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한 청소노동자는 "남편은 병중에 있고 자식이 있어도 무직이어서 제가 벌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하다"며 "여기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망을 담았다. 자신을 69세라고 밝힌 또 다른 노동자는 "오죽하면 이 나이에 이런 일을 하고 있겠느냐"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만 일하게 해달라"고 적었다.
▲본관 앞에 항의 방문하는 청소노동자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시설관리분회 |
동국대학교는 지난달 30일 계약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청소 용역업체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학내 청소노동자들은 소속 업체가 바뀌면서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졌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노동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1인 시위를 비롯한 선전 활동을 벌여왔다. 그중에는 "이 나이에는 다른 청소 업체에 취직할 수도 없다"며 "해고돼 굶어 죽느니 차라리 학교에서 죽겠다"는 노동자도 있었다.
그러나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고용 승계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자 담당 교직원은 "원청과 하청 노동자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더 할 말이 없으니 나가 달라"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학교가 청소 용역업체를 바꾸는 일이 동국대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고려대, 연세대, 홍익대 등도 연말이 되자 일제히 용역업체를 바꾸겠다고 했다. 이들 학교의 공통점은 전부 학내에 비정규직 청소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 측은 "계약이 끝남에 따라 통상적으로 계약을 해지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눈치다. 노조를 탄압하거나 정년을 단축해 노동자들을 해고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동국대에서 11년째 일하는 조정화(64) 씨는 "지금까지 학교에 한번 용역업체가 들어오면 2~3년은 계약했다"며 "이렇게 이례적으로 1년 만에 업체를 갈아치우는 이유는 학교가 해당 업체를 노조 못 막은 죄로 내쫓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근무 중에 냉커피 마신다고 폭언 듣고, 팔 부러졌다고 잘리고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기본급은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쳤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불만 없이 일 해왔다. 이들이 일한 지 10년이 넘어서야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린 이유가 올해 새로 부임한 청소담당 교직원의 횡포 때문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우리가 조금만 잘못하면 자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청소 잘 못 하면 자른다, 다른 건물 돌아다니면 자른다, 걸핏하면 자른다고 하니 불안해서 일할 수가 없었어요. 한 동료는 일하다 팔이 부러져서 두 달 쉬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그 교직원한테 잘렸어요. 그 동료가 아무리 통 사정해도 안 되니까 울고 나가더라고요."
조 씨는 자신도 "여름에 청소하다 너무 더워서 잠시 냉커피를 타 마셨다가 폭언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른 증언도 있다. "해당 교직원이 뾰족한 물체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모욕적으로 '허리 사이즈가 몇이냐'고 묻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학교 안에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자 노동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주일 만에 동국대 청소노동자 117명 중에 90여 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학생들의 지지도 이어졌다.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주5일제, 근로기준법 및 최저임금 준수를 요구하며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5일 동안 진행된 서명운동에는 동국대학생 1만2000~1만3000여 명 중에 9362명이 참여했다. 박문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법규국장은 "2008년 등록금인상반대 서명운동이 2주 동안 5000여 명이 참여했었다"며 "5일 만에 그렇게 많은 학생이 서명에 동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시설관리분회 |
노조는 청소담당 교직원이 청소노동자의 조장 수당을 착복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교직원은 지난 9월 "조장 수당은 필요 없다"며 용역업체에 연락해 여성 조장 4명분의 수당 20만 원을 남성 반장의 급여 통장에 지급하게 했다는 것이다. 남성 반장들은 다시 교직원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계좌로 초과 입금된 여성 조장 수당 20만 원 중 15만 원을 현금으로 그 교직원에게 가져다주었다는 주장이다.
남자 반장들은 "자신이 직접 돈을 뽑아서 해당 교직원에게 냈다"고 증언했다. 노조 측은 "해당 교직원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순순히 착복을 인정했으며, '다른 남자 반장들과 개 한 마리를 잡아먹었을 뿐 사적으로 수당을 유용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었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 사건을 두고 "원청인 학교 직원이라는 권세를 이용해 힘없는 청소 미화 노동자를 착복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 노동자는 "자기들은 우리보다 몇 백만 원이나 더 받는데 그 작은 돈을 빼앗아먹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벼룩의 간을 빼먹지…"라고 혀를 찼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학교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 학교 측은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해당 교직원 역시 청소노동자들이 거짓말을 한다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노조는 정황상 근거를 살피면 노동자들의 주장에는 더욱 신빙성이 더해진다고 반박했다. 용역업체는 12월에 와서야 지난 9월부터 사라진 여성 조장 수당 10, 11월 치를 다시 지급했다. 노조는 "용역업체 측은 원청인 학교와의 계약상 어느 노동자에게 수당을 줄지는 정할 수 있지만, 얼마를 줄지는 정하지 못 한다"며 "만약 학교 교직원의 요청에 따라 용역업체가 남자 반장 수당을 늘렸다면 계약 위반이 된다"고 밝혔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용역업체가 교직원의 지시에 따라 9월부터 여성조장의 수당을 없앴다가 12월에서야 뒤늦게 10월 치 조장 수당을 다시 지급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노조는 "방학 때는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 일이 없는데도, 해당 청소관리 교직원이 잔업이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 노동자들이 회사에 초과 수당을 신청하도록 하고, 이 금액을 현금으로 가져오도록 지시했다"고도 주장했다.
'고령,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삼중 굴레
용역업체 소장이나 원청인 학교의 중간관리자의 착복은 다른 사업장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장성기 공공노동조합 서울경인지부 부지부장은 "어느 사업장에서 용역업체 현장소장이 등산화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노동자들이 없는 돈을 모아 5만 원짜리 등산화를 사다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소장이 이런 싸구려는 못 신겠다고 돌려보내자 노동자들이 다시 돈을 모아 비싼 등산화를 사다 낸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용역업체 소장이나 교직원의 폭언, 성희롱적 발언, 착복 등은 '악덕한 개인의 편견'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그 이면에는 '고령,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삼중 굴레가 있다는 것이다.
유안나 공공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은 "성별화된 직업군인 청소노동이 여성의 노동을 부차화시킨다"며 "이러한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에게는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이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또한 "청소노동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노동임에도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간접 고용된 용역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학교-용역회사-노동자의 고용구조에서 원청인 학교는 임금과 고용을 결정짓는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국대학교는 전체 학생들에게 공문을 보내 "청소용역의 급여, 후생복지 및 고용승계 등의 문제는 대학이 아닌 용역업체가 책임질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노동자들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학교는 노동조합이 설립된 지난 10월 29일 이후 인원배치가 필요한 건물에 인원을 보충하지 않고 있다. 회사의 현장소장은 "노동조합이 만들어져서 인원 보충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학교에서 계속 한다"고 말해 노동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여기서 쫓겨나면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이다. 그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한 노동자가 학교에 바라는 바를 적은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이 먹것섰니 해고하지 맛세요."
▲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손수 적은 종이가 학내에 걸려 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시설관리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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