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부자감세 철회와 공정사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부자감세 철회와 공정사회"

[이정전 칼럼] "'정의 열풍', 국민은 철학 있는 정부를 원한다"

옛날 희랍시대에는 정의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활발했었던 것 같다. 플라톤의 정의론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같은 것은 같게 대우하고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한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고마코스 윤리학>에 나오는 유명한 정의의 원칙이다. 시장의 원리를 신봉하는 시장주의자나 신자유주의자도 이 말을 자주 인용한다.

하지만, 이 원칙은 너무 막연하다. 과연 어떤 기준에 의거해서 같다든가 다르다는 것을 판정해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격(desert)'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의 원칙을 "자격이 같은 사람은 같게 대우하고 자격이 다른 사람은 다르게 대우한다"로 좀 더 구체화할 수 있다. 과장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는 과장자리를 주고 장관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장관의 자리를 주는 것이 정의의 원칙에 부합한다.

사실, '자격'이라는 말도 상당히 애매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이 보인다. 시장주의자도 자격을 얘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원칙을 들먹일 때 이들이 말하는 자격은 주로 생산에 기여한 정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기업의 돈벌이에 많이 기여한 사람에게는 두둑한 보수를 주고 적게 기여한 사람에게는 낮은 보수를 주는 것이 옳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장주의자는 이와 같이 각 개인의 소득이 기업의 돈벌이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정확하게 결정되며, 일단 분배된 소득의 사적 소유권을 확고하게 보장하는 사회가 곧 정의로운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하면, 자본주의 시장은 실제로 생산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각 개인에게 소득을 배분하는 제도적 장치다. 따라서 시장을 통해서 획득한 개인의 소득을 법적으로 확고하게 보장해준다면 자본주의 시장이야말로 정의로운 제도라고 시장주의자는 주장한다. 이와 같이 개인의 소유권을 신성시하는 시장주의자는 세금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도 세금은 필요악이라고 쓰여 있다. 명분이야 어떻든 조세는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세징수는 최소화되어야 하며, 강력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부자감세정책 철회에 대하여 시장주의자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명박 정부의 주변에 시장주의자가 대거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부자감세정책 철회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두상.
그러나 시장주의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의 원칙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자격은 돈벌이와 별 관계가 없다. 그는 목적 내지는 목적의식을 대단히 강조한 철학자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플루트가 있다고 하자. 이 플루트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 시장주의자는 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고 대뜸 대답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답은, 그 플루트를 가장 잘 연주하는 사람에게 준다는 것이다. 플루트의 목적은 그것을 잘 연주함으로써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에 앞서서 우선 각 개인의 삶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 사회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이며, 정치나 국가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개인의 삶의 궁극적 목적은 '좋은 삶(good life)'이며, 우리 사회의 궁극적 목적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좋은 삶'이란 하늘이 내린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잘 발휘하는 삶이다.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좋은 인관관계를 가지는 삶이 곧 좋은 삶이다. 도박이나 하고 경마나 투견을 보고 즐기는 행위는 바람직한 짓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리행위를 매우 경계하였다. 영리행위는 개인을 매우 탐욕스럽게 만들며 이기적 인간으로 만든다고 보았다. 영리행위를 추구하다 보면, 돈벌이에 정신이 빠져서 인간성을 상실하기 십상이요 따라서 좋은 삶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의의 원칙은 개인으로 하여금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단을 잘 나누어주는 것이며, 좋은 사회의 건설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서 대우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라고 말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 사이의 어울림, 시민의식, 공익정신 등이 좋은 사회의 건설에 필수 요소이며, 정부의 목적은 국민 각 개인에게 이런 것들을 고취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쉽게 말하면, 시민으로서의 훌륭한 자질과 미덕(virtue)을 함양하는 것이 정부의 주된 과업이라는 것이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면, 매우 시장주의적이었던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과는 대조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에 무척 동조하는 것 같다. 대통령 후보로 선거유세 때에 오바마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가 미국인에게 애국심과 자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국가를 위하여 봉사할 각오를 새롭게 다지게 만든, 아주 의미 있는 계기였음을 역설하였다.

그러면서 당시 부시 대통령이 이런 국민정서를 잘 살리지 못하였음을 질책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바로 그런 국민의 정서가 미국 사회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좋은 사회'의 건설을 위한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었다고 보았음에 틀림없다. 시장주의자들이 장악했던 부시 정부와 이를 둘러싼 사회지배계층은 미국인에게 봉사를 요구하지는 않고 그 대신 열심히 쇼핑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희생을 공유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그 대신 미국 역사상 최초로 부자들에게 감세혜택을 주었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정부를 맹비난 하였다. 부자감세 정책은 '좋은 사회'를 건설하려는 미국 국민의 열성에 찬물을 끼얹은 조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감세정책은 아리스토렐레스의 정의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정책이다.

얼마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부쩍 강조하고 나섰다. 그 때 여권 지도부도 잠자코 있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여권 지도부는 말로만 정의를 외치지 말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부자감세정책 철회가 그 첫 걸음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처럼 철학이 있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며, 우리나라 정치가들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부의 목적을 마음속에 새겨두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