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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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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식

[한윤수의 '오랑캐꽃']<268>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민족, 문화, 종교, 피부색깔, 지위에 상관없이.
이 권리가 인권이다.

그런데 이 인권에 대한 생각 즉 인권의식이 사람마다 다르다.
사장님과 노동자의 의식이 다르고, 우리 센터 직원과 공무원의 의식이 다르다.
여기서 갈등이 생긴다.

태국인 피아(가명)는 플라스틱 사출회사에서 1년 일했다.
거기서 더 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장님이 *국민연금을 과다 공제하고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로계약기간 1년이 끝났으므로 그는 자유라고 생각하고 아침 일찍 고용지원센터에 갔다. 구직필증(release paper), 소위 해방문서를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구직필증을 주지 않았다. 그날 해가 저물도록.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피아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권의식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된 4사람의 의식을 보기로 하자.

1. 사장님
인권의식이 아주 낮다. 마치 봉건 영주와 같이 위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장원을 도망친 농노를 잡으러가듯, 피아를 잡으려고 고용지원센터로 뒤쫓아간 것이다.
아침 10시, 피아는 고용지원센터 2층 외국인 창구에서 대기번호표 148번을 뽑고 차례를 기다렸디. 구직필증을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장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놀라서 일단 화장실로 몸을 피했다. 그래도 사장님이 이 방 저 방 샅샅이 뒤지며 다니자 아래층으로 내려가 태국 식당에 숨었다. 점심때까지.
사장님은 결국 피아를 찾지 못하고 담당 공무원한테 부탁하고 돌아갔다.
"피아 나타나면 전화 좀 해줘요."

2. 공무원
공무원 대부분은 인권의식이 높다. 하지만 이 공무원은 인권의식이 예외적으로 낮다. 노동자를 계약만 지키면 되는 자유인이 아니라, 주인의 허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종속된 인간으로 알고 있다.
피아는 계약기간이 끝나서 이미 자유로운 몸인데도, 아직도 사장님의 추가 승인을 받아야 퇴사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있으니까.
148번 차례가 되어, 피아가 구직필증을 달라고 하자 공무원이 말했다.
"기다려. 사장님 올 때까지."
피아는 불안해서 계속 우리 센터로 전화했다.
"사장님 온다는데 나 어떡해요?"

3. 우리 센터 직원
인권의식이 높은 편이지만 철저하지는 않다. 사장님에게 전화해서 양해를 구했으니까.
"피아가 옮기고 싶어 하거든요. 그러니 옮기게 해 주세요."
사실은 이렇게 사정할 이유가 없다. 근로계약이 끝났으므로 사장님과 노동자는 이미 남남이다. 서로가 자유로운 몸인데 왜 사정하나?

내가 이런 점을 지적하자 직원은 이때부터 강하게 나갔다. 사장님에게 이렇게 전화했으니까.
"피아는 이제 자유입니다. 사장님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담당 공무원에게도 전화했다.
"피아가 불안해하는데 왜 사장님을 다시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근로계약이 끝났으면 사장님 만날 필요 없지 않습니까?"
공무원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사장님한테 사인 받을 일이 있어서 그래요."
"계약 끝났는데 무슨 사인을 받죠?"
"고용변동신고서가 들어오지 않아서 그래요."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사장님의 신고서가 안 들어오면 노동자는 퇴사도 못한단 말인가? 퇴사 신고는 10일 이내만 하면 되는 건데! 차후에 받아도 될 신고서를 빌미 삼아, 공무원이 사장님의 월권행위를 방조하고 있다. 그는 결과적으로 사장님이 피아를 다시 한 번 다그칠 기회와 시간만 벌어주고 있는 셈이다.
직권 오용이다!

나는 팀장에게도 전화해서 항의했다. 하지만 이 공무원은 팀장의 말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상관 말라는 식으로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구직필증을 떼어주지 않았으니까.
근로계약이 끝난 사실만 확인되면 당연히 구직필증을 발급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안 주나?

4. 태국인 통역
고용지원센터에도 태국인 통역이 있다. 이 사람은 인권의식이 그야말로 너무나 형편없다. 개판이다. 피아에게 사장님과 재계약하라고 압력을 넣었으니까.
"사장님이 3개월만 더 일하라잖아. 사인해드려."
노예근성이다!

끊임없이 달라붙는 사장님과 통역의 닦달에 지쳐서 퇴근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피아는 하마터면 재계약서에 사인할 뻔했다. 사인하기 직전에 우리 센터에 전화했기 망정이지.
"3개월만 더 일하라는데 괜찮아요?"
나는 힘주어 말했다.
"3개월 계약은 없어. 최소한 1년 계약이지."
피아는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사인하지 않고 퇴근 시간까지 버텼다.
구직필증도 안 주는 고용지원센터에서!

결말
다음날 피아는 우여곡절 끝에 구직필증을 받았다.
하지만 하루 늦게 받은 구직필증 때문에 비자기한이 이미 지나서 출입국사무소에 벌금 10만원을 물어야 했다.

비록 벌금을 물었지만,
피아는 현재 그물을 벗어난 고기처럼 행복하다.
사장님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으니까.

*국민연금을 과다 공제 : 원래 국민연금은 사장님이 4.5 프로, 노동자가 4.5프로를 내야 한다. 하지만 사장님은 전혀 내지 않고 9프로 전부를 노동자가 냈다.

*시간외 수당 : 토요일에 12시간을 일하면 44시간 사업장의 경우, 시간외 근무를 8시간 달아준다. 하지만 이 회사는 4시간 밖에 달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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