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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남한의 '가까운 미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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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남한의 '가까운 미래' 아닐까

[통일운동의 시각전환을 위하여(2)] 석유정점과 남북한

2. 피크오일이라는 거대 해일이 다가오고 있다

- 석유정점과 진보, 경제성장, 산업사회, 석유문명의 붕괴

화석연료 에너지가 빠르게 고갈되어 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철, 아연, 구리 등 천연자원도 고갈되어 가고 있다. 그에 따라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값싼 석유공급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고, 석유를 기초로 무제한의 성장과 진보를 이룩했던 석유문명도 침몰 직전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마디로 피크오일(Peak Oil, 전 세계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이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소리도 없이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타이타닉 침몰 5분 전과도 같은 석유정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3가지 견해가 있다. 비관론(2007~2010년에 석유정점), 절충론(2015~2020년에 석유정점), 낙관론이 그것이다. 1956년 미국의 킹 허버트는 처음으로 미국의 석유생산이 1966~1972년에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허버트의 예측대로 실제 미국은 1970년을 기점으로 해마다 석유생산이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세계 석유생산이 언제 정점에 도달할 것인지가 논쟁거리로 등장했다. 오늘날 석유학자들과 석유 관련 전문가들 대부분이 비관론에 서 있으며, 석유업자들과 미국 에너지청 등만이 막강한 소수로서 낙관론의 입장에 서있다. 최근 절충론이나 낙관론에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비관론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석유정점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현대 자본주의 문명은 화석연료 문명, 즉 석유에 중독된 문명이다. 현대산업의 원동력은 값싼 석유이다. 20세기 들어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석유는 자동차문명 사회를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주 모든 분야에서 석유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게끔 만들었다. 어처구니없는 노마드니 관광산업이니 하는 오염과 낭비에서부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초인 자동차, 철도, 배, 비행기 등 값싼 운송도 값싼 석유가 있기에 가능했다. 현대농업 또한 씨앗, 논밭 갈기, 풀 제거, 가을걷이, 보관, 운반 등 모든 과정에 석유가 투입되는 석유농업이며, 의식주 모든 것을 석유에너지로부터 얻고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90%는 석유 없이는 만들지 못한다.

인류는 수억 년 전에 만들어진 자연의 보물인 석유를, 그리고 각종 천연자원을 단 몇 백 년만에 마구 퍼내어 쓰고는 그 쓰레기로 마구 내다버리고 있다. 이는 미래 세대의 저금통장을 몽땅 털어먹는 도둑질이자 미래를 소비하는 파렴치한 범죄행위이다. 이렇게 보면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즉 슬기로운 동물이라기보다는 재생불가능한 쓰레기 만드는 동물, 눈먼 소비중독의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정확할 듯싶다.
▲ 그림 중 아랫쪽 박스 안에 그려진 도표는 연도(서기)에 따른 석유 소비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이 도표를 석유가 생성된 시기까지 연장해서 그리려면 왼쪽으로 17km만큼 종이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 프레시안

인류는 오직 한 번 석유를 쓰고, 오직 한 번 금속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지구가 더웠던 시기에 만들어진 석유가 지상으로 다시 나오면서 다시 지구가 더워진다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상식이다. 때문에 현대 석유문명의 붕괴는 필연이며, 제6의 멸종 또한 현실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말미암은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는 이미 현실로 닥치고 있다. 남북극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어 투발루라는 나라는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히말라야 빙하가 녹으면서 머지않아 인도 북부지역은 농업이 불가능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아프리카 사막지역과 중국의 사막은 너무나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알래스카의 동토가 녹으면서 건물이 무너지고 있기도 하다. 카트리나의 재앙이 바로 기후변화의 상징임에도 세계 석유의 4분의 1을 소비하는 미국은 석유소비를 줄이지도 않고 심지어는 교토의정서에 비준조차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근대 산업문명은 진보와 발전이 아니라 재앙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압축근대화는 자랑스런 발전의 상징이 아니라 공동체와 자연이 파괴되고 자유인들이 상품노예가 되어버리고 만 재앙의 자살골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은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수출 중심의 한국경제는 대외의존도가 70%를 넘고 있다. 당연히 석유공급이 끊기거나 제한되면 한국경제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며 그 피해는 먼저 노동자와 농민, 빈곤층에게 돌아가고 말 것이 뻔하다. 지금까지 풍요를 자랑하면서, 때로는 북한을 경멸하며 해오던 북한 지원도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3. 북한이라는 '가까운 미래'
- 쿠바와 북한의 전혀 다른 선택

