날에 많은 사람을 묶어줬던 틀은 이미 넘어지고 깨졌다.

기존 체제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요즘 <나는 가수다>보다는 <신입사원>에 더 눈길이 간다. 아나운서가 아무리 화려한 자리라지만 젊은 청년들이 신입사원이 되기 위해 모든 걸 다 잘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걸 채점하는 심사위원들은 과연 신입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 그런 고생을 했을까? <신입사원>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놓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결국은 중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 국회에 대여섯 분이 앉아서 한-EU FTA에 반대해 농성하고 있는데 이런 국회의원이 앞으로는 적어도 30~40명은 있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큰 틀을 바꾸긴 어렵겠지만, 자신감을 갖고 한 걸음 내디뎌 (여당이) 최소한 우리를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성과는 내야 한다.

김민웅 : <신입사원> 얘기를 적절하게 했다. <신입사원>은 우리 사회에서 경쟁이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제기한다. <나는 가수다>나 <위대한 탄생>, <신입사원>에서는 경쟁 논리가 극대화된 탓에 출연자에게 굉장히 잔혹한 시스템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심사위원들은 신입사원 때 저렇게 했나?', '자기가 심사 대상이 됐을 때도 저만큼 할 수 있나?' 싶더라. 경쟁을 피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경쟁을 뛰어넘는 대안이 중요하다.

ⓒ프레시안(최형락)

소수당은 문 닫고 따라와라?…"그런 옛날 논리는 안 먹힌다!"

김민웅 : 송 변호사는 우리의 '연대'가 중요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힘을 모아서 도대체 어떤 가치와 정책을 만들어야 할까. 요즘은 주로 '복지'가 떠오르고 있다. 송 변호사가 생각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정리해봤으면 좋겠다.

송기호 : 앞으로는 어떻게 손잡고 한 걸음 내디딜 것인가가 중요하다. 노동이나 복지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배려'라는 개념이 훨씬 더 의미 있다고 본다.

민주당은 한나라당한테 법안을 강행 처리하지 말고 소수당 의견도 존중하라고 주장하면서 자기보다 소수당에는 민주당을 따라오라고 한다. 민주노동당은 어떤가? 민주노동당은 자기보다 힘이 떨어지는 진보신당에 문 닫고 민주노동당에 들어오라고 한다. 진보신당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서 내딛어야 할 데가 있는데, 어떻게 서로 손잡을 것인가? 서로에 대해 진정한 배려를 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비록 정권은 못 잡지만 제1야당은 민주당이야." 민주노동당은 이렇다. "내가 제1야당은 못되지만 진보는 우리 거야." 이런 식은 안 된다. 서로를 배려하는 데 성공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단지 도덕적인 차원에서 '배려'하라는 게 아니다. 서로 손을 잡으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이번에 강기갑, 이정희, 조승수 의원을 만나면 패권주의적으로 통합하려고 하면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정말 좋은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은 이렇게 말한다. 민주노동당과 힘을 합해야 그나마 민주당에 맞설 수 있으므로 진보신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그런 옛날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진보신당 내에서 민주노동당과 같은 길로 못 가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분들은 그런 분들대로 원칙에 충실하게 가는 게 맞다. 반대로 진보신당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 민주노동당과 합당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에 들어가면 된다.

즉, "내가 이 영역에서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미안하지만 너는 없어져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민주노동당의 시각과 민주당이 민주노동당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바 없다. 진정한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중요한 때다. 진정성을 가지고 대중 앞에 선택을 요구해야 한다.

"없는 사람끼리 배려하고 살아야죠"

대담이 끝난 후에도 송기호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요즘 고민을 많이 하는 사건이 있다"고 운을 뗀 그는 4대강 사업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을 변호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청중은 그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송 변호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중의 질문이 나왔다. 청중은 그가 강조한 '배려'라는 화두에 의문을 던졌다. 그는 답변하는 동안에도 끝까지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송기호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가 하는 일이 거대 자본이나 거대 국가로부터 밀려나는 사람들의 변호를 맡는 일이다. 요즘 고민을 많이 하는 사건이 있다. 농사를 열심히 지은 분이 있다. 장애가 있어서 그가 사무실에 오면 서로 고함을 질러서 대화해야 한다. 그는 좋은 부인을 만나서 아이도 낳고 농사도 지으며 가정을 이뤘다.

그런데 그가 4대강 사업 때문에 농사를 못 짓게 됐다. 형식적으로 법은 그가 정상적으로 농사지었을 때 생기는 2년치 비용을 보상하도록 규정한다. 그런데 만약 제대로 보상하면 4대강 사업이 불가능하다.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보상조차 안 하고 4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억울한 사정을 법원에서라도 구제해달라고 그가 나를 찾아왔다.

어렵겠지만 시도해보기로 했다. 대전 법원에 소장을 냈다. 판사가 감정했는데 역시 그가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감정대로라면 고작 400만 원밖에 더 못 받는다. 하지만 그는 넓은 땅에서 경작하기 때문에 거의 1억 원 가까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공짜로 일하지는 않아서 4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실비를 받았다. 토요일에 그에게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소송을 더해봤자 400만 원밖에 못 받으니 그냥 포기하면 받은 수임료를 돌려 드리겠다고 했다. 그는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판사에게 가서 자신이 이 논을 얼마나 옥토로 가꿔왔는지 직접 얘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법원은 그리 친절하지 않다.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큰 자본이나 국가로부터 밀려나는 분들이다. 나는 배포 있게 큰일을 잘 생각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말 새로운 변화가 눈앞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변화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 마음의 지혜와 힘을 잘 모아야겠다고 고민한다.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고 서로 힘이 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청중 : 송기호 변호사는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배려'라는 단어에는 권력 관계가 숨어있다. 권력과 자본만이 권력과 자본에서 밀려난 사람을 배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테면 여성을 배려해야 한다는 말은 남성 지배적인 권력 구조를 인정하는 꼴 아닌가?

송기호 : 어린 시절 얘기를 해보겠다. 과거 농촌에 사는 농민들은 권력이나 부는 없었지만, 자기 집을 찾아오는 분에게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했다. 나도 '배려'라는 말이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시혜적으로 주는 것이라면 동의하지 않는다.

1967년에 한국이 GATT(관세 장벽과 수출입 제한을 제거하기 위해 1947년 제네바에서 미국을 비롯한 23개국이 조인한 국제적인 무역협정. <편집자>)에 가입하면서 세계 경제 질서에 편입됐다. 이후 40년 동안 공동체 문화, 즉 함께 하는 문화가 훼손됐다. 이러한 훼손이 용인된 데는 물론 강자의 폭력과 자본의 힘도 작용했다. 하지만 숫자로 따지면 밀려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형식적으로는 투표라는 절차가 있었다.

근본적인 변화를 낼 수 있는 동력이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소수 엘리트, 지식을 가진 사람이 다수의 모르는 사람을 깨우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다. 새로운 힘을 만드는 동력은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배려하는 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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