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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원화'인가, '강한 원화'인가?…대토론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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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원화'인가, '강한 원화'인가?…대토론이 필요한 때"

[우석훈 칼럼] "경제 민주화 항목에 '환율'을 넣자"

2008년 금융위기가 벌어지면서 세계 경제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조금 정치적인 측면에서 19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로 세계 경제의 기조가 되었던 신자유주의 체계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는 주장들이 한 종류였다.

그리고 세계화 국면과 함께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다니는 금융자본에 이동에 대해서 일정한 규제를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토빈세를 비롯해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 방식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제시된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얘기들이 현실 논의의 장으로 온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러온 사건이었다. 절대로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을 것 같은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45년 전후 협상과정에서 기축 통화로 등장한 달러 체계가 계속될 것인가, 그런 마지막 논의가 있었다. 이 세 가지는 유사해 보이지만 반드시 하나의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는, 상대적으로는 독립된 세 가지의 논의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주장하였던 폴 크루그만은 정말 눈부셨다. 게다가 그는 오바마 정권의 제1의 개국공신과 같은 존재 아니었던가? 그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많은 중국인들은 그의 입에서 국제 통화체계에 대한 개편에 대한 말이 나오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러한 상황을 의식했던 것일까? 폴 크루그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냉정한 답변이었다.

"아직 위안화는 멀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또 그가 어떻게 얘기를 하든, 달러화를 찍어내면서 진행시킨 재정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하기에 미국 경제는 너무 취약했다. 경제의 회복은 지연되었고, 무엇보다도 경제의 펀더멘탈이라고 할 수 있는 고용율은 도무지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의 경제위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부동산발 위기의 재등장 가능성에 대해서 국제 사회가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에서 시작된 부동산 위기는 프라임 모기지 그리고 오피스 모기지 등 언제든지 촉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에 불을 확 끼얹은 것이 한국에서 이번에 개최되는 G20이다. 원래 금융위기 이후의 국제경제체계의 개편에 관한 논의를 그 직후에 벌어진 다보스 포럼에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회의에 미국은 공식 대표를 아예 보내지 않았고, 논의는 전혀 시작되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 그런 국제적인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새로운 행정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다. 이제 G20 회의가 새로 열리게 되었으니, 다들 이번에는 이 얘기를 좀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고, 국제적으로 환율이 요동치게 되었다.

G20과 관련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원화도 국제 기축통화에 포함될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한 적이 있다. 원화마저도? 그렇다면 유로화나 위안화는? 그리고 엔화는?

G20의 공식 의제와 상관없이, 기축통화에 대한 기본 논의는 이미 물밑에서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고, '화폐전쟁'이라는 말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국제 통화는 후끈 달아올랐다. 자, 좋든 싫든, 우리 역시 이런 격동의 현장으로 끌려들어가게 된 셈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화폐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가, 이자율의 문제이다. '선제적 대응'이라는 말로 화끈하게 이자율을 낮추었고, 내릴 때는 강력하게, 올릴 때는 천천히, 그게 지금까지의 대체적으로 이자율 정책의 기조였다.

해석을 해보면, 저금리는 부동산 경기를 비롯해서 경제의 확대 기조라는 방향을 가지고 있다. "빚 내서라도 집 좀 많이 사세요"라는 메시지가 이런 인위적 저금리의 1차 메시지인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도 별로 부동산은 살아나지 않고, 정부만 다음 기에 집행해야 할 예산을 조기 집행하면서 부채가 늘어나게 되었다. 다음 해 예산을 미리 당겨서 쓰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는데, 정부 지출만 늘면서 경기를 억지로 부양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부가적으로 이자율 하락은 원화의 평가절하라는 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하였다.

두번째는, 원화 약세라는 지속적 평가절하 정책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부의 환율시장 개입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있다. '파인 튜닝'이라고 하는 미세 조정만 했다는 설과, 금융기관이나 공기금 같은 곳에 직접 지시를 해서 개입을 했다는 설이 있다. 방향이야 어쨌든 '약한 원화'가 이명박 정부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일관된 정책이었던 것 같다.

▲ 부산항 수출 선적 현장. '약한 원화' 정책은 수출 대기업에는 혜택을 준다. 그러나 나머지 경제 주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 ⓒ뉴시스
원화를 약하게 유지할 때의 실질적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석이 분분하다.

주로 대기업에 집중된 수출기업들에게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경이적인 매출액과 흑자가 이러한 원화 정책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는 경제계 일부의 지적들은 바로 이 환율 정책에 대한 시선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환율정책이 일방적으로 한 나라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환율이라는 게 왜 그렇게 복잡하겠는가?