1990년대 초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북한과 쿠바에는 값싼 석유공급이 한순간에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두 나라의 현재는 전혀 정반대이다. 한쪽은 식량부족과 기아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인민들이 굶주려 죽는 끔찍한 사태를 맞았을 뿐만 아니라 여지껏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인민들의 탈주 사태가 계속되면서 선군정치라는 이름 아래 총칼로 체제 붕괴를 막는, 급기야는 핵실험까지 감행하며 위기탈출을 모색하는 극도의 군사주의 정권, 공포정치 독재정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쿠바는 지속가능한 유기농으로 전환해 식량의 자급자족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산업문명에서 현대화된 농업국가로의 전환에 성공한 모범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명공학이 아닌 첨단 바이오테크놀로지 사회이며, 인구수로는 라틴아메리카의 2%에 불과함에도 과학자 수로는 라틴아메리카의 11%에 이르고 있다. 겨우 10여 년이 넘는 기간에 무엇이 이같은 차이를 낳았는가.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쿠바에 있던 소련인들이 전원 철수했다. 이와 함께 석유를 포함해 연간 60억 달러 가치로 평가되는 각종의 지원이 끊기고 말았다. 쿠바의 국내총생산(GDP)은 한순간에 85%나 줄었고 석유소비는 절반으로 줄었다. 1993년에는 미국 달러화에 의한 거래를 허용하고 관광산업을 개발하는 한편 해외에 있는 쿠바인들에게 송금을 간청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식량위기에 직면한 쿠바는 1991년 9월 특별시기를 선포하면서 소비에트식 산업화 모델을 폐기하고, 트랙터와 화학비료 대신 가축을 이용한 유기농업 사회로 차근차근 전환해갔다. 또한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개인 식량생산을 허용했다. 쿠바의 구호는 단순했다. "우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는 시계를 되돌려 놓을 수 있다."

오늘날 쿠바의 식량생산은 자급률이 거의 100%에 이른다. 특별시기 이전에 30%에 불과했던 식량자급률과 견주면 가히 혁명이라고 할 만하다. 식량공급은 충분하거나 남지는 않지만 건강을 유지하는 데 적절한 정도를 유지한다. 물론 특별시기 이전과 같은 화석연료 에너지 투입 없이 그같은 식량생산을 이룩한 것이다. 쿠바 인민들은 본의 아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육식은 이틀에 한 번에서 2주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녹색혁명 작물인 밀과 쌀 생산은 급격히 감소했지만 채소 생산은 꾸준히 증가했고, 쿠바 사람들의 식물성 단백질 섭취도 증가했다. 이전에 쿠바 사람들은 살찐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으나 이제는 살찐 채소를 즐긴다.

특히 도시 농업의 발달은 쿠바를 방문하는 수많은 농업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위기 이후 쿠바는 도시민들의 탈도시를 지원해, 수많은 아바나 시민들이 농촌으로 돌아갔다. 농부는 누구나 농업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농부의 소득이 일한 만큼 증가하면서 이런 물결은 더욱 거세졌다. 오늘날 쿠바 농부들은 1달에 200~400페소를 번다. 농장관리인 임금이 360페소, 지방의 의사가 500페소를 버는 것과 비교하면 어떤 수준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미국에서는 의사와 농부의 소득 차이가 15 대 1인데 쿠바에서는 이 비율이 3 대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쿠바는 무엇이 가장 에너지 효율이 높은지를 과거에서 배웠다. 트랙터를 소가 대신했다.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고 가장 저렴한 '에너지 다이어트'를 실현한 셈이다. 교통운송 분야만 보더라도 쿠바에서는 모든 사람이 운송수단을 공유한다. 쿠바의 운송수단은 값싼 대중교통수단인 카멜, 트럭, 버스, 자전거, 마차, 심지어 노새까지 다양한데, 필요한 운송수단은 간단히 징발된다. 교통혁명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화의 문제이다. 경쟁할 때보다 서로 협력할 때 문제가 해결된다는 진리는 쿠바에서 아주 극명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서구의 기준으로는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에너지 사용이란 관점에서는 가장 효율이 높은 방법을 쿠바는 채택하고 있다. 쿠바의 1인당 에너지 소비는 미국의 1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쿠바에서는 새로 짓는 주택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주택이 리모델링된다. 높은 에너지가 드는 시멘트 건물은 거의 공급되지 않고 있다. 쿠바 인민들은 미국 사람이 비해 4분의 1 정도 되는 면적의 주택에 거주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67%가 대부분 사실상은 은행 소유인 자가주택을 갖고 있는 데 반해 쿠바인들은 80%가 자신의 집을 갖고 있다.

특히 쿠바의 의료와 교육 수준은 특별시기 이전보다 오히려 더 향상되었다. 쿠바는 의료와 교육, 문화 정책에 역량을 투입해 이미 라틴아메리카 전체로 볼 때 가장 뛰어난 의료, 교육, 문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쿠바의 무상의료와 무료교육은 쿠바의 음악, 춤과 함께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 새삼스럽게 언급하는 게 어색할 정도이다. 쿠바의 1개 학급당 평균 학생수는 15명이며, 문맹률은 미국 수준이다.

