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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만 바꾼' 청소 용역업체, 이유를 알고보니…"

동국대 청소노동자 무기한 본관 점거 돌입

29일. 방학을 맞아 한산한 동국대학교에 청소노동자 80여 명이 모였다. 한 노동자가 든 팻말에는 "우리를 해고하지 마라. 어떠한 경우라도 동국대서 일하고 싶다. 꼭 일을 해야 한다. 부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른 노동자가 든 팻말에는 "죽어도 학교에서 죽고 살아도 동국대에서 산다"라는 문구도 보였다.

이날 청소노동자들은 사설경비의 제지를 제치고 학교 본관 로비에 눌러 앉아 무기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고용 승계 약속을 받아내기 전까지는 물러나지 않을 태세였다. 갑작스런 점거 농성에 교직원 10여 명이 달려왔고, 한 교직원이 노동자에게 야유를 보내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고용승계, 최저임금 보장, 주 5일제를 요구하며 29일부터 무기한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아직 건강한데 나이 먹었다고 나가라니…."

동국대에서 일한지 10년이 넘었다는 조영란(가명·72) 씨는 본관을 점거하는 이유를 묻자 "우리도 살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용역회사가 우리한테 학교 말을 전하는 거야. '학교가 그러는데 65세 넘은 사람 나가라고 한다' 이거지. 나이 먹었다고 나가라니. 나이 먹어도 건강하면 일할 수 있잖아. 정부는 만날 일자리 창출 얘기 하는데 자르면 안 되지. 있던 사람은 그냥 여기서 일하게 해줘야지."

조 씨는 "이전까지는 나이 든 사람이나 사측의 눈 밖에 난 사람은 해고되기가 부지기수였다"고 설명했다. 동국대학교에서 3년째 외곽 청소를 맡고 있는 최기준(65) 씨도 "나이 들면 자른다, 잘못하면 무조건 자른다, 노조 만들면 자른다"는 말을 계속 들었다고 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은 지난 10월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얼마 후 동국대학교 내 미화원 소장실 문 앞에는 '65세 이하 고졸'인 청소노동자를 뽑는다는 구인 광고가 붙었다. 조합원 99명 중 절반에 가까운 40여 명이 해고 대상자에 오른 셈이다.

노동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최 씨는 "처음 고용될 때만해도 용역업체 측이 75세 넘어서까지 일하게 해주겠다고 장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 측이 이례적으로 용역업체를 1년 만에 갈아치우면서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고용승계 피하기 위해 '간판만 바꾼' 용역업체"

노조 측은 "동국대학교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를 '합법적'으로 해고하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용역 업체를 바꾸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업체가 바뀌면 새 업체에는 이들의 고용을 승계할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박문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법규국장은 "새로 바뀐 업체가 기존 용역업체에서 '간판'만 바꿔 달았다"고 말했다. 동국대가 기존에 계약한 청소용역업체의 이름은 '시큐어넷'이고, 내년에 들어올 새 용역업체는 '센추리온21'이다. 그런데 센추리온21의 사내이사는 씨큐어넷의 대표이사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센추리온21의 사무실이 씨큐어넷이 소유한 건물에 들어서면서 의혹은 더 커졌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노동자들은 "여기서 쫓겨나면 다른 곳에 취직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가 기초생활수급자를 상대로 실시하는 '공공근로'도 젊은 사람들의 몫일 뿐, 나이 든 사람들은 그마저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 씨는 "노인이라고 학대 받았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일만 해왔다"며 "몸 성할 때까지 일하게 해준다던 약속은 어디로 갔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 달 임금 82만 원인데 손자들의 등록금이 매년 5~10%씩 오른다"며 "한 푼이라도 벌어서 손자한테 용돈이라도 쥐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10년 동안 지각 한번 하지 않고 동국대에서 열심히 일만 해왔다는 이소춘(70) 씨는 "남편이 젊은 시절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며 "남편의 사고 이후 지금까지 혼자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왔는데, 이 일마저 못하면 살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며 "양심껏 일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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