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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법 시행 앞두고 상인들 철시, 왜?

재래시장 상인 200여 명, 롯데마트 입점 반대 철시 단행

16일 서울 강북구 삼양시장은 한산했다. 장사꾼들의 물건 파는 소리도 뚝 그쳤다. 대신 삼양시장오거리 롯데마트 입점 예정지 앞에는 재래시장 상인과 인근 마트 상인 200여 명이 모여들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든 와중에 장사도 그만둔 채였다.

"피켓 있는 사람은 피켓 들고 없는 사람은 오른손 주먹을 꽉 들어서 올려주세요."
"못 막으면 다 죽는다. 롯데마트 막아내자"

허리에 전대를 두른 좌판 할머니가 어설프게 팔뚝질을 했다. 수유시장에서 29년째 그릇가게를 차려온 임래수 씨(61)는 "예전에는 텔레비전에서 데모하는 장면이 나오면 왜 하나 싶었는데 막상 절박한 상황이 오니 이해가 간다"며 피켓을 들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정부, SSM 규제 미루는 동안 대형마트 200곳 난립

상인들은 이날 '롯데마트 입점 저지를 위한 강북중소상인 총궐기 집회'를 열겠다며 한꺼번에 일일철시를 단행했다. 롯데마트가 재래시장 밀집지역에 입점을 시도하면서다.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를 지금껏 미루면서 대형 마트가 마지막 물타기를 시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SSM 규제법안인 유통법과 상생법의 동시 처리를 여야가 합의한 것은 지난 4월이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김종훈 통합교섭본부장이 "자유무역협정에서 마찰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해당 법안을 강력히 반대하자 합의는 깨졌다. 법제사법위원회가 7개월을 끄는 동안 전국에는 200여 SSM이 생겨났다. 들어설 곳은 이미 다 들어선 셈이다.

롯데마트의 삼양시장 입점 시도는 그동안 미뤄질대로 미뤄진 유통산업발전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대형마트가 마지막 진입을 시도한 사례다. 국회가 법을 통과시킨 후 대통령이 공포하기까지 남은 기간 15일을 이용해 교묘히 법망을 피해 간 것이다. 유통법이 시행되면 재래시장 근처 500m 안에는 대형마트가 들어서지 못하지만, 그전에 들어선 대형마트는 막을 길이 없다.

"리모델링 하는 척 현수막으로 가려놓더니"…상인들 속았다며 분통

롯데마트가 들어서게 된 경위는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양재래시장 안에 상가를 운영하던 삼양시장주식회사는 작년 1월부터 상가 재건축을 진행했다. 당시 삼양시장 상가에는 20여 개 영세 점포가 세 들어 있었다. 사측은 "리모델링 이후에 다시 불러주겠다"고 상인들을 구슬려 내보냈다.

주변 상인들은 "현수막으로 건물 외곽을 가려놔서 그 자리에 롯데마트가 들어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지난 10월 현수막이 걷히고 나니 상가 외관은 롯데마트의 상징물인 원형구조물로 바뀌어 있었다. 얼마 뒤 신문에는 롯데마트 삼양점으로 구인광고도 게재됐다.

주변 상인들은 1년 10개월 만에 삼양시장주식회사가 건물을 롯데마트에 넘기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가 재건축이 '재래시장 육성 특별법'에 의해 시행되었기에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상인들은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재건축 사업이 오히려 재래시장을 죽이는 사업으로 뒤바뀌었다"고 성토했다.

"이미 이마트에서 쫓겨났는데 물러설 곳 없다"

롯데마트 입점 예정지 바로 맞은편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정정원(54) 씨는 "겨우 숨만 쉬고 있는데 이마저도 빼앗아 간다"며 가슴을 쳤다. 정 씨는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2003년에 20년간 모아둔 돈 1억2000만 원을 털어 석계동에서 슈퍼마켓을 차렸다. 하지만 2년 뒤 바로 옆에 이마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권리금도 못 받고 장사를 그만둬야했다. 강 씨가 삼양시장으로 옮겨온 뒤 3년 만에 이번에는 롯데마트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손해를 입는 곳은 삼양시장뿐만이 아니다. 삼양시장오거리는 삼양시장, 수유시장, 동북시장 등 재래시장이 밀집한 지역이다. 롯데마트 입점 예정지는 동북시장과는 불과 500m, 수유시장과는 750m 떨어져 있다. 수유시장은 점포만 350여 개가 있는 대형재래시장이어서 파장은 더욱 클 전망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상인 박진효 씨는 "대형마트 하나가 재래시장 점포 630개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며 "롯데마트가 들어서면 (대형 재래시장인) 수유시장이 두 개 날아간다"고 말했다. 박 씨는 "재건축 건물이 롯데마트가 아니라는 주장은 오직 롯데마트만 한다"며 "이런 현실을 보고 가게에서 물건만 팔 수는 없다"며 상인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안영승 재래시장상인대표는 "정릉시장에는 대형마트가 들어서 매상이 반쯤 줄었다"며 "가게를 내놔도 안 나가니 상인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23년간 정릉시장에서 닭집을 했던 아주머니가 장사가 안돼 폐지를 줍고 다니더라"며 "정릉시장의 현실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재래시장 상인과 영세 마트 상인들이 '롯데마트'라고 적힌 천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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