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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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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무줄

[한윤수의 '오랑캐꽃']<291>

빤스가 흘러내려 수선집에 갔다.
주인이 빤스에 검은 고무줄을 넣어주며,
큰 인심 쓰듯,
"원래 목사나 부목사는 검은 고무줄 안 넣어줘요."
한다.
"그럼 왜 나만 넣어줘요?"
물으니,
주인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돈이 없으니까!"
하는 순간,
꿈을 깼다.
어째 조짐이 안 좋다.

인도네시아 노동자 리즈키가 딸을 낳았다.
경사다.
하지만 남편 유스는 출근해야 하니 산구완 해줄 사람이 없다. 궁리 끝에 친정 엄마를 한국으로 불렀다.
친정 엄마가 올 때 부속품처럼 식구들이 딸려왔다. 그녀의 남편과 아홉 살짜리 막내아들. 마치 고구마 줄거리를 잡아당기니 크고 작은 고구마들이 줄줄이 따라 나오는 것 같다.

친정 식구가 총 출동하니 리즈키는 든든하지만 또 한편으론 미안하다.
식구들에게 한국에 온 기념으로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나한테 부탁 전화를 한 것이다.
"목사님, 화성에서 볼 만한 게 있을까요?"
"글쎄?"
"있으면 좀 보여주실 수 있죠?"
"있지."

뭐가 없을까?
생각해보니 있다.
화성 시에서 세운 '우리 꽃 식물원'
괜찮을 것 같다.
무엇보다 돈이 안 드니까.

*인도네시아 사람 넷을 데리고 식물원에 도착하니 웬 걸? 매표소 앞에 건장한 공무원들이 늘어서서 돈을 받는다. 공짜가 아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어제부터 요금을 받는단다. 대인 3천원, 소인 2천원. 단 화성 시민은 천원.
내가 얼버무려
"화성 시민인데요."
하자, 나이든 공무원이 큰 인심 쓰듯
"그럼 모두 합쳐 4천원만 내세요."
한다.
젊은 공무원이 항의하듯
"아니, 외국인도 깎아줘요?"
하니, 나이든 공무원이 눈을 찌긋하며 말했다.
"돈이 없잖아!"

스타일 구긴 하루였다.
▲ 리즈키 가족-식물원 ⓒ한윤수

*인도네시아 사람 넷 : 리즈키의 친정 식구 셋과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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