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웨이 씨는 지난 2008년 10월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기 위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직업소개소는 "한국의 조선 기술을 가르쳐주면서 한국인과 같은 임금을 주겠다"며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대우조선해양의 중국 자회사에 정직원으로 채용되게끔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장웨이 씨를 비롯한 중국인과 루마니아인 355명은 직업소개소에 300~400만 원을 소개비로 지급했다. 이들은 입국 비용과 '이탈방지 보증금' 1000~1600만 원도 직접 마련해야 했다고 한다. 목돈을 구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친척들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지만, 장웨이 씨는 취업 후 조금씩 갚아나가리라는 생각에 한국행을 결심했다.
하루 10~12시간 노동, 월급 60만 원 중 20만 원 강제 적금
막상 한국에 취업해서 겪은 현실은 직업소개소의 설명과 너무나도 달랐다. 장웨이 씨를 비롯한 산업연수생들은 하루에 10시간에서 12시간씩 단순 노동을 반복했다. 그렇게 일하고 이들이 손에 쥔 돈은 한 달에 50~60여 만 원.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으면 그마저도 받을 수 없었다. 회사가 1시간당 초과수당으로 지급한 돈 1000원은 법정 최저 야간수당인 6480원보다 턱없이 낮았다. 하지만 회사는 산업연수생이 받은 임금 중 15~20만 원을 강제로 적금하게끔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업무시간 외에도 회사에 몸이 묶였다. 대우조선해양은 장웨이 씨의 여가시간과 외출을 통제했고 여권을 비롯한 신분증을 압류했다. 그는 뒤늦게 자신이 '직원'이 아니라 '외국인 산업연수생'으로 고용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현대판 노예 제도의 다른 이름"이었다.
2009년이 되자 본국으로 돌아간 동료들에게서 흉흉한 이야기가 들렸다. 중국에서도 대우조선해양 자회사에 취업시켜준다는 약속이 말뿐이었다는 것이다. 산업연수생을 마치고 중국에 취업해 남아있는 동료가 10여 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자 장 씨는 연수지 이탈을 결심했다.
대우조선해양, 이탈한 산업연수생 통장 불법 정지
장 씨가 연수지를 이탈하자 대우조선해양은 즉각 그의 통장을 지급 정지해달라고 국민은행에 요청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의 '돈줄'을 막아 이탈한 노동자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계좌해지‧지급정지‧불법 관리 당한 산업연수생은 355명에 달한다.
장웨이 씨를 비롯한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은 김해이주민인권센터에 고통을 호소했다. 김해이주민인권센터는 미지급임금을 지급하라며 지난해 3월 대우조선해양을 고발했고, 검찰은 지난 16일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약식 기소했다.
노동부와 검찰은 "외국인 산업연수생 359명의 미지급임금은 15억2000여만 원이며, 임금의 일부를 강제로 적립한 피해자 26명이 돌려받지 못한 금액은 2500여만 원"이라고 밝혔다. 김해이주민센터 김형진 대표는 "이탈자뿐만 아니라 본국으로 돌아간 노동자들도 적게는 300만 원에서 많게는 700만 원까지 체불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해이주민센터와 산업연수생 류시앙(가명)ㆍ장웨이 씨는 24일 김해시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같은 사례를 증언했다. 이들은 △중국인 해외투자기업 산업연수생에 대한 미지급임금 즉시 지급 △노동부와 검찰, 금융감독원 적극적 조사 △노동력 착취수단으로 활용되는 해외투자기업 산업연수생제도 폐지 등을 촉구했다.
"대우조선, 체불임금 횡령한 혐의 벗을 수 없다"
김형진 김해이주민인권센터 대표는 이날 "산업연수생들의 월급의 일부를 강제로 예금하게끔 하고, 이탈 위반을 우려해 보증금 1000만 원 등을 받은 것은 위법적인 계약"이라며 "국민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이 요구한대로 이탈한 산업연수생의 예금 지급을 정지하고, 본인동의 없이 예금을 일괄적으로 인출한 것 또한 재산권 침해로 현행법상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대우조선 측은 본국으로 돌아간 연수생들에게 강제적금 및 미지급임금을 모두 지급했다고 주장했지만, 귀국한 연수생들에게 확인한 결과 일부분만 지급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대우조선해양은 나머지 돈을 횡령한 혐의를 벗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김해이주민센터에 체불임금, 강제적립금 미지급 등을 호소한 산업연수생만 100여 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중국에 귀국한 산업연수생들에게 임금을 지급했으며, 이탈방지 보증금 1000만 원은 받은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다만 국내에 미등록으로 체류 중인 피해자들에 한해서는 연락이 되질 않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지금이라도 직접 찾아와서 달라고 하면 언제든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불법 계좌 정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씀 못 드리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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