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개념은 간단하다, 신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다. 우리는 신문으로 습자 연습하고, 담배 말아 피우고, 종이비행기, 종이배 만들고, 가면 만들어 놀고, 모자 만들어 쓰고, 코 풀고, 침 뱉고, 똥 받고, 똥 닦고, 도시락 싸고, 불쏘시개로 쓰고….
신문이 종이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편집광이라도 된 듯 주워 모아 화면 가득히 그려 넣었다. 너무 살벌한 때라 '국가보전위원회', '전두환', '신군부' 등의 활자가 끼어든다면 그것은 곧 파멸을 의미했다.
그렇다. 당시의 신문은 이미 신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종이일 따름이었다. 종이 이상의 의미가 없는 쓰레기였다. 나는 이 답답하고 꽉 막힌 현실을 그냥 묵과 할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면 돌파 해야겠다고 벼르며 23제곱미터(7평) 밖에 되지 않는 광주교육대학 연구실에서 한여름 내내 더위와 싸우며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우리의 창립전은 캄캄한 어둠 속에 약 한 시간간의 촛불 전시로 막을 내려야 했다. 당국은 이 불온한(?) 전시에 주목했다. 그 덕에 우리는 이후 '민중 미술' 집단으로 낙인(?) 찍혔고 갖은 감시와 박해 속에 시달려야 했다.
<조선일보>는 선봉에 서서 전두환 군부 체제를 옹호하였고 전두환을 '새 정의의 시대'의 지도자로 찬양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좌경, 용공 분자와 사회적 불평 불만자, 거리의 부랑자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하고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또 <조선일보>는 우리의 새로운 미술운동도 미술을 수단과 목적을 위해 도구화한 것이라며 이념 공세의 선봉으로 자청하고 나섰다.
사반세기의 시간이 흘렀건만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할 것이 없다. 어찌 보면 오히려 더 교묘해졌고 더 괴이해졌고 더 사악해졌다. 총칼로 다스리지 않지만 돈으로 다스린다. 오로지 돈만을 따르라 지시한다. 윤리도 도덕도 사회적 책무도 꿈도 희망도 모두 돈을 위해 포기하라고 강압한다.
세상은 이미 돈의 천국이 된 지 오래다. <프레시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프레시안>을 포기 할 수 없다. 아니,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내가 '프레시앙'이 된 이유다.
☞ '프레시앙'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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