쿠바는 세계 인구의 82%를 차지하는 제3세계에서 가장 상위 수준의 의료, 교육, 식량 체계를 갖추고 있다. 유아사망률은 미국보다 낮고, 평균수명은 미국과 같다. 1인당 의사 수는 미국보다 많다. 의사들도 바로 이웃집에 있고,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한다. 오히려 돈 없으면 치료도 못 받고 먹지도 못 하고 외롭게 죽어가야만 하는 정글자본주의의 삭막한 미국보다 훨씬 나은 사회안전망을 갖춰놓고 있다. 쿠바의 의사들에게는 의료는 소명이지 돈벌이 사업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새겨져 있다.

물론 쿠바에는 문명의 이기들과 상품들이 많지 않다. 그나마 자동차같은 경우 낡고 오래된 것들이어서 수도인 아바나는 눈이 따가울 정도로 매연에 오염되어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도시 전체를 녹화하는 녹화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으며,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대체하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높은 수준의 하이테크 기술 대신 지속가능한 적정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햇빛발전이나 바람발전같은 대체에너지도 대규모 단지가 아니라 소형 체제로 개발되고 있다. 이처럼 쿠바의 모든 정책은 그 초점이 개인이 아닌 지속가능한 사회에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쿠바는 지구 산업문명의 미래를 앞서서 일찍 경험하고 있다. 이런 삶의 변혁이 또한 쿠바 인민들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굳건한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는 점도 자본주의 세계화를 향해 맹목으로 질주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에 그렇게 강요하는 미국의 투표율은 정작 50%선에 불과하지만 쿠바 유권자들은 95%가 투표에 참가한다. 그것도 미국의 거짓 선전과 달리 선거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고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은 그 이전보다 더 거세게 쿠바를 봉쇄하고 쿠바 체제의 붕괴를 끊임없이 모색했다. 쿠바는 미국의 바로 코 밑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인데다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했기 때문이다. 쿠바의 국방비는 12억 달러(2004년)이다. 인구 1100만에 군대는 육군 3만8000, 해군 3000, 공군 8만 등 총 12만1000 명이다. 생각해보라. 인구가 2억이 넘고 한해 국방비가 5181억 달러(2005년)로 세계 국방비의 52%를 차지하며 각종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150만의 세계최강 군대를 보유한 미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쿠바는 바로 눈앞에서 순식간에 그야말로 석기시대로 돌아갈 만큼 초토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왜 쿠바에 침략하지 못하고 있는가. 북한은 물론 한국의 통일운동도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결단코 미국의 위협과 봉쇄는 강성대국을 지향하는 100만이 넘는 북한군(북한주민 수는 2300만 명)과 선군정치, 수많은 아사자와 되풀이되는 식량위기의 재앙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북한경제의 현실에 대해서는 다양한 진단과 평가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어떤 시각이나 평가에 앞서 북한경제는 이미 평가가 무의미할 만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북한경제는 아직도 최악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그야말로 '그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에 급급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심지어 북한 사람들 스스로도 인정한다. 1990년과 2004년을 비교했을 때 북한의 농업 비중은 27.4%에서 26.7%로, 중화학공업 비중은 25.6%에서 11.8%로 변했다고 한다. 이 수치 또한 별 의미가 없을 뿐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역설이긴 하지만, 쿠바의 경우가 웅변하고 있듯이 북한이 에너지 과투입의 범죄사회인 선진공업 사회가 아니라 에너지 자립과 식량 자급을 기초로 자립경제를 구축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자립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북한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북한 또한 1990년대 초 구소련의 붕괴 이후 쿠바와 마찬가지로 석유에너지 투입 중단으로 농업생산력이 급속히 낮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북한은 기존의 석유농업에 집착해 현재와 같은 재앙의 기아 상태를 자초하고 말았다. 기존 주체농업의 계단식 논 확장과 난방용 벌채로 산이 벌거숭이가 되면서 해마다 홍수사태가 반복되고 이는 또다시 더 많은 비료를 필요로 하게 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북한이 한때 남한보다 잘사는 나라였으며 사회주의의 기지를 자처하고 또 그렇게 인식되기도 했다는 것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는 최악의 굶주림과 아사자, 대량 탈북사태란 현실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체제붕괴의 위협 앞에서 북한 정권은 더더욱 군대를 앞세워 국가 유지를 꾀하고 급기야는 핵실험의 모험까지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5% 이하이며 쌀을 제외하면 5%도 되지 않는다. 석유가 공급되지 않으면 한국 또한 북한이나 쿠바와 같은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피크오일은 최소한 우리에게 식량위기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예언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북한의 현실이 머나먼 남의 얘기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우리의 미래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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