원화가 지속적으로 평가절하가 되는 고환율 정책은 고유가 등 실제로 국민들의 소비 생활에 불편을 준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국민들이 직접 수출을 할 것이 아니니까 수입과 관련된 상품들의 가격은 올라가게 돼 있다. 그리고 국내와 상관없는 내수를 주로 하는 중소기업들 특히 일본 등 외국에서 원자재나 부품들을 수입해야 하는 업체들도 손해를 보게 되었다. 저금리와 고환율, 이런 것들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명박 시대에는 국민들의 실생활과 인플레이션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1차 관리 변수가 된 셈이다.

아직까지는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전격적으로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이 안정성이 장기적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대체적으로 내가 예상하는 내년도의 위기 양상은, 부동산과 관련된 가격들은 디플레이션 경향을 보이고, 일반 소비재들은 인플레이션 경향을 보이는 이중적 운동이다. 어쨌든 이건 조금 더 지켜볼 일이기는 하다.

이런 게 지금까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통화와 환율과 관련된 기본적인 변수들이고 정책 운용 기조였다. 최근 돌발변수로 등장한 것은, 불안전성이 높아지는 달러 대신에 엔화 심지어는 원화까지도 일종의 가치 저장을 위한 투자 상품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달러의 대체 변수가 되었던 금, 석유 그리고 최근의 선물시장에서 농산물과 엔화와 원화가 같은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절하 경쟁에 한일의 통화가 끼어들게 된 것인데, 이를 버티다 못버틴 일본이 먼저 손을 들고 나섰다.

자, 이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게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한국은행도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 이런 특이한 상황은 한국 경제의 역사상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목소리가 금방 터져 나온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출에 사활을 건 쪽에서는 당장이라도 당국이 개입해서 지금의 절상을 반전시켜 달라는 것이다.

수출로 근근이 버텼던 지난 수 년간을 생각해보면 일견 타당한 얘기지만, 국민들의 경제적 삶과 내수 시장을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했던 몇 년간의 경제운용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도덕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효율성의 눈으로도 타당한 것인가, 그런 질문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가 과연 환율 정책과 관련하여 충분히 개방적이며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과거 독재 시대처럼 밀실행정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고민들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간단하게 얘기해보면, '강한 원화'와 '약한 원화' 두 가지 흐름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약한 원화'를 선호했고, 수출에 도움이 된다면 인위적 조작이라도 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사회적 흐름 속에 살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환율이 바뀌면 외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경제적 삶이 영향을 받는다. 연탄값도 영향을 받았고, 지금의 전기값도 기본적으로는 환율의 함수이다. 석탄값은 여전히 전기 요금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대형 수출업체만을 생각하면서 환율 정책을 끌고 나가기에는 한국 경제는 너무 커졌고, 너무 복잡해졌다.

원화 자체도 이제는 상품이 되었고, 국내 증시에도 외국인이 제1 변수가 되었음은 물론, 한국의 국채도 중요한 유가증권으로 간주되게 되었다. 자국 화폐를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아예 자국 통화 대신에 달러를 사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논란 거리가 되었던 1990년대의 중남미에서 진행된 '하이퍼 인플레이션' 논쟁과는 최소한 통화의 관점에서 이제 한국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온 셈이다.

원화가 G20 논의에서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다루어질까?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르지만, 원화가 기축통화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언급 자체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한국 경제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한 원화'는 수출에 도움을 주지만, '강한 원화'는 국민 경제 자체의 안정성 자체를 높여주는 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다. 부수적으로 국내 경제의 내수 기반에 도움이 된다.

원화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는, 아마 경제 주체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다를 것인데, 확실한 것은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린 원화의 가치에 대한 국민적 논의를 한 것이 거의 없다. 그리고 달러와 원화와의 관계, 수출로 생긴 경제적 성과에 대한 가치 보존 방식, 환율 변동에 대한 정책적 차원의 헷징과 관련 기금 운용, 이런 것들은 선진국이 되면서 당연히 국민적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환율이 오르는 것과 내려가는 것에 대해서 단기적인 정책만이 아니라 기본 사항에 대해서 국민들의 보다 포괄적이며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순간이 우리에게도 온 것이 아닌가? 세계 통화시스템은 지금부터 좋든 싫든, 격변기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의 '경제 민주화'의 논의 항목에 이제는 환율과 원화 정책 얘기가 들어가야 할 순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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