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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기습 해고'…"처자식 얼굴 어떻게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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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기습 해고'…"처자식 얼굴 어떻게 보라고"

홍익대, 청소· 경비직 노동자 170명 해고

홍익대학교에서 경비로 일하는 이정환(가명‧57) 씨는 지난 2일 여느 때처럼 새벽에 출근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홍익대 교직원이 경비실로 직접 나와 '경비 업무 인수인계증'에 서명을 강요하더니 나가라고 했다. 경비실 열쇠를 빼앗긴 채 얼떨결에 쫓겨난 이 씨는 한 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려니 처자식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해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홍익대학은 지난 2일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청소‧경비 노동자 170여 명을 집단으로 해고했다. 대신 대학 내 근로장학생, 교직원, 조교 등을 경비직 대체 인력으로 투입한 상태다. 경비·보안업무를 아르바이트 재학생에게 맡긴 것이다.

▲ 3일 홍익대학교 청소·경비 해고노동자 140여 명이 총장실 앞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새해 첫 출근날 170명 해고가 홍익 정신인가"

청소‧경비 노동자 140여 명은 새해 첫 월요일인 3일 학교 총장실 앞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이들은 "우리는 일도 못하게 해놓고 어떻게 학생과 교직원에게 대체 근무를 시킬 수 있느냐"며 "하루아침에 170명을 해고하는 게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대학교 건학이념에 맞느냐"고 따져 물었다. 노동자들은 "총장이 직접 나서서 해명하라"고 요구했지만, 총장은 이날 오후 교직원들의 호위 속에서 구급차를 불러 총장실을 빠져나가려다 결국 실패했다.

홍익대학교 내 청소‧경비 용역업체의 계약 만료일은 지난 12월 31일. 학교는 막판까지 재계약 협상을 벌이던 용역업체에 "계약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학교가 내건 조건은 지난해와 같은 용역 단가로 3개월만 계약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역업체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용역단가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일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최저임금을 지켜 달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홍익대학교 노동자들이 받은 임금은 청소직 75만 원, 경비직 95만 원이었다. (☞관련 기사 : "하루 밥값 300원…'아줌마들 팔아 평생 거지같이 살라' 막말까지")

결국 용역업체는 재계약을 포기했고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해고자 중에는 홍익대에서만 10년 넘게 일해 온 사람도 여럿 있었다. 이들은 "그동안 최저임금도 못 받고 열심히 일만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억울해 했다.

경비직, 홍익학원 사립학교 건설 철거 사업에 동원되기도

총장실을 사이에 두고 노동자와 학교가 대치하는 동안 '학교의 횡포'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이정환 씨는 "경비 일뿐만 아니라 그동안 교직원 집기 운반, 잡풀 뽑기, 하수구 치우기 등 다른 업무에도 수시로 잡부처럼 동원됐었다"며 "심지어는 학교에 고용된 정규직 목수가 비정규직 경비들에게 나무 운반을 시키고 자기들은 못질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 중 가장 압권은 홍익대학교가 부설 초·중·고등학교를 서울 마포구 성미산으로 옮기려는 과정에서 경비노동자들을 철거 작업에 동원한 일이었다. 경비노동자들은 "경비가 경비노릇을 해야지 지역주민들이 반대하는 철거 작업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용역업체의 횡포에 대한 호소도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현장소장은 우리가 해고 대상이라고 늘 엄포를 놓았다"며 "소장은 홍대의 황제"라고 말했다. '일하다 다치면 산재 처리는커녕 휴가도 주지 않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힘든 곳으로 인사이동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한 노동자는 얼마 전 모친상을 당해 장례를 치르다 이틀을 '무단결근' 처리를 받아야만 했다. 이 씨는 "아프다고 말했다가 소장에게 잘린 동료도 꽤 된다"고 말했다.

이 씨는 "경비직 중에는 대학 출신도 있고 젊어서 사업하다가 실패해서 여기까지 온 사람도 있다"며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이렇게까지 밑바닥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은 방송 매체에서나 접했는데 실제 겪어보니 피눈물이 날 지경"이라며 "노조에 가입하는 게 마음속 숙원 사업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조를 만들고 한 달도 채 못 돼 해고된 노동자 170명이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총장실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학교 본부 앞에는 총장 대신 교직원이 나와 "법대로 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노동자가 "우리가 노조 만들었다고 자르면 교직원들은 노조 왜 만들었나,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라고 외쳤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동자들은 박수를 쳤지만, 교직원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홍익대, 성미산, 그리고 청소·경비 노동자

지난 2008년부터 홍익대에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학교법인 홍익학원이 지역 주민의 반발을 무릅쓰고 사립 초·중·고등학교 부지를 서울 마포구 성미산으로 이전하려고 시도하면서다. (☞관련 기사 : 당신 자녀 학교 담장 너머 사립학교가 들어선다면?)

성미산 주민들은 "마포구에 하나뿐인 자연숲인 성미산이 파괴되는 데다, 인근 학교 아이들의 통학 안전권과 교육권이 위협될 우려가 있다"며 학교 건설에 적극 반대해 왔다. 이 과정에서 용역업체 직원의 전기톱에 지역 주민이 아킬레스건을 다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방치된' 성미산 갈등, 결국 '전기톱 상해 사건'으로)

홍익학원의 학교 설립에 대한 지역 반발이 고조되자, 홍익학원은 재단 소속 초·중·고등학생에게 학교 이전 찬성 서명을 강요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에는 마포구에 사는 홍익대학 내 청소‧경비 노동자들에게 '홍대부속 초‧중‧고의 성미산 이전을 적극 찬성한다'는 내용의 서명을 강제로 받아냈다.

홍익대학교는 지역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조직적인 '찬성 여론' 동원에 나섰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청소노동자 진명희 (가명‧63) 씨는 "학교가 우리를 이용할 대로 이용해 먹고 이렇게 자를 줄 알았으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도 